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발그리스트 대학병원, ‘병원안의 작은 사회’

스위스 발그리스트 대학병원은 진료와 치료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발병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다지기 위한 곳이 발그리스트 대학병원(Balgrist University Hospital)이다. 이곳은 척수손상 환자 전문 재활 병원으로 전문적인 진료와 재활치료 뿐만 아니라 연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 입원 한 환자들의 하루는 그룹 식사로부터 시작된다. 병원에서 그룹 치료를 본 적은 있어도 그룹 식사는 처음이었다. 이동이 어려운 몇몇 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식당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한다. 비슷한 증상과 어려움을 가진 환자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서로 격려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재활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퇴원 후에 휠체어로 식당을 가더라도 어색하지 않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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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식사를 위한 식탁

날 놀라게 한 것은 그룹 식사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있다는 그룹 야외활동이다. 작업치료사,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환자들이 그룹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은 영화를 보러 가거나 마트를 가거나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이렇게 환자들은 퇴원을 하기 전에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적응과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이런 병원의 시스템에 나는 감동하였다. 한국에서 봐왔던 환자들의 대부분은 A 병원 다음은 B 병원 이런 식으로 몇 년씩 전국의 병원을 전전긍긍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퇴원 후에 사회로의 복귀라는 재활 치료의 목표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놀랍고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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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각자의 휴식을 배려한 4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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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독립생활을 돕는 첨단설비를 갖춘 특실

환자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병실을 둘러보기로 했다. 상위 손상 환자를 위한 고급 병실에는 움직임이 어려운 환자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최첨단 기계가 있었다. 음성 인식으로 전화를 걸거나 간호사를 부를 수도 있고 TV를 켜거나 불을 켜고 끌 수도 있다는 신기한 장치가 침대와 연결 되어 있었다. 병실에 딸려 있는 화장실 역시 최신식이었다. 벽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바와 이동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높이 조절 의자와 샤워 벤치가 놓여 있었다. 일반 병실의 경우도 4인실이라고 하지만 춤을 춰도 될 만큼 넉넉한 공간에 각 침대마다 TV와 조명등이 있어 환자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 주고 있으며 심신이 지친 환자들이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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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딸린 특수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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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스케줄 담당 직원

이 청년은 모든 환자들의 스케줄을 담당하고 있다. 매주 환자들이 처방 받은 치료에 대해 정리하고 이동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스케줄을 짜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간호사와 치료사가 환자의 스케줄을 조정한다. 가끔 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다른 치료와의 연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는데, 여기는 확실히 역할이 분담되어 그런 수고를 덜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치료실을 둘러보았다. 사실 제일 궁금한 곳은 작업치료실이었다.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에게 의미 있고, 목적 있는 활동으로써 작업치료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금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작업을 이용한 치료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작업치료가 이곳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이곳의 작업치료실은 한국의 치료실과 같지만 달랐다. 작업치료사가 있고 환자가 있고 테이블과 많은 도구들이 있었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 한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환자는 몇 주에 걸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치료사와 보조도구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나에게 설명하였다. 치료실 곳곳에는 환자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환자들이 이런 미술 활동에 흥미를 보이며, 개인이 선호하는 것에 따라 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비즈공예를 하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치료실 한쪽은 목공소라고 착각할 정도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환자의 경우는 여기서 문패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 목공예 작품을 만들기도 한단다. 이런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에서 작업치료사로서 일을 하면서 병원의 예산 문제로 물품 구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핑계꺼리가 있지만, 내 환자들의 흥미나 선호에 상관없이 책상 앞에서 똑같은 치료만 반복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의 작업치료실은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작업치료실과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ADL(Activity of Daily Living)실, 개인에 맞게

보조기를 제작할 수 있는 공간과 휠체어 처방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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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작품으로 가득한 작업치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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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훈련(ADL: Activity of Daily Living)실

물리치료실은 작업치료실에 비해 확 트인 공간이었다. 달리기를 해도 될 만큼 넓은 공간에 다양한 걷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수평바와 다양한 높이의 계단과 암벽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또 치료실과 연결되어 있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니 다양한 종류의 계단과 바닥과 턱이 있었다. 여기서 환자들은 외부 활동에서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 충분한 훈련과 연습을 하게 된다. 물리치료실 옆에는 환자들의 체육관이 따로 있었다. 근력 향상을 처방 받은 환자들은 이곳에서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찾아와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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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기능향상을 위한 다양한 설비를 갖춘 물리치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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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운동치료실

다음 나를 안내해 준 곳은 수중운동치료실이였다. 그냥 보기에는 큰 수영장 같은 이곳에서 개방된 상처나 특별한 위험 요인이 있지 않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수중치료를 받게 된다. 환자와 치료사는 일대일로 세션을 진행하며 이동을 위한 장비와 치료에 필요한 보조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물속에서 움직임은 자신의 움직임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지의 움직임이 신경 회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 병원은 연구 중이라고 했다. 물속에서의 운동이 더 필요하고 안전에 대한 위험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한쪽에 설치된 수영장에서 걷는 등 독립적으로 운동을 할 수도 있었다.


보행연습실에서는 환자 한분이 보행 훈련을 받고 있었다. 로코마트(LOCOMAT)에 체중을 지지하고 앞에 보이는 시뮬레이션 화면을 통해 실제로 걷는 것과 같은 환경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환경에 의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는 않는지 체중이 한쪽으로 치우쳐 지거나 실수가 있을 때는 즉각 고쳐 가면서 최대한 실외에서 걷는 것과 같은 환경에서 퇴근을 위한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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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훈련을 위한 로코마트(LOCOMAT)설비

척수전문재활 병원이라는 명성에 맞게 발그리스트 대학병원은 전문적인 치료와 더불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첨단 시설과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에서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치료를 모든 환자들에게 다양하게 제공 되는 환경은 부럽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야할 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나서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과 시스템에서 내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나도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병원이었다.


푸르메재단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유수의 병원들을 둘러보고 한국에도 전문화 된 재활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얘기 했을 때, 방문을 해줘서 고맙다며 전문성을 가진 재활병원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며 친절하게 병원 안내를 도와준 발그리스트 대학병원의 스태프들과 환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박세숙(삼육재활병원 서울외래센터 작업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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