쉔브룬 장애인 종합복지타운
'쉔브룬'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예뻐서 가는 길이 조금 더 설레고 즐거웠던 곳입니다. "아름다운 샘이라니 어떤 곳일까" 하고 기대하면서 가는 길은 그냥 가는 길하고는 확실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안개가 너무 짙어서 거의 수중을 헤치고 간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쪽 지방은 워낙 안개가 심하다고 하는군요. 보통 오전 11시가 넘어야 안개가 걷히고 햇빛을 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독일에 있는 동안 오전에 햇빛 본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날 역시도 그러려니 하며 오리무중(五里霧中)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달려왔더니 여덟 시 반도 안돼서 도착해 버렸습니다. 어디 들어가서 기다릴 곳도 없고 해서 일단 타운 입구 부근의 풍경을 찍었습니다.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 들어 모두들 덜덜 떨면서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타운 입구입니다. 나무 뒷편으로 높이 솟아 있는 구조물이 보이시나요? "마이 바움"이라는 것인데 우리말로 하면 "5월의 나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엄청 높아서 끝을 올려다보기도 힘들어요. 마을 입구마다 이 아름다운 구조물이 있는데 기둥 양 옆으로 그 마을의 특징을 살린 예쁜 그림들이 달려 있어요.
드디어 우리를 안내해 주기로 약속한 분이 나왔습니다. 이 타운의 대외홍보를 맡고 있는, 우리로 말하면 홍보실장쯤 되는 분이라고 합니다. Cornelia Romme 씨입니다.
아마도 출근하자마자 손님을 맞아야 하는 게 정서상 좀 불편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빡빡한 일정을 설명하며 미안해하니까 이내 얼굴표정이 풀렸습니다.
이 시설은 정신지체 및 정신장애 위주의 시설로,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신지체 및 장애 시설이라고 합니다. (정신지체는 발달 관련 장애이고, 정신장애는 정신질환 관련 장애, 즉 각종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분들을 지칭합니다.)
비장애인 어린이도 이 타운 안에서 학교를 다니며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더니, 부모가 장애인인 경우에는 비장애인 자녀라 하더라도 자녀와 함께 타운에 입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반대의 경우, 즉 자녀는 장애인이고 부모가 비장애인인 경우는 부모는 입소할 수 없다고 하네요.
나이만큼이나 장애의 종류나 정도도 다양합니다. 장애가 경미하고 직업훈련 및 사회생활 훈련이 잘 된 경우에는 회사에 취직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시설을 나가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실은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기도 하다고 하네요.
많은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있어서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다가 이 타운 안에서 작업을 해서 납품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해요. 직업교육과 수익사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죠. 타운이 워낙 큰 데다가 여기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한다고 하니, 이곳은 대규모 거주시설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대규모 공장단지이기도 한 거죠.
장애를 가진 분들은 대체로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안내해 주시는 분만 믿고 따로 일일이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니 바로 거센 항의를 받고야 말았습니다. 장애인 한 분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나오시더니 사진 찍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시더군요… 그 후로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이 종합복지타운 역시 그동안 방문했던 다른 시설들(어디든 방문하는 곳마다 30년, 40년은 기본인 것 같아요)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1863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니 도대체 몇 년 전인 거예요… 140년 됐네요.
프란치스쿠스(성 프란시스코, 또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설립해서 100년 넘게 운영해오다가 약 30년 전(1970년대)에 바이에른 주 정부 산하 복지기관이 인력관리 및 재정관리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도원도 여전히 재정지원 및 운영지원을 하고 있고요.
1970년대에 수도원에서 주 정부로 운영이 넘어가게 된 이유는, 수녀의 숫자가 급격히 줄고 남아 있는 수녀들이 점점 고령화되어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녀 1인당 2~3명씩 케어해야만 하게 되자 도저히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주 정부로 넘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거나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장애인은 800여 명이고, 타운이 고용하고 있는 비장애인은 1,100명이라고 합니다. 비장애인이 하는 일은 의료, 교육, 행정, 타운 관리, 중증장애인에 대한 생활보조, 작업장에서의 장애인 보호 및 작업지도, 그리고 장애인이 할 수 없는 작업(제품을 완성시켜서 납품하려면 비장애인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한 공정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등이라고 합니다. 고용된 비장애인들은 대부분 출퇴근한다고 합니다.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장애인 개인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은 더 이상 장애인 개인에게로 나오지 않고 대신 타운에 지급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체 타운 운영비에서 이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고, 주 정부 산하 복지기관과 수도원이 지급하는 보조금이 대부분의 예산이라고 합니다. 또 이곳에서 창출되는 수익도 일부분 있고요.
이렇게 부족할 것 없어보이는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도 불만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타운 안에서만 사는 것보다는 일반 사회 속에 어울려 살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평생이 될 수도 있는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단체생활이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개인의 가정집처럼 숙소를 꾸며놓고 원하는 사람은 그 집에서 따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게 작은 숙소들이 여러 개 있으면 전체 차원에서 관리하기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더 우선해서 보장하려는 이런 노력들이 쌓여서 오늘날 독일을 복지선진국으로 만든 거겠죠.
우리는 장애인의 생존권, 이동권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받기 위해서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이곳 독일의 장애인 복지는 행복권이 이미 기본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개개인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당당히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그런 차원까지 가아죠. 갈 길이 머니 마음도 바쁩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아자아자아자!!!
뒤이어 11시에 다음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에 이 넓은 타운을 제대로 다 둘러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루 날 잡아서 둘러봐도 다 못 볼 것 같은 이런 곳을 달랑 한 시간 반 동안 겉만 핥고 가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글/사진 = 김경림 (전) 푸르메재단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