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나의 힘 - 이제 푸르메와 달리고파.
[배영일/동국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잉크색 트렌치 코트에 화려한 스카프를 걸친 사내가 푸르메 재단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약속 시간에 늦어 미안하다며 유쾌한 인사를 덧붙인다. 한국 나이로 72세.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 배영일 교수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었어요. 20km가 족히 넘는 길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걷고 뛰고 했지요'인터넷 검색창에 배영일 교수의 이름을 치면 다양한 직함이 뜬다. 삼청 미래포럼 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여의도 순복음 교회 장로. 하지만 정작 그를 달뜨게하는 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 이야기가 나오자 당장이라도 바지를 걷어 올려 허벅지를 내보일 기세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길러진 체력. 2002년과 2003년 국내 하프마라톤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마라토너의 길을 시작했다. 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그는 03,04,07년 미국 하와이국제마라톤에도 참여해 풀코스인 42.195km를 완주했다.
'그 당시 등에 God Loves You란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었어요. 나이와 언어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동양에서 온 노인이 기특했던 것일까. 2004년 하와이 대회에서 you are heroes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배영일 교수는 소위 '엄지족'이다. 분 단위로 도착하는 문자메시지에 몇 번씩이나 양해를 구하며 답장을 보낸다. 위트 있는 농담 또한 30대의 인터뷰어를 즐겁게 했다. 젊은 에너지는 모두 건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건강과 젊음의 비결
'제 깨끗한 피부 보이시죠?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아침도 먹지 않습니다. 조식은 우유 한잔 정도로 때우고 하루 두끼만 먹지요'
그는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어 3시면 깬다. 다섯 시까지 기도, 다섯 시부터는 매일 10km로씩 달리며 건강을 유지해왔다. 가끔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겠다 싶어 오늘 아침을 물었더니 어김없이 10km로를 달리고 왔단다.
처음부터 자신과의 약속에 강할 수는 없었다. 돈과 명예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목에 힘을 주던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병마 앞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았고 자신의 건강이 하늘이 준 축복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의 발신처는 과연 어디일까. 답은 쉽다.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에 그를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았는지 크고 작은 단체에서 도움을 달라는 연락이 옵니다'
배 교수의 집에는 장애인들이 만든 재생비누. 입으로 정성껏 그려 만든 그림 카드가 가득이다. 한 개 500원하는 카드가 1000장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넉넉한 미소를 보인다.
물론 그의 삶이 평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네 딸의 아버지로, 사회의 일꾼으로 한참 뛰고 있던 5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 기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배교수는 꼼짝 없이 물러나야했다. 평생 군인의 길을 걸어왔기에, 늘 top의 자리에 있었기에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젠 푸르메와 달리고 싶어요
'좌절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그 때 깨달았습니다. 어렵게 위기를 털어내자 새소리, 짐승 소리, 소나무의 모습조차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
얼마 전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배영일 교수는 기사에서 이지선씨와 함께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상의 밝음을 위해 마라톤을 해왔지만 뚜렷한 목표를 세워보긴 처음이다.
'전신 3도 화상을 극복한 이지선씨의 뉴욕 마라톤 완주는 푸르메재단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깊은 전율을 느꼈어요.'
배영일 교수의 마라톤 인생에 새로운 동기를 얹어줄 그 날. 그 즐거운 날이 코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3월 21일 서울국제동아마라톤 대회에서 이지선씨, 배형진군, 강지원 변호사 등과 함께 달릴 생각에 요즘 그는 어느 때보다 컨디션 조절에 힘쓴다.
'달리기가 너무 좋습니다. 푸르메재단과 함께 달린다고 생각하니 더욱 힘이 나고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열심히 뛰어 보겠습니다.'
봄바람에 나부끼던 배영일 교수의 화려한 스카프. 3월 21일 마라톤 대회에서 다시 한 번 그 젊음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배영일 교수님은 3월 21일(일)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약 10km를 완주하셨습니다. 심한 바람과 황사 먼지에도 불구하고 ‘교통 통제가 해제되지 않았다면 더 달리실 수 있었다’며 아쉬워 하셨습니다. 내년 대회에서는 더 많은 후원자를 모집하여 푸르메재단과 장애인들을 위해 뛰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글=재능기부자 김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