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22분의 기적

[백경학 / 상임이사]


7시간 22분의 기적을 이뤄낸 지선 씨


나는 지난해 11월 1일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눈물을 흘렸다.


뉴욕시민마라톤이 열린 날이었다. 나는 결승점인 맨하탄 센트럴 파크 입구에서 7시간이 넘게 한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상 장애에 굴하지 않고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이지선 씨였다. 이 대회의 참가자는 4만명이 넘었다. 오전 9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뉴욕주 외곽에 있는 스태튼 섬을 빠져나간 선수들은 3시간 30분이 지나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선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뉴욕의 겨울은 해가 짧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센트럴 파크는 한밤중이 됐다. 이따금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행인만 지날 뿐 큰 나무들과 맞닿은 하늘은 칠흑처럼 사위어갔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완주하겠다던 지선 씨는 달리다 중간에 포기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뉴욕의 어느 어두운 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지 몰랐다. 선수들이 출발한 뒤 7시간이 지나자 진행요원들은 결승점 뒤쪽에 놓여진 바리케이트를 하나 둘 철거했다. 결승점 양쪽 계단식으로 설치된 벤치에 앉아 골인하는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내던 관객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제 경기가 막 끝나려는 순간이었다. 이때 저 멀리 어둠 사이로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작은 점은 점점 커지더니 결승점을 향해 천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지선 씨였다.


태극기를 들고 달려오는 지선 씨


  ‘도저히 안 되면 지하철을 타고 오겠다’며 교통카드를 가지고 출발했던 그녀였다. 중간에 포기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선 씨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있는지 전혀 지치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진행요원을 피해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에게 태극기를 건네자 지선 씨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녀는 태극기를 들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자리를 떠나려던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달려온 작은 동양여성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지선 씨는 42,195미터의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달려온 것이었다.


 그날 난생 처음으로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는 이지선 씨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고 이후 숨쉬기를 제외한 어떤 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평소 운동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땀을 배출할 수 없는 화상환자에게 무리한 운동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격심한 육체적 고통에도 마라톤에 최선을 다하는 지선씨  마라톤 출발선에 선 그녀는 긴장 탓인지 운동화 끈을 여러 번 고쳐맺다. 그리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피부로는 전혀 호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격심한 고통이 찾아오자 달리기보다 빨리 걷는 방법을 택했다. 심장의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자 이번에는 발목에서 통징이 느껴졌고, 그 통증은 무릎위까지 올라왔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자리에 주저 앉아 울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선수가 힘을 내라며 그녀에게 바나나를 건넸고, 신기하게 바나나를 먹으니 힘이 났다는 것이다. 천천히 일어난 지선 씨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을 내세요!)"하는 응원을 들으며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니 어느새 결승점인 센트럴파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42.195킬로미터 완주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했다. 그건 기적이었다. 결승점을 달려온 지선 씨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고통 앞에 놓이더라도 원하는 삶을 반드시 완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마라톤이 끝난 뒤 그녀는 다리를 절며 자신이 사는 컬럼비아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일주일 동안 방안에서 누워 있었고 그후 한 달 동안 다리를 절며 강의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왜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선 씨는 미국의 장애인 정책을 연구해 우리사회에 접목시키는 것이 자신의 소망인데 마라톤을 포기하면 그 소망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지선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봄, 그녀가 쓴 책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서다. 이 책에는 의사들마저 포기한 그녀의 삶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고 후 생사를 넘나드는 7개월간의 입원과 11차례의 수술, 죽기보다 싫은 치료를 받고 있는 그녀였지만 이 책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책을 통해 접한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즐겁게 인생을 예찬하고 있었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러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는 사연을 남겼더니 연락이 왔다. 나와 지선 씨는 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녀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가 됐다. 나는 지선 씨에게 그녀가 당한 고통과 불행을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같은 고통을 당한, 아니 앞으로 당할 수도 있는 수많은 화상환자와 장애환자를 대신해 아름다운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지선 씨


 나는 지선 씨를 만나면서 매번 놀란다. 그녀가 가진 낙천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말이다.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 지 놀랍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농담을 한다. 지선 씨를 만나고 나면 놀랍게도 우리가 위로를 받는다. 그녀가 방학을 이용해 귀국하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한다. 오래전 수술 받은 피부가 1~2년 만에 변형돼 제 기 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입주위에 이식한 피부가 처지는 바람에 입술이 벌어져 침을 흘리게 되었다. 턱 아래 살이 당겨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수술을 받아야했다. 콧속과 목안에도 살이 점점 차게 되면서 호흡과 음식물을 삼키는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20대 중반의 어린나이에 차디찬 수술대 위에서 수 없이 수술을 받으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나에게 단 한번도 예전에 어땠는지 잃어버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새롭게 얻게 될 것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지선 씨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지선 씨는 희망이 없는 시대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장애’의 시련을 이겨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와 남들의 편견을 이겨내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삶이 더 아름답고 빛나는지 모른다. 7시간 22분은 기적의 시간이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결승점을 향해 달린 그녀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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