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삶
[김경민/ 숙명여대 교육학과 졸업]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삶
안내견 미담이와 함께 걷는 길
“미담이에게도 학사모를 씌워줘야 하는데….”
올여름,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교수님들은 종종 미담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7학기 내내 제가 한 과목 수강을 마치면 모두 “미담이와 경민이가 열심히 했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런 미담이가 저는 늘 고맙고 자랑스러웠지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길을 안내견 미담이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미담이와 저는 24시간 함께합니다. 미담이가 걸으면 저도 걷고, 미담이가 서면 저도 서지요. 공부할 때나, 밥 먹을 때, 잠을 잘 때조차도 조용히 제 곁을 지켜줍니다. 잠깐 미담이를 두고 혼자 나갔다 돌아오면 신발 소리만 듣고도 나와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합니다. 미담이는 항상 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미담이를 만난 것은 2007년 2월입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 분양 신청을 했어요. 안내견학교에서 4주간의 입소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었을 때, 처음엔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개를 정말 무서워했거든요. 그런데 미담이가 만나자마자 뛰어오르고 좋아하며 뽀뽀를 하는 거예요. 저는 처음엔 잘 다가가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죠.
그런데 교육 1주 차 때였어요. 몸살이 심하게 걸린 겁니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다가 중심을 못 잡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요. 한참 후에 정신이 들고 보니 미담이가 계속 제 곁을 지키고 있었어요. 이제 괜찮다며 미담이를 만져주니까 그때서야 안심이 됐는지 물을 먹으러 가는 거예요. 그때 참 감동을 받았어요. 앞으로 함께할 친구라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움도 없어졌습니다.
처음엔 서로 맞춰가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다른 길로 간다든지, 길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려 한다든지, 그러면 미담이를 바로잡아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뭐라고 하면 고개를 제 가슴에 파묻으면서 안겨요. 그러면 제 마음도 약해지지요. 꼭 애기 같아요.
제가 실수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공사를 하고 있거나, 차가 있으면 위험하니까 미담이가 가지를 않아요. 그러면 저는 미담이가 딴짓하느라 멈춘 줄 알고 야단을 쳐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위험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미안하다고 하면 꼬리를 흔들며 괜찮다는 거예요. 이제는 안 가려고 하면 딱 알지요. 요즘에는 좀 위험하다 싶으면 코로 한번 제 다리를 찍어요. 앞에 뭐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얼마나 세심한지 계단을 내려갈 때도 제 발을 보고 있다가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는 내려갑니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다 통하지요.
사실 대학 입학을 앞두고는 좀 힘들었습니다. 계속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맹학교를 다녔는데, 과연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자려고 누워도 한 시간마다 깨고 가위에 눌렸어요. 그때도 미담이가 큰 위안이 되었지요. 미담이는 성격이 참 밝습니다. 사람을 안 가리고 좋아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웃으면 자기는 뭔지도 모르면서 꼬리를 흔들고 뽀뽀를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푼수 아줌마’입니다. 그리고 나가는 것을 즐거워해요. 나가서 함께 걷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미담이도 행복해하는구나 하고 느껴집니다.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예 시력을 잃었어요. 날짜도 기억합니다. 2000년 8월 1일.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이던 그날이요. 그 이후로 자기 전에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벽지를 볼 수 있었으면, 천장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무엇보다 하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유치원 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유치원 때만큼만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구나, 내가 다른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이때를 그리워하겠지. 잃고 나서야 그때 가졌던 것이 참 좋은 것이었다고 느낀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구나. 그러고 보니 저는 가진 게 참 많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미담이가 있으니까요.
▲ 지난 8월, 숙명여대 여름 학기 졸업식. 문과대학 수석으로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서게 된 경민씨 옆에는 안내견 미담이도 있었다. 의류학과 친구들은 미담이에게도 학위복을 만들어주었고 미담이는 경민씨와 나란히 졸업식을 치렀다.
저는 제가 세상에 빚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까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데, 그때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장애 학생 도우미 언니들이 대신 수업을 타이핑해서 점자로 만들어주거나, 교재를 음성 파일로 만들어줘요. 그리고 저희가 읽는 점자 책은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답니다. 그걸 아니까 한 권 한 권이 너무너무 귀해서 서너 번은 보게 됩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감사한 마음 때문에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생활 동안 숙명 점역봉사단에 들어가 시각 장애 학생용 문제집을 만들고, 맹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빚진 걸 갚고 싶었거든요. 요새는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미담이와 함께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 이 글은 <월간 마음수련> 11월호에 실린 글로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진제공_ 삼성화재 안내견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