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의 재활은 세상과 소통하는 부활
장애 어린이의 재활은 세상과 소통하는 부활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
벌써 10년이다. 내 동생 박승일이 루게릭이란 병을 짊어진 채 루게릭전문요양소 건립이라는 희망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껏 루게릭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의미 있는 일이라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단 한 명도 치료받지 못했다는 불치병이 가져다준 절망 속에서, 병으로 고통 받는 동생과 그 곁을 지켜야 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최근에야 병상에 누운 동생이 그리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동생의 간절함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 동생은 손을 움직일 수도, 걷지도, 먹지도, 혼자 숨을 쉬지도 못 한다. 굵고 멋있었던 목소리는 생사를 거는 사투를 하는 동안 생명 줄이 돼 버린 호흡기와 바꾸어야만 했다.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단지 내 희망일 뿐.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모든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이 돼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어왔기에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동생의 지금 움직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재활. ‘좀 더 나아져서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이란 의미에서 재활은 루게릭 환자에게 꿈에도 그리는 기회가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승일이에게도 ‘재활’의 시간이 찾아왔다. 동생은 그 순간을 ‘재활’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말했다. 바로 같은 근육병을 겪으면서 연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신형진 씨와의 만남이다.
승일이가 글자판(종이에 자음 모음을 적어 놓은 판)으로 의사표현을 간신히 하고 있을 무렵인 2004년 가을. 텔레비전에선 태어난 직후 근육병을 앓기 시작한 대학생을 이송하기 위해 미국이 군용기를 띄웠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신 씨가 사용한다는 안구 마우스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아들 때문에 눈앞이 깜깜했을 신 씨 어머니를 수소문해 죄송한 마음을 뒤로하고 안구 마우스의 구입 경로를 물었던 게 인연이 됐다.
‘형진이를 만나고 싶다’던 승일이의 희망은 그로부터 몇 해 지난 뒤 둘이 같은 병실에 입원하면서 이뤄졌다.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서 힘을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승일이는 눈으로 말하는 글자판을 이용했고 형진이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겠냐. 얼마나 힘드냐.”(승일)
“아니, 나는 땅을 못 밟아 봤으니 어떤 기분인지 모르지만 형은 펄펄 날던 몸이 그렇게 됐으니 얼마나 힘들겠어?”(형진)
두 사람이 나눈 짧은 대화는 내게 오래 남았다. 진정한 재활이란 세상과의 소통이 아닐까. 완치가 어려운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이들이라도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을 방법을 제공하고, 마음을 깊숙이 어루만져 줄 공간이 필요하다.
장애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을 짓겠다는 푸르메재단이 장애어린이들의 육체적 곤란뿐만 아니라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는 일까지 거들어줄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장애어린이들이 움츠린 마음을 펴고 세상과 손잡을 수 있게 하는 재활의 공간이 우리 사회에 꼭 태어나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글 :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박승일 농구선수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