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무료병원 기적 만들다
미국 텍사스 스코티쉬라이트 어린이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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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준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에서는 2011년 11월, 미국 의료기관의 선진적인 기부와 자원봉사
모델, 어린이 환자들을 배려한 우수한 시설을 벤치마킹 하고자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에 위치한 텍사스 스코티쉬라이트 어린이병원(Texas Scottish Rite Hospital for Children)을 방문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TSRHC의 설립과 역사, 주요사업과 시설에 대해 소개하고, 다음 편에는 TSRHC의 기부와 자원봉사 운영 모델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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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병원, 존스홉킨스의대, 록펠러의학연구소, 엠디앤더슨암센터와 스코티쉬라이트 어린이병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잘 알려진 미국 최고의 의료기관인 동시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자선가들의 '기부'에 의해 세워진 미국 의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일찍이 다수를 위한 도매자선(wholesale charity)에 중요성을 둔 미국 기부문화의 힘을 일깨워 주는 곳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90년의 역사를 가진 텍사스 스코티쉬라이트 어린이병원(이하 TSRHC)이다. 이 병원은 설립 후 현재까지 기부와 나눔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진료비를 전혀 받지 않고도 병원 운영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앞선 기부문화와 함께 TSRHC 직원들의 장애어린이 치료를 위한 투자와 노력이 뒷받침 되어왔기 때문이다. 빈부를 떠나 제때, 꼭 필요한, 수준 높은 치료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이들의 장애어린이를 향한 사랑이 이와 같은 기적을 이어오고 있다.
TSRHC은 1921년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치료비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의료적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텍사스주 최초의 소아정형외과 의사 W. B. Carrell이 미국의 자선단체 메이슨그룹에 제안하여 문을 열었다. 1950년대에 백신 개발로 소아마비가 근절된 이후에는 척추측만증, 내반족, 사지결핍증 등과 같은 정형외과적 질환, 1965년부터는 읽기장애와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위한 치료센터를 설립하는 등 치료영역을 넓혀왔다. 2000년대부터는 근골격계 및 신경학적 질환 치료법 연구를 위한 최첨단 연구센터를 운영하는 등 현재 TSRHC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꼽히는 소아정형 전문센터로 발전했다.
팝콘 향 가득한 놀이공원 같은 병원
진료비 청구서가 없는 병원, 70가지 이상의 활발한 연구활동 진행, 매년 4만 명의 외래환자, 1만5천 명의 입원환자가 찾아, 설립 이래 2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돌봐온 이곳은 1977년 3,500만 달러의 기부금이 조성되어 연면적 10,792평으로 새로 지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정감을 주는 옅은 베이지색 톤을 지닌 외관은 병원 같지 않은 모습을 풍긴다. 어린이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해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높지 않게 지었다.
지하 1층 가운데 위치한 접수대(clinic appointment desk)는 단이 낮고 알록달록한 도형 문양이 새겨져 아이들이 찾아오고 싶게 만들었다.
병원 내부로 들어서면 건물 전체에 고소한 팝콘향이 퍼지는데 그것은 바로 지하 1층 Clinic area 로비에 위치한 팝콘 차
때문이다. TSRHC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팝콘 맛을 본 어린이들은 이곳을 잊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로비 천정에는 장애어린이들의 재활의지를 고취하기 위해 헤이거 가족으로부터 기부 받은 커다란 인형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오는 내내 코와 눈이 즐거워 마치 놀이동산에 놀러 온 기분이 든다. 병원 곳곳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과 작품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기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작은 것 하나까지 기부자들의 손길로 구성되었고, 기부자의 뜻을 알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진료실과 검사실들이 자리하는 지하 1층 clinic area 복도바닥은 전체가 밝은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 방문하는 어린이 환자들이 쉽게 찾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치료가 끝났거나 TSRHC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는 Family Resource Center를 찾아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외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 환자들은 병원을 찾으면 먼저 접수대에서 보라색 스티커를 받아 스티커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당일 예약장소로 찾아간다. 그렇게 찾은 곳에는 혈액검사실, 정형외과 진료실이라는 이름 대신에 hockey exam, soccer exam, mermaid room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이 붙은 방이 기다리고 있다.
진료실로 들어가면 의료진의 책상은 찾아볼 수가 없고 바닷속을 표현한 예쁜 커버가 덮인 진료용 침대만이 자리하고 있다. 의료진은 진료실과 연결되는 공동사무공간에서 문을 열고 나타나 아이들을 반긴다. 어린 아이들이 의사를 처음 만나면 겁에 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계상 반영한 내용이다. 진료대기실엔 지루함을 없애주는 그림자 놀이터(shadow garden)가 자리하고, 소독냄새를 대신한 팝콘향이 가득하며, 빨간색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 곳곳에는 어린이 환자들이 즐겁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환자 중심의 인테리어와 아이디어가 숨어있다.
환자도, 직원도 기부자가 되어 최고 병원을 만든다
지하 2층 보조공학실에서는 정형, 미용, 일상생활 등에 도움을 주는 인공보형물과 보장구를 제작한다.
텍사스 레이싱팀 Speedway로부터 첨단장비를 기부 받아 보장구 제작기간이 단축되었다.
지하에는 큰 공간을 가진 보조공학실이 위치한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 36명 중 4명은 장애인이고, 그 중 관리자 2명은
TSRHC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였다고 한다. 보장구 또한 이 병원 환자들에게 무료로 지원하고 있는데, 환자 1인당 $5,000에서 $40,000에 이르는 수준이다.
보조공학실 내부를 둘러보다 재미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커다란 기계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1999년 텍사스의 레이싱팀 Speedway의 Children's Charity로부터 기부 받은 최첨단 3D 스캔 방식의 CADCAM이다. 의족, 의수 등 맞춤형 보장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5~6주가 소요되었는데 이 장비를 기부 받은 후 기간이 단축되어 현재는 1~2주 만에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Sarah M. and Chales E. Seay의 기부로 세워진 research center에서는 의료진들이 근골격계(hip, arm, hand, spine, leg)와 관련한 연구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여 TSRHC에서는 현재 2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센터 입구에는 상지 절단장애 어린이들의 꿈을 지원하는 특수 골프채, 척추측만 환자를 위한 척추교정 스탠트 등 다양한 기술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척추측만 환자를 위한 특정 기술의 경우 기존 5~6개월이나 걸리던 입원치료기간을 1주로 단축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한다.
또한 3층에는 100개의 병상을 갖춘 입원병동이 있다. 모든 병실은 1인실로 각 실마다 환자 연령과 상태에 따라 달리 사용할 수 있는 두 종류의 침상이 비치되어 있고, 보호자를 배려한 침상이 별도로 구비된 병실도 있다. 병동입구 간호스테이션 옆에는 이곳에 입원 중인 어린이들 중 치료가 길어지는 환자를 고려해 수업이 진행되는 병원학교가 자리한다. 현재 교사 2명이 파견되고 있고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정규교육 과정으로 인정되고 있다. 치료뿐 아니라 수업 일정 또한 담당 의사, 간호사와 함께 상의하여 계획하고 있다.
TSRHC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①텍사스에 거주 중인
②18세 이하의 어린이로,
③소아정형외과, 신경학적 장애 등과 관련한 의사 추천을 받고,
④치료 후 개선가능성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
무료병원이라는 특징 때문에 보험이 없는 저소득가정 어린이가 1순위 이용자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치료 가능한 질환인지 여부이다. 경제력 있는 가정의 어린이들은 치료 받은 후 기부 의사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병동을 따라 나오면 예쁘게 꾸며진 Child Life Playroom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내부에는 청소년 환자들이 영화를 보거나 악기연주를 할 수 있는 Teen Room도 자리한다. 이런 놀이공간에도 안전을 위해 전문 치료사가 상주하고 있어 아이들에게는 놀면서 치료도 하는 1석2조의 즐거운 공간이 되고 있다.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한 어린이들은 Playroom 옆에 위치한 재활치료실을 찾는다. 열심히 치료 중인 어린이 모습을 연상케 하는 치료실 벽면 그림들이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의 치료를 돕고 있는 듯 했다.
병원 외부에는 나무가 울창한 Allan Shivers Park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은 前 텍사스 주지사이자 TSRHC 이사진이던 Allan Shivers가 신체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30년 전에 기부하여 조성된 것이다. 군데군데 뛰어 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다양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규모 있는 놀이터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병원 이용자들의 치료와 놀이 목적의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 내 유치원, 가족단위 돌잔치 등을 위해서도 대여하는 공간으로 현재까지 1천여 기관에서 이용해왔다고 한다. 병원에서 만든 놀이터이지만 병원 환자와 더불어 지역 내 비장애 어린이들도 어울릴 수 있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되고 있다.
선순환 나눔 운영 모델을 이어가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고 대개는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국민 모두가 평등한 건강권을 누리지는 못하는 안타까운 환경이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경우 꾸준한 치료와 재활, 각종 보조기구 등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것은 한국과 같은 현실이다. TSRHC는 텍사스 메이슨그룹의 가치와 철학을 기반으로, 고품질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동시에 나눔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는 병원이라는 점에서 민간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높은 의료의 질을 보장하면서도 서비스 내용과 시설 면면이 어린이 눈높이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전문가 추천에 의해 찾은 환자 모두에게 전액무료로 치료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와 부모들은 무료진료를 받는다는 낙인과 불필요한 시선을 받지 않고 배려 깊은 시스템 속에서 기쁜 마음으로 치료를 받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치료 받은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을 위해 또다시 나눔 운영에 동참하게 되는 선순환 시스템. 아직까지 우리 현실에서는 쉽게 와 닿진 않지만 한국형 나눔 운영 모델을 추구하는 푸르메재단이 본받을 점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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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는 기부와 자원봉사 등 TSRHC의 나눔 운영 모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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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기획홍보팀 김수민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