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해리
[유호정/ 호주 지역사회봉사자]
지난 여름 해리 후리(Harry Hooley)를 처음 만났을 때 특이한 점은 왼쪽 손이 없는 장애인이라는 것이었다. 호주 보훈처로부터 각별한 보호를 받는 참전 용사이기에 2차 세계대전 참전 중 부상을 당하겠구나 생각했다. 환한 미소와 선량한 표정에서 나는 그가 전형적인 호주 노신사라고 생각했다. 멜버른에서 농사일을 하다 은퇴 후 자식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부인 로란 여사와 이 곳 시드니로 왔다고 한다. 시드니 온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느 시골 할아버지처럼 발음도 길고 말씀하실 때 입 안에서 중얼거리는 올해 91세 되신 할아버지이다.
내가 이 집을 방문해 하는 일은 노부부를 위해 집안 곳곳을 청소기로 먼지를 흡입하는 일이다. 대략 30분 정도면 일이 끝난다. 보통 진공청소기 작업 후, 목욕탕, 부엌, 화장실을 청소 하는데 부부는 “온 종일 힘들었을 테니 남는 시간 어디 가서 커피 한 잔하거나 일찍 돌아가 쉬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기분 좋게 집을 나선다. 힘든 일을 하는 나를 배려하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루는 해리에게 2차 세계대전 어떤 전투에서 팔을 잃었냐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해리는 전투에서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팔 부분 없이 태어났다고 한다. 의외였다. 그 분을 참전 용사로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 그 팔로 군대를 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해리의 형이 먼저 군대를 갔고 해리는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1942년 형이 일본군 포로가 되어 창이( Changi ) 포로수용소(싱가폴에 있었던 일본의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슬픈에 빠진 젊은 해리는 형을 대신해 일본과 싸우겠다고 군대에 지원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군대 징병관에게 그는 형을 대신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비록 한 팔이지만 그 동안 남들과 똑같이 축구도 하고, 크리켓, 삽질도 해왔으며 불편한 왼 팔을 지렛대 삼아 총을 쏠 수 있다고 설득해 결국 입대했다고 한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데 자기만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는 3년 6개월 동안 최 전선에 배치돼 다른 사병들과 똑같이 싸웠다고 한다.
부인 로란 여사에게 해리와는 해리의 불편한 팔로 인해 결혼을 주저한 적이 없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YWCA 멜버른에서 일하고 있을 때 휴가나온 해리 상병과 댄스 파티에서 만났다고 한다. 로란 여사는 두 번째 만남에서 해리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장애를 가졌지만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해리를 남편으로 맞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말했다
해리에게 팔이 없어 좌절해 본 적은 없는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르고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라웠다. 그는 자신의 뭉뚝한 팔 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 작은 살 점이 하나 보이지? 이 것이 내 손이야” 해리가 힘을 주자 아주 조그만 살점이 팔 한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리의 입장이었다면 장애로 인해 부모를 원망하고, 낙담과 슬픔 속에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군대를 자원하기는커녕 불편한 팔로 인해 전쟁터 못 나가는 것을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불행을 받아들여 긍정의 삶으로 바꾼 것이 해리를 위대하게 만든 힘이 아닐까. 위대한 해리는 이러한 부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안한 등받이 의자에서 이내 잠이 들었다.
유호정 님은 2004년 호주로 이주하여, Aged Care Certificate III(노인간호 자격증)를 취득해서 Nursing Home(노인 전문 병실)에서 자원봉사를 하였으며, 현재는 Community Worker(지역사회 봉사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 정부가 관리 보호하는 노인 가정과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그들이 혼자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