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이 만든 기적

손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팔을 잃은 병사가 아기를 안아주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진을 봤습니다. 이 병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잘 치료해 주세요”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활병원이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1946년 미국 뉴욕대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앞으로 수백 통의 편지가 배달됐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상이군인들에게 작은 희망을 달라’는 내용과 함께 적지 않은 편지 안에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회사원과 주부, 은퇴자, 죽음을 앞둔 할머니 등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기금을 보낸 주인공이었습니다. 몇몇 기업가는 원하는 만큼 금액을 적어 사용하라고 아예 백지수표를 보냈습니다. 당시 ‘월가의 큰손’으로 불렸던 금융재벌 버나드 바루크를 비롯해 영화와 부동산 투자로 거부가 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 등이 헌신적으로 모금 운동에 참여하면서 재활병원 건립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미국인들의 끊이지 않는 기부 행렬로 세계의 중심 뉴욕 맨해튼에 세계 최초의 재활병원인 러스크재활병원이 1951년에 세워졌습니다. 이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재활기금을 조성해 세계 100여 개국 의사와 치료사를 초청해 교육하면서 재활의학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당시 미국에 재활병원 건립이 절박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전선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대거 귀환했습니다. 4년이 넘는 참혹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여야 했던 죄책감과 공포로 정신분열과 실어증 같은 정신장애를 앓게 된 사람과 부상자가 67만 명을 넘었습니다.


 


내달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 문열어


군의관으로 참전한 내과의사 하워드 러스크 박사는 부상 군인에게서 “침상에 누워 거미가 집을 짓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목격한 러스크 박사는 아서 슐츠버거 뉴욕타임스 회장에게 요청해 재활 치료와 병원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장장 20년 동안 뉴욕타임스에 연재합니다. ‘의사들이 더이상 해줄 것이 없을 때 재활 치료는 시작된다’로 요약되는 그의 주장이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면서 병원 건립이 사회운동으로 확산된 겁니다. 러스크재활병원은 이런 감동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 효자동 사거리에 다음 달 문을 여는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가 그것입니다.

시민과 KB금융, 신한은행, SK텔레콤 같은 기업이 기금을 내고 종로구가 터를 제공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문을 열게 되면 매일 250명, 연간 7만 명의 어린이가 재활 치료를 받게 됩니다.


푸르메재단이 ‘가난과 장애’의 이중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어린이를 위해 재활병원을 짓자는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2005년입니다. 지난 7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하고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매달 용돈을 절약해 보내는 어린이부터 출간된 책의 첫 인세를 기부해주신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3000명이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소중한 내 것을 나누겠다는 후원자들의 전화를 받으면서 세상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3월 초 소설가 신경숙 님께서 편지를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박완서 선생님께서 관심을 쏟으셨던 어린이재활센터가 세워진다니 저도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 싶습니다.” 뉴욕에서 스승의 부고를 전해 들은 신경숙 님은 문학의 어머니였던 박완서 선생님의 뜻을 어떻게 이을까 고민하다 최근 받은 상금을 흔쾌히 보내주셨습니다.


부산 미시간치과 이희숙 원장님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어린이치과진료를 시작하는데 아직 어린이 진료의자(유닛체어)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동안 돕지 못해 마음에 걸렸는데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하고 흔쾌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월급을 쪼개 보내주시는 청렴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님, 어려울 때마다 후원해 주시는 원택 스님, 시를 지어 후원해 주시는 정호승 선생님, 사무실로 소포 배달을 왔다가 기부해 주시는 퀵서비스 아저씨, 노숙인 치과 진료봉사 때면 ‘슈퍼맨’처럼 나타나는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재활센터의 천사입니다.


 


7년간 모금에 동참한 국민들이 주역


우리 사회에 재활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는 30만 명이나 됩니다. 어린이 장애는 선천적인 이유도 있지만 기침이나 고열, 경기 같은 사소한 것도 원인이 됩니다. 조기에 발견해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데 때를 놓쳐 평생 고통을 받습니다. 아이 치료에 매달려 전국 병원을 떠돌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제때 제대로 치료만 할 수 있다면 어린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의료장비를 갖추고 가난한 어린이를 치료하려면 기금이 필요합니다. 평생 누워 지내야 한다고 판정받은 어린이가 혼자 앉고 걸을 수 있는 기적을 어린이재활센터가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손을 잡아주실 거지요?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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