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던 날 생명과 함께 사명을 얻었습니다
[행복이가득한집 9월호]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1호 이지선 씨
다시 살아나던 날 생명과 함께 사명을 얻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경험하니 저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확장되더라고요. 전문 지식과 제가 실제로 겪고 느낀 경험들을 바탕으로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었죠. 뚜렷하게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의 시작이었죠. 그것은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랍니다.” 모국어로 하는 공부도 어려운데 외국에서 박사 과정이라니, 그 의지가 참 가열차다. “두 번째로 다시 얻은 생이거든요. 많이 배워서 남에게 모두 주고 싶어요.”
(왼쪽) 새벽 내내 올림픽 축구 한일전을 보며 응원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던 이지선 씨. 수줍게 웃는 얼굴이 붉은 장미꽃과 잘 어울린다.
“때로는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 주고는 절대 사지 못하는 보물이,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 가운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_이지선 산문집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에필로그 중.
내가 꼭 해야 하는 일 그는 하는 일이 참 많다. 방학 기간 잠깐 한국에 들른 요즘에도 매일 강연과 인터뷰가 겹겹이 쌓여 있다. 소설가 故 박완서 선생은 푸르메재단의 주선으로 함께한 거제도 여행길에서, 이지선 씨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행에게 꿈과 희망이 된다는게 인상적이었다며 그에 대한 글을 쓴 적이있다. 그렇다. 그는 희망이 되었다. 지옥같은 고통을 이겨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우리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첫 중환자실에서 그는 36일 동안 18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환자실에서 ‘살아서’ 나오던 날, 생명과 함께 ‘사명’을 얻었다는 그는 희망을 주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환자 중심의 재활 전문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앞장서는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1호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왼쪽) 푸르메재단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故 박완서 선생과 함께.
“8년 전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님이 제 개인 홈페이지에 긴 편지를 남기셨어요. 가장 마음을 울린 것은 이사님 개인이 겪은 사고 이야기였어요. 이사님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모님이 다리 하나를 잃었죠. 그래서 선진 재활 치료를 받다가 한국에 왔는데 이곳 상황이 너무 열악했대요. 재활은 시간이 관건이거든요. 기능이 퇴화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다시 좋아지기 어려워요.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10억을 기증하고 재활 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하셨답니다. 이사님은 본인이 그랬듯이 불시에 당한 불행과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장애 환자를 위해 제게 앞장서 달라고 간곡하게 말씀했어요.” 당시 푸르메재단은 설립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글을 보자마자 제가 꼭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바로 홍보대사 1호가 되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재활 센터인 ‘푸르메센터’가 개관되어 무척 기뻐요. 민간 기부 시스템인만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2010년 3월 21일에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그는 1백 명의 푸르메재단 후원자와 함께 뛰었다.
42.195km를 달려라, 달려! 2009년 가을, 지선 씨는 뉴욕시민마라톤대회에 도전했다. 푸르메재단 재활 병원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마라톤이라니! 그것도 하프가 아닌 42.195km 풀코스다. 일반인도 완주하기 어려운 마라톤이 쉽지는 않았을 터. 지선씨는 그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제가 마라톤에 대해 잘 몰랐던 거죠. 평소 운동 삼아 산책을 즐겨 했는데, 한 시간에 8km를 걷더라고요. 대여섯 시간이면 끝나겠거니 하고 쉽게 생각했어요. 사전 준비 없이 뛰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뉴욕 시의 주요 도로를 모두 막고 진행하는 큰 규모의 국제 마라톤이었는데 시작부터 오르막이었어요. 마라톤은 온전히 본인과의 싸움이에요. 그만두는 것도, 달리는 것도 모두 자신이 결정해야하지요. 함께 뛰는 사람 중에 중환자실에서 같이 치료받던 지인이 있었어요. ‘중환자실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어?’ 하고 묻더군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주저앉아 울고 걷고 뛰길 여러 번, 7시간 22분 26초에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답니다.” 집에 가는 교통 카드가 없어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며 농을 던지는 지선 씨. 사실 화상 환자에게 ‘달리기’란 일반인보다 훨씬 강도 있는 신체적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이식한 피부에는 땀구멍이 없어 체온 조절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응원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함께 뛰며 격려해주는 한 여성 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겠다 다짐했다는 그. 한 사람의 응원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왼쪽) 어린이 재활 병원 건립을 위한 모금 캠페인 ‘만원의 기적’을 진행하는 가수 션 씨와 함께.
“마라톤 대회 전날 기자 간담회를 했습니다. 푸르메재단의 재활 병원 설립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마라톤을 하면서 그것이 가능하리라 확신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을 확실히 얻었거든요.”
어린이 재활 병원을 꿈꾸다 마라톤 후유증으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는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1백 명의 푸르메재단 기부자가 함께 뛰었다. 뉴욕에서의 기록을 40분 앞당긴 6시간 45분을 기록했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고 싶었어요. 마침 봄방학 기간이었고, 재단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항공권까지 덤으로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함께 뛰는 분들이 끌어주고 격려해준 덕분에 이전 기록보다 조금 빨리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답니다.”
지난 7월 11일 국내 최초의 민간 기부 재활 센터인 ‘종로 세종마을 푸르메센터’가 문을 열었다. 지선씨를 포함해 3천 명이 넘는 시민과 기업의 귀한 손길이 모인 결과다. “푸르메재단을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함께해서인지 제 일처럼 뿌듯 합니다. 운영비와 유지비 등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앞으로가 더 중요해요.”
그는 내년 상암동에 착공 예정인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우리 동네에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면 많은 사람이 경계부터 해요. 상암동에 지을 재활 병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사랑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들어올 수 있는 동네라는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왼쪽) 2009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대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결승점에 들어오는 지선 씨.
행복을 느끼는 것이 행복 9월 말에 다시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그는 요즘 가족과 함께 있어 참 좋다. 며칠 전 바람이 싱그럽게 불고 아파트 풀숲에서 찌르레기 소리가 들리던 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다 금 세 코를 골며 잠든 아버지와 뜨뜻한 살이 서로 닿아도 기분 좋은 어머니를 지켜보던 그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 가슴 벅찬 행복으로 다가왔다. “일상 속의 작은 기쁨,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행복인 것 같아요.” 남다른 고통을 이겨내고, 실질적 도움을 주려고 공부한다는 기특한 마음까지, 지선 씨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언제나 희망 이상의 존재감으로 큰 감동을 주는 그의 내일을 가슴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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