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나?

 


에피소드 I (Gustaff씨 사례)[유병주/ 전 노원통합지원센터 소장]

12월 3일 월요일, 11시에 면담이 약속된 구스타프(Gustaff) 씨(46세, 여, 지적장애와 청각장애 중복)가 어머니와 함께 린덴마이어(Lindenmaier) 씨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를 지원하게 될 순회직원 슈렙(Schreeb) 씨도 10분전에 와서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내가 동참할 것이라는 연락과 함께 동의를 받았음에도 린덴마이어 씨는 다시 한 번 동의를 얻어 나를 소개한 후 모두 자리에 앉았다.


구스타프 씨는 현재 어머니(예술가)와 함께 커다란 집에 살고 있으나 어머니가 이곳 디아코니(Diakonie) 소속 노인독립주거 아파트로 옮기게 되면서 그녀 역시


옆 건물인 장애인독립주거아파트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구스타프씨는 현재 디아코니 슈테텐(Diakonie Stetten)이 아닌 부모회 소속 레벤스힐페(Lebenshilfe)로부터 순회지원을 받고 있다. 비록 법인은 다르지만 거주는 이 곳에서 하고, 순회지원을 누구로부터 받을 것인지는 그녀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기존의 레벤스힐페 직원이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참으로 사람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큰 목소리로 반복해서 설명한 후 모두 그녀가 생활할 아파트를 보기위해 나섰다.


아파트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두 기관이 힘을 합해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아파트는 40㎡정도로 방, 부엌, 화장실이 붙어있고 작은 발코니까지 있는 아담한 곳이다. 장애인독립시설은 55㎡를 넘지 않도록 건축해야하는 규정이 있다. 구스타프 씨는 현재의 집과 비교해, 그리고 자신의 예술활동을 위해서는 너무 협소하다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결국 순회직원 슈렙씨가 직접 현재의 집을 방문해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그 주 금요일까지 결정해서 알려주기로 했으나 여러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에피소드 II (아기예수 탄생극 공연사례)


12월 4일 화요일, 내가 묶고 있는 Haus 19에서 하루 종일 아기예수 탄생극(Krippenspiel) 연습이 있다고 해서 참석하기로 했다. 연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HPF(성인특수교육시설) 이용자로 우리나라의 성인주간보호시설 이용자와 마찬가지로 작업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중증지적장애인이나 나이가 많아 퇴직한 노인지적장애인들이다.


피소드 II (아기예수 생극 


16명의 장애인들과 5명의 HPF실습생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 연출을 맡은 린덴마이어 씨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예수탄생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고 역할분담에 들어갔다. 예수탄생극은 어려서부터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인지라 그들 중 일부는 중요한 역할을 자진해서 선택하였다. 대머리에 키가 크고 잘생긴 토마스씨가 요셉을 하겠다고 자청하였는데 항상 웃는 얼굴인 Thomas 씨의 제의는 아무도 반대없이 받아들여졌다.


다음은 마리아 차례다. 사비네(Sabine) 씨와 힐데가르트(Hildegard) 씨 두 명이 마리아역을 자청하였는데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는다. 날개달린 옷을 입는 천사를 권해 봐도 도무지 둘 다 바꿀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즉석에서 대본이 수정되었다. 요셉이 두 명의 마리아를 데리고 등장하는 것이다. 너무나 우습고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들의 참여가 중요하고 또한 즐겁게 함께 하는 것이 기존의 틀에 꿰맞추어 행사를 치루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실습생들을 설득하는 린덴마이어 씨의 생각이 놀랍다.



에피소드 II (아기예수 탄생극 공연사례)


연습하는 과정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으나 점차 나름대로 질서가 잡혀갔고 12월 22일 시설 내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축제에 앞서 16일(일요일)에 지역교회 예배시간에 공연을 가졌다. 비록 두 명의 마리아가 등장했고 그들의 연기는 유치원생에도 미치지 못하였지만 연극을 본 교인들은 격려의 박수를 쳤다. 연극이 끝나자 연출자인 린덴마이어 씨를 찾아와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노고를 치하하였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높이고 지역주민과 함께 나누는 사람중심의 장애인복지가 별개의 것이 아님을 나는 새삼 깨달았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였다.


* 이 글은 <장애인을 위한 행동하는 사람들의 복지이야기> 2008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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