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업재활의 선구자

랜초 로스 아미고스 국립재활병원

미국 직업재활의 선구자



"나를 다시 살린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환자중심의 작업치료와 첨단 재활보조 공학이었습니다."



전신마비의 재앙을 딛고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우뚝 선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차량 전복사고를 당한 이 교수는 불과 6개월만에 다시 강단에서 섰다. 우리 실정으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을 현실로 만든 곳. 바로 미국 LA에 있는 랜초 로스 아미고스 국립재활병원(Rancho Los Amigos National Rehabilitation Center)이다.


지난 9월 24일 푸르메재단 연수단이 찾은 랜초 병원은 으리으리한 외관이나 번쩍이는 편의시설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었다. 넓은 부지에 넉넉한 공간, 깔끔하게 정리되고 정성들여 가꾼 곳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최신', '첨단' 운운하는 요즘 병원들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전신마비로 골방차지를 걱정하던 한 학자를 몇 달만에 학교로 되돌려보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재활이란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가는 것"


모두 395병상을 운용하는 재활전문 랜초 병원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과대학의 자매병원 관계를 맺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이다. LA시민은 물론 의료보험이 없는 여행자나 이민자 등 누구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열린 병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추재활 분야에 있어서 '교과서'로 불릴만큼 선구적이고도 세계적인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연방정부로부터는 척수손상 재활분야에 있어서 모델 병원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랜초 병원의 재활철학은 분명하다. 환자가 다치기 전의 직업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처음 맞이하면 가장 먼저 정신과 전문의가 집중적인 상담에 들어간다. 청천벽력 같은 사고와 장애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현실과 미래를 함께 설계해나가자는 취지다. 그리고 각 분야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재활팀이 환자의 육체적 재활은 물론 직업복귀를 통한 사회적 자립에 이르는 최적의 지름길을 탐구한다. 환자의 재활을 측면지원하게 되는 가족도 상담 및 교육의 대상이다.


첨단 보조공학으로 '생활의 기적' 일구다


온전한 직업적 재활을 향한 랜초 병원의 역사는 유구하다. 1888년 오갈 데 없는 이민자와 빈민들의 의료구제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병원은 1920년대부터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1951년 소아미비 전문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크게 확장되었고, 70년대 자체 개발한 뇌손상 환자 인지기능 척도는 여전히 전세계적 공인을 받고 있다.




랜초 병원의 첨단 보조공학 서비스의 중심인 CART. 환자 개인의 상태에 맞춰 최선의 IT기기를 제공함으로써 성공적 직업복귀를 지원

직업재활의 선구적 위상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확고부동하게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선진적 재활보조공학이다. 입이나 안구, 손가락 등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첨단장비를 통해 의사소통과 일상생활, 직업활동이 가능하도록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홍보담당자인 셰릴 그윈씨는 "랜초병원의 환자 1인당 1일 진료비용이 2,500달러로 미국 평균 1,700달러를 크게 상회할 정도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다"면서 "사무직이나 연구직에 종사했던 환자의 경우 대부분 업무복귀가 가능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보조공학 연구와 적용, 훈련은 작업치료센터인 CART (Center for Applied Rehabilitation Technology)에서 진행된다. 손가락 일부를 제외하면 목 아래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이상묵 교수도 이곳을 거쳐 단기간에 학자로서의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최고의 병원에 닥친 '예산삭감' 한파


랜초 병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척수환자의 경우 6주간의 재활프로그램을 적용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재활팀의 면밀한 평가에 따라 그 기간은 조정될 수 있다. 이렇게 매년 2,300여명의 입원환자와 53,000여명의 외래환자가 랜초 병원의 앞선 재활치료를 통해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다. 특히 풍성한 문화예술 접근경로를 마련함으로써 수준 높은 작품들이 창작되기도 한다.



작업치료와 직업재활, 첨단공학과 같은 랜초 병원의 성공요인 이면에는 강력한 환자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환자 개인의 신체적, 사회적 문제를 다각도로 살피고 나서 병원문을 나선 환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효과는 높은 사회복귀율로 증명된다. 퇴원과 함께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우리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랜초 병원은 2009~2010년 시즌 미국의 한 유력언론이 선정한 최고의 재활병원으로 서부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악명 높은 미국의 의료보장제도 역시 오바마 정부 들어 개선될 것으로 보여 공공병원으로서 위상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걸림돌이 없지 않다. 전체 병원 운영비의 25%를 차지하는 지방정부 지원금의 대폭 축소가 예고돼있다. 이렇다보니 "비용감축과 효율적 치료"가 병원운영의 화두가 되어 있다.


"장애로 인한 신체적, 환경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중심의 재활서비스"라는 랜초의 이상이 현실의 퇴보를 딛고 어떻게 진보해나갈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Rancho Los Amigos National Rehabilitation Center

7601 East Imperial Highway, Downey, CA 90242, USA

☎ (562)-401-7111 www.rancho.org


*글= 정태영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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