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유전자’ 장애어린이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나눔 유전자’ 장애어린이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어린이재활병원 설계 재능기부한 김자호 간삼건축 회장
백발의 노신사가 당당한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흰색 뿔테 안경 만큼이나 미소가 밝았던 이 사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자호 간삼건축 회장(66)이다. 간삼건축은 푸르메재단이 건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의 설계를 재능기부로 맡아준 회사이다. 500여명의 직원들이 연간 13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공사비 기준 2조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 자체가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 특유의 자신감과 유쾌함으로 시종일관 인터뷰를 이끌었던 김자호 회장.
72년 도일(渡日)해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 건축사 1급 자격을 취득한 김자호 회장. 일본 복지시설 이야기를 시작하며 꺼낸 첫 마디였다. 건축의 트렌드를 이끌어온 거장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그리고 장애인 복지의 핵심을 짚어내는 그의 식견이 놀랍기도 했다.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 같은 전문 의료기관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본에 수십 년 뒤져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같은 핵심 인프라와 함께 지역사회 곳곳에 수많은 재활기관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래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 한때 (우연히) 패션모델로
활동했다는 김 회장은 사진촬영 포즈도 남달랐다.
김자호 회장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면서 장애인을 구분짓고 격리하는 현실을 보면서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배려한 설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행복하다는 것은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의 장점도 없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뒤섞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창출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마지막 떠날 때는 병원 침대 한 칸 뿐이라는 김자호 회장은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돈을 잘 써야 부자”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분명한 철학도 돋보였다. 사회 분위기에 밀려 억지로 회사돈으로 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간삼건축은 신입사원들이 의무적으로 해비타트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눔과 배려심을 기르게 한다.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회장의 나눔 유전자는 그 뿌리가 깊어보였다. 선친은 대한외과학회장을 역임하고 평생 형편 어려운 환자 돌보는데 헌신했다. 큰형도 의사로 아프리카 등지에서 30여년 의료봉사를 펼쳤고, 둘째형은 의사이자 가톨릭 신부로 전세계를 돌려 인술을 나눴다. 김자호 회장은 의료와 봉사에 대한 이 같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무료진료소 전진상의원의 설계를 무료로 재능기부했다.
▲ 간삼 설계의 철학이 담긴 ‘인간-시간-공간’
작품 앞에서. 김 회장, 백경학 상임이사, 오동희 사장.(오른쪽부터)
“설계하고 나서 김수환 추기경께 ‘저 천당표 한 장 주세요!’ 했더니, ‘그런 거 있으면 나도 한 장 달라’고 하셔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간삼건축이 병원 설계를 그 동안 많이 해왔는데, 집안 배경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IT만큼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겪는 의학분야에 대한 이해, 오랜 기간 병원설계를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 설계에 나서겠다는 김자호 회장. 기부금으로 세워지는 병원인 만큼 불필요한 낭비 없이 효율적인 설계를 강조했다.
특히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의 사정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밝혔다.
고 김수근 선생이 “인간(人間)과 시간(時間), 공간(空間)을 생각하면서 집을 지으라”면서 사명을 지어줬다는 간삼(間三)건축. 판소리를 즐겨 부르는 넉넉한 인품 속에서도 날카롭게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간삼건축을 굴지의 건축사무소로 키운 김자호 회장.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에 대한 ‘3차원적’ 접근을 통해 진정한 이용자 중심주의가 구현되는 ‘아름다운 작품’을 기대해본다.
*글/사진 = 정태영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