장애 정도는 한 방에, 으라차차 태권V
“준비! 차렷! 태권!” 우렁찬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웁니다. 주춤서기, 앞서기, 앞굽이, 뒷굽이. 많기도 한 서기자세부터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느라 송글송글 땀이 맺힐 정도지만 초롱초롱한 눈빛과 기합소리 만큼은 국가대표가 따로 없습니다. 열정 넘치는 친구들의 모습에 지도선생님의 칭찬이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대표급 기합소리, 태~권!!
종로장애인복지관 운동기능팀에서는 지적·자폐성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를 가진 아동, 청소년 태권도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무 명의 친구들이 매주 한 번씩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태권도교실은 2013년도 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됩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해 이제 열 번 남짓 만났을 뿐인데 벌써 태극 1장을 척척 해냅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열의에 불타는 친구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오릅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동작을 만들어내고, 그 방향과 위치를 기억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친구들은 선생님과 약속한 대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외우고 또 외우고, 품새도 척척!
처음부터 이렇게 손발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닙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청소년들과는 화이트보드에 써가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속도가 더뎠습니다. 서로 답답해 할 때도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을 겨우 구별하는 시각장애 친구들은 설 때도 방향이 제각각입니다. 한 명씩 방향과 몸의 모양을 잡아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 앞으로 지르고, 옆으로 막고 땀을 흘리며 태극 1장을 연습합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광수(중학생, 가명)는 처음 태권도 교실에 왔을 때 앉아만 있었습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겨우 태권도교실에 왔을 뿐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한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해서 저를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태권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선생님에게 그때의 기쁨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알고보니 광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태권도는 한 방법일 뿐, 결국은 ‘몸으로 움직이는 것’의 재미를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겁게 운동해야 몸도 건강해지고, 그래야 앞으로 겪게될 몸과 마음의 어려움을 견뎌나갈 힘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즐겁게, 건강하게, 신나게!’ 함께 성장하는 태권도교실!
선생님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하기 힘들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합니다. 왜 힘들지 않았겠냐고 말입니다. 더딘 속도에 조급해질 때도, 반복되는 연습에 혹시 지루해 하지 않을까 불안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의 실력이 느는 동안 가르치는 사람도 함께 자라는 모양입니다. 함께하면서 조바심이 사라지고 조금씩 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것인가 봅니다.
▲ 몸을 움직이며 마음에 있는 스트레를 해소합니다
길을 가다보면 태권도 도복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운동이기에 장애가 있는 우리 친구들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바람으로 시작한 태권도교실인데 이제는 욕심이 점점 커져갑니다. 태권도를 통해 얻은 몸과 마음의 건강이 이 친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해쳐 나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씩씩한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를 하루 빨리 만들어야겠다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태권도 실력을 뽐낼 그날까지 우리는 땀과 열정으로 함께할 것입니다.
*글 = 박사희 종로장애인복지관 운동기능팀 특수체육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