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러스트레이터
[최정인 / 일러스트레이터]
▲ 일러스트레이터 최정인 후원자님
독일의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에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가 있었다. 그 청소부는 어떤 사람이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자기의 직업과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들을 사랑했다. 어느 날 청소부는 표지판에 적힌 작곡가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한 엄마와 아이를 보고 표지판에 적힌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여전히 표지판 닦는 일을 사랑하면서 신문을 꼼꼼히 읽고, 공연을 관람하고, 도서관을 찾아 공부한 끝에 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해도 좋을 만큼 실력을 갖추게 된다.
이 청소부 이야기가 사람들 입을 타고 번져나가, 어느 날 그는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그 요청을 거절하기로 하고 편지를 쓴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는 표지판 청소부로 남아 있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정인님의 메일을 전달받고 읽는 순간, 모니카페트의 그림책 ‘행복한 청소부’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을 소개할 때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해요.’ 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녀야 말고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떠올라서다.
그녀가 행복해 보인 까닭은 또 있다. 그녀의 이름 앞에 ‘나눔의 기쁨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란 수식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프린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최정인 작가는 대학 때 판화를 전공하고 이후 어린이 책 그림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혹시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후회가 된 적은 없는가 라는 질문에 그녀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가지게 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다. 어린이 책을 만들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는 기쁨도 누리곤 하는데 푸르매 재단과도 인연도 그 중 하나다.’ 라고 말한다.
어느 날 작가는 출판사 김영사에서 인세후원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고정욱 작가와 함께 ‘희망을 주는 암 탐지견 삐삐’로 발생된 수익금을 푸르메 재단에 기부하기로 쉽지 않은 결심을 했다. 이 일이 작가가 푸르메 재단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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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암 탐지견 삐삐’출판수익 기부식. 오른쪽부터 최정인 작가와 배수원 주니어김영사 주간, 고정욱 작가
그녀는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이 좋은 일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액기부 활동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굿네이버스’, ‘기아대책본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사랑밭’, ‘세이브 더 칠드런’ 등에 지속적으로 소액기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그를 반증해 준다. 그녀가 소액기부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나름의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동시대의 사람들과 좋은 것들을 함께 하면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가 꿈꾸는 소망이기도 하다.
그녀는 혹시 작가를 희망하거나 그림 그리는 일을 전업으로 삼고 싶은 후배들이 있다면, 자신의 이미지를 포기하지 말고 창작의 행복과 고통과 희열을 느끼면서 작업하라는 말을 전해 주고 싶다고 한다. 창작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고 생각을 놓지 않는 것, 그녀가 지침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할 수 있는 노하우라고 말한다.
▲ 작업 중이신 최정인 작가
최정인 작가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불편한 삶을 보면서 ‘우린 행복 한 거야.’라고 읊조리는 것을 싫어한다. 불편과 불행이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도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것, 장애인의 불편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길의 끝에 바다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작은 정성이 늘 부끄럽지만 좀 더 많은 힘을 실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푸르메 재단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출판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 최정인 작가의 작업실 풍경
머릿속에 최정인 작가가 어린이 책에 실릴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걸 기쁨으로 아는 사람, 또 자신이 누리는 기쁨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녀가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글/사진= 자유기고가 남궁명옥님의 아름다운 재능기부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