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의인(八方義人)] 희망과 기적의 증거, 지선아 사랑해
▲ 지난 24일, 유열 씨의 기부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준 지선 씨(가운데)
유난히 더웠던 지난 24일, 이지선 씨가 재단을 찾았습니다. 결혼을 기념해 기부한 가수 유열 씨를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제나처럼 밝고 긍정적인 기운에 주위가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표정에 그늘이 느껴졌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힘드네요.”하고 말하는 지선 씨를 보니 멀리 미국에서 하고 있는 공부도, 유난히 더운 여름도, 방학 마다 반복되는 수술도 조금은 힘이 드나봅니다.
12번 째 생일을 맞은 지선 씨
오늘은 지선 씨의 열두 번째 생일입니다. 12년 전 7월 30일, 그녀는 죽음같은 시간을 보내고 새 삶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저서 ‘지선아 사랑해’에서 “7월 30일은 저의 덤의 삶이 시작된 또하나의 생일입니다”라고 썼던게 생각납니다.
덤의 삶을 얻은 날, 그녀는 고작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2000년, 만취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얼굴을 포함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어 탄식과 절망을 자아냈던 그녀가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지겨울 만큼 반복해야 하는 피부이식수술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지만, 지선씨는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인가봅니다.
▲ 2012년 7월 30일, 12년 전 함께 사고를 당했던 친오빠와의 대화 내용 (출처 : twitter.com/ezsun_net)
손을 잡으니 행복한 사람들
▲ 재단의 든든한 후원자셨던 故박완서 선생님과 이지선 씨.
“삶은 선물입니다.” 하고 힘주어 말하는 지선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그녀의 책 ‘지선아 사랑해’를 푸르메재단이 처음 접한 것이 벌써 7년 전입니다. 2005년 봄, 백경학 상임이사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지선 씨에게 무작정 편지를 썼습니다. “자신이 당한 고통과 불행을 개인적인 문제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같은 고통을 당한 수많은 장애환자를 위해 아름다운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말입니다.
지선 씨는 “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정말 기대가 된다며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하게 될 것을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선씨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가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손에 손을 잡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7시간 22분, 장애어린이를 위한 숨 가쁜 도전
▲ 2009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에서 태극기를 들고 결승점을 들어오는 지선 씨
2009년 11월 뉴욕, 모두를 눈물 흘리게 한 첫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푸르메재단의 재활병원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지선 씨는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땀을 배출할 수 없는 화상환자에게 42.195km를 마라톤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운동입니다. 일곱 시간 하고도 22분이 지나 해도 지고 관객들도 자리를 뜨고 진행요원도 바리케이트를 철거하기 시작할 때, 멀리서 지선 씨가 나타났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결승점을 통과하자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달려온 작은 동양 여성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 2010년 3월 21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지선 씨와 함께 뛰는 100명의 푸르메 희망천사 모습.
함께 뛰니 덜 힘들다며 지선 씨는 자신의 기록을 40분이나 단축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다가 걷다가 결국은 42.195km의 기적을 만들어낸 지선 씨. 이듬해 3월에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이번에는 지선 씨가 마음을 움직여낸 100명의 기부자와 함께, 등 뒤에는 마음을 나눠준 사람들의 이름을 써붙인 채였습니다. 지선 씨의 “함께 하자”는 목소리에 얼마나 큰 힘이 있었던 걸까요. 함께 뛴 사람들, 후원 기업, 각종 마라톤 동호회, 모임을 포함해 1,000여 명이 지선 씨의 이름으로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기적을 이어가는 우리
“배워서 남주자”며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 멀리 미국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적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11일에는 빼빼로데이에 과자 대신 사랑을 전하는 ‘애정남녀’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선 씨가 직접 SNS를 통해 진행하다보니 한국시간에 맞춰 24시간을 꼬박 컴퓨터 앞에 매달려서 실시간으로 소통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손을 잡고 뜻을 모으는 일이 재미있고 행복하다며 힘든 기색이 없습니다.
▲ 지선 씨가 직접 만들어 SNS로 공유한 포스터(?) (출처 : twitter.com/ezsun_net)
지선 씨의 SNS를 통한 말걸기에 화답한 사람은 지금까지 2,336명.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게 될지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벅찹니다. 기적처럼 살아난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유머가 다시 기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주는 그녀에게 푸르메재단과 함께 꿈꾸는 ‘재활병원’은 얼마나 큰 의미일지요.
내년에 첫삽을 뜰 목표로 그 계획을 구체화해가고 있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이지선씨와 함께 희망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힘든 마라톤에서도 주저앉지 않던 그녀의 모습처럼 많은 장애어린이들이 이지선씨의 모습을 보며 희망의 꿈을 키울 것입니다. 푸르메재단의 오늘과 내일을 있게한 그녀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전합니다.
* 글= 이예경 간사(기획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