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세종마을(서촌)이 어땠을까

푸르메재단이 위치하고 있는 ‘세종마을’에 숨겨진 옛이야기

<오래된 서울> 읽어볼까



 세종대왕이 태어난 지역이면서 푸르메재단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서촌)을 제대로 둘러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정보가 가득한 책이 나왔다.


한국의 도시와 취락 역사를 연구 분야로 설정하고 전국을 발로 뛰며 눈에 담고 기록으로 남겨온 최종현 전 한양대 교수와 동아일보 국제부장·프레시안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창희씨의 공동 저작인 <오래된 서울>(사진)이다. (주)디자인커서. 364쪽. 2만원.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추천사를 통해 “서울에 대한 책이지만 대하드라마처럼 장대하고 탐정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그러면서도 학술논문보다 더 학술적이고 문화비평보다 더 비판적이다. 풍부한 이미지에 민정기 화백의 ‘삽화’들까지 곁들여져 보는 맛 또한 특별하다. 저자들은 ‘최근의 기억까지 사정없이 지워진’ 서울에서 고려 남경의 옛 흔적을 찾아내고 인왕산 아래 세종마을(서촌)에서 선대들의 못 다한 꿈을 되살린다. 경화사족에서 중인, 친일파, ‘모던 보이’를 거쳐 현대사의 격랑에 ‘미아’가 된 사회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꿈의 주체들과 엇갈린 입장은 그대로 아픈 우리 역사의 축도다.”라고 평했다.



<오래된 서울>은 크게 나누어 3개의 부에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서울의 탄생’은 4개의 장을, 제2부 ‘꿈꾸는 인왕산’과 제3부 ‘서울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은 각각 6개의 장을 포함하고 있다. 제1부는 서울의 역사적 지리적 원점을 추적하는 비교적 독립적인 내용이다. 제2부와 제3부는 세종마을(서촌)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그 곳에서의 장소와 사람의 관계를 정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세종마을(서촌)’이다. 푸르메재단이 위치한 세종마을, 바로 그 곳이다. 오늘날 청운동, 효자동 일대다. 세종마을(서촌)은 서울 도성 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세종마을(서촌)의 첫 주인은 왕족. 세종대왕은 궁이 아니라 세종마을(서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난 데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결혼해서 왕궁 밖에서 살 운명이었던 것.



‘세종실록’은 “태조 6년 4월 임진일에 한양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에서 탄생했다”고 전한다. 잠저란 왕이 즉위 전에 살던 사가(私家). 저자들은 준수방의 현재 위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250m쯤 가면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이 있다. 뒤로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큰 길과 만나 삼각형 땅을 이룬다. 그 삼각형 지형과 주변이 모두 준수방이었다.”


책은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동네의 조선시대 500년 역사를 추적한다. 우리가 비교적 익숙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내세워 세종마을(서촌)에서의 그들의 삶을 살피되 그 삶이 세종마을(서촌)이라는 장소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정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우선 ‘세종마을(서촌)의 주인’이라는 관점에서 왕족과 사대부, 그리고 중인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이들 각각을 이야기의 주체로 삼는다. 그 각각이 세종마을(서촌)에 형성한 역사적 지층을 체계적으로 살피는 가운데 그런 흔적들이 다음 시대에 다음 주인들에 의해 어떻게 변용되어 갔는지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최소한 도시사 영역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기술 방식이다.









또 저자들은 ‘몽유도원도’라든가 ‘인왕제색도’, ‘송석원시회도’ 등 이름만 들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림들이 그려진 위치와 거기서의 구체적인 앵글을 확인하고 그 앵글이 갖는 의미까지 천착해냈다. 미술사에서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작업이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그림이며, 그림에 담긴 뜻을 새기고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 읽은 이의 몫이라면 이런 앵글의 발굴은 우리가 가진 예술 유산의 수십 배 확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종마을(서촌)의 20세기 역사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리던 세종마을(서촌)의 풍경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였다. 한일강제병합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폭력적으로 바꿨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종마을(서촌)의 운명에도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갑자기 친일파들이 세종마을(서촌)에 몰려들어 초대형 저택을 신축하는 가운데 민족적 자각을 가진 세종마을(서촌)의 주인들은 쫓겨났다. 세종마을(서촌)의 사람들과 자연 모두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첫 걸음은 친일파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완용의 집이었다. 한일병합 직후인 1913년 옥인동 19번지 등에 들어선 그의 집은 말 그대로 ‘대저택’이었다. 이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던 세종마을(서촌) 사람은 김가진이다. 그는 장동 김씨 대대로 살아온 세종마을(서촌)의 보금자리를 초개처럼 버리고 상하이로 망명, ‘대한제국 장관급 인물 중 유일한 망명객’이 되었다.


저자들은 이밖에도 천재시인 이상과 꼽추화가 구본웅, 윤동주 시인과 국문학자 정병욱,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길을 간 형제 이여성과 이쾌대, 현순 목사와 그의 딸 앨리스 현 등 세종마을(서촌)을 거쳐간 아름다운 이들의 발자취도 꼼꼼히 살피고 있다.


*글=김민용 홍보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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