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울메이트
[김정란/푸르메 한방 어린이재활센터 간호사]
▲ 한방재활센터의 나이팅게일 김정란간호사
역사 속 유명한 인물 옆에는 늘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는 그림자 같은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등의 명화를 남긴 빈 센트 반 고흐의 평생의 벗이자 마음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처럼 말이죠. 테오는 고흐가 그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생활고로 인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형을 위해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병들어 홀로 생을 마감한 고흐의 마지막을 지킨 것도 테오였습니다. 고흐 곁에 테오 같은 파트너가 없었다면 오늘 날 우리는 고흐의 걸작을 감상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이하 한방재활센터)에도 고흐와 테오처럼 마음이 잘 맞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습니다. 허영진 원장과 김정란 간호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2007년 8월에 문을 연 한방재활센터는 그 동안 약 119명의 장애어린이들을 치료 했고, 43명의 저소득 장애어린이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며 장애어린이 재활치료에 새로운 희망이 되어왔습니다. 이렇게 한방재활센터가 장애어린이들의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심껏 재능 나눔을 해 온 허영진 원장의 노력과 늘 그림자처럼 그 곁을 지켜 온 김정란 간호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초진 상담을 하고 있는 김정란 간호사
오늘은 한방재활센터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며 내 아이처럼 장애어린이들을 돌보는 김정란 간호사를 만나보았습니다. 문득 허영진 원장과 김정란 간호사의 첫 만남이 궁금해 졌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허 원장님의 병원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됐는데, 절 보자마자 목발을 짚고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주셨어요. 그때는 원장님이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시기에 ‘나를 아시는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함께 일하며 알게 됐지만 원장님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세요.) 사실 원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장애인이 의사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원장님을 만나고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할까요? 꼭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면접에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허영진 원장은 한방재활센터 말고도 꽤 오래 전부터 다른 여러 기관에서 치료봉사를 해오고 있는데요. 그 동안 허영진 원장이 치료봉사를 가는 곳에는 김정란 간호사도 늘 자리를 함께 해왔습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몇 년을 한 결같이, 쉬는 날도 반납한 채 치료봉사에 함께 했다는 것은 직업적 책임감을 넘어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요. 무엇이 간호사님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요?
“어느 날부터 원장님께서 일요일에도 치료봉사를 다니셨어요. 처음 몇 번은 원장님이 가시니까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됐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봉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너무 좋은 거에요. 그 뒤로는 원장님이 따로 말씀 안 하셔도 제가 열심히 다녔어요. 그러던 것이 이제는 생활이 된 것 같네요. 특별히 봉사를 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요. 그런데도 다녀오면 참 행복해져요. 이런걸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고 하면 될까요?(웃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허영진 원장과 김정란 간호사의 호흡은 자타가 공인하는 환상적인 수준인데요. 그 때문에 간혹 친척이나 부부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께서 부부냐고 물으신 적이 있으셨어요. 순간 너무 놀라서 혹시 오해가 될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보았죠. 그러자 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그런 뜻이 아니라, 원장님과 간호사님이 서로 너무 잘 알고 살뜰히 챙겨 주시는 것 같아서요’ 라고 하셔서 마음을 쓸어 내렸죠. 가끔 이렇게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긴 해요.사실 원장님과 처음부터 잘 맞았던 것은 아니에요. 단둘이 일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작은 오해들이 생길 때가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오해도 원장님을 잘 보필하고 있다는 칭찬이잖아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처음엔 아이들이 호전되는 것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대단했어요. 그런데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걷는 것을 보면 말도 했으면 싶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학교에도 가고 사회생활도 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지요. 장애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고 하잖아요. 어느 정도 완화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장애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걸 알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아이 상태가 좋아져 기쁜 순간에도 ‘지금보다 조금만 더 좋아졌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늘 남아있게 됐어요. 장애어린이를 둔 부모님들 마음 또한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좋아질 가능성이 항상 남아 있는 거니까 희망도 늘 함께하는 거겠죠. “한방재활센터에는 종종 눈물파티가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감동의 눈물이지요. 다리에 힘이 없어 기어서 왔던 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고, 다운 장애를 가지고 있던 아이가 더 이상 장애아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감동의 순간들을 여러 차례 함께 해 온 김정란 간호사의 감회도 남다를 것 같았습니다.
장애어린이들을 내 아이처럼 사랑하는 김간호사는 실제로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일을 하고 봉사도 다니느라 늘 바쁘실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떻게 챙겨주시는지 물었습니다.
“특별한 육아방법은 없어요. 건강하고 예의 바르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에요. 공부 잘하라는 말 대신에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죠. 사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요.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게 최고 아닌가요? 제가 봉사 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인지,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좋아해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장애인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나눌 것이 있으면 장애어린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교육이 된 것 같아서 부모로서 뿌듯해요.“
그 동안 한방재활센터 어린이들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기적은 허영진 원장의 진심 어린 진료와 함께 김정란 간호사의 헌신적인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는 말 속에 부모의 마음으로 장애어린이를 품어주는 김정란 간호사의 진심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더 많은 장애어린이에게 닿아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글= 김수현 모금사업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