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변명은 없다.
[박대운/ 방송인]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카일 메이나드라는 장애인 레슬러를 보았다. 선천적으로 사지가 짧은 사지절단증 장애인이었는데, 레슬링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장애인 스포츠에 도전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그 선수는 자신과 비슷한 장애인과 경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건강한 비장애인들과 경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상대를 손으로 잡을 수도, 매트에 메칠 수도 없는 단점투성이의 레슬러였지만 멀쩡한(?)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인간 정신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 장애인 레슬러 카일 메이나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반팔 입고 다니라고 간청(?)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팔 옷만 입고 다녔다. 그러던 후배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대학교 다닐 때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여자 후배가 있었다. 일 년 내내 긴 소매 옷만 입고 다니는 친구였는데,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도 이 친구의 긴 겉옷을 벗길 수가 없었다.
“오빠는 두 다리 없이, 의족도 하지 않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요?”
“내가 다리 없는 게, 죄지은 것도 아닌데 부끄럽기 뭐가 부끄럽냐?”
대답했는데, 후배가 수긍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마침 수영을 배우고 있어서 그 친구에게 수영장에 같이 갈 것을 권유했다. 자기는 수영할 줄 모른다며 수영장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는데, 수영을 못하면 내가 수영하는 모습 구경하라며 마다하는 후배를 학교 수영장으로 데리고 갔다. 아주 야한 삼각 수영 팬티를 입고, 멋들어지게 수영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수영을 끝내고 그 친구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네 눈에 내가 부끄러워 보이던?”
후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친구가 짧은 팔을 입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렸다.
후배는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긴 소매로 자신의 손을 가려서 손가락 없는 것을 감추려고 했는데, 내가 다리 없는 것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내보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그래서 짧은 손가락을 감추려고 하기보다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을 돋보이게 하기로 했다며 예쁘게 네일아트로 멋을 낸 네 개의 손가락을 내게 펼쳐 보였다.
▲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글쓴이 박대운 님
생각하기에 따라,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큰 장애가 될 수도 있고, 나처럼 양다리가 없는 것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개성이 되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에 빠지게 된다. 그 형태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평생 살면서 어려움에 부닥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인생에 닥친 악재의 무게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심리적 무게가 얼마냐 하는 것이다.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양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고 하셨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왜 하필 당신의 아들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느냐고 원망도 많이 하셨다고 했다.
나 자신도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도 절망스럽고 힘겨웠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 또래 아이들의 이유 없는 놀림,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절망한 적도 많았다.
▲ (왼쪽) 사고 전 어렸을 적의 박대운 님, (오른쪽) 어머니, 형과 함께한 사진
“내가 다리 없다고 비웃는 거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초등학교 다닐 때, 전교생을 통틀어 장애인은 나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만 되면, 바퀴 달린 신기한 의자를 타고 다니는 나를 구경하려고, 교실 앞 복도는 초만원이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쉬는 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 학구파는 아니었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수업 시간이 좋았다. 한번은 길을 가는데, 내 또래의 여학생들이 나를 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달려가서(?) 소리쳤다.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다리 없다고 웃은 게 아니라, 네가 아주 잘생겨서 봤을 뿐이야”
그때부터 휠체어 타고 가는 나를 누군가 쳐다보면 ‘내가 다리 없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잘생겨서 보나 보다’ 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두렵지 않았고, 거리를 다니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다리 없는 나를 보면서 신기하게 여기고 연민을 느끼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튼튼한 두 팔을 가졌음에, 누구보다도 건강한 정신을 가졌음에, 감사하는 나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휠체어를 타고 유럽 5개국 2,002km와 한·일국토종단 4,000km 대장정에 성공한 박대운 님
“No Excuse!”레슬러 카일 메이나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변명은 없다.
사람들은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게 태어났을까, 왜 이렇게 못생겼지,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 왜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지.’ 불평하면서 자신을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변명한다. 많이 배우지 못해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레슬러 카일은 비장애인 선수들과 1년 6개월 동안 35번을 싸워서 35번을 패했다. 그리고 36번째 경기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내가 먼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어느 곳에든 함께하는 것들이 있다.’ 라는 도종환 님의 시처럼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 99번의 실패로 절망하기 보다는 100번째 도전을 준비하는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더 값지게 하지 않을까!
박대운님은 방송인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했지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반 학교에 입학해 비장애인 학생들과 똑같이 구르고 웃으며 성장했습니다.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한 뒤 2005년 KBS 『폭소클럽』에서 인기를 얻으며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