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만들어보는 평화
[임정진/동화작가]
지난해 한 해 동안 한 신문사에서 책을 낭독하는 행사를 가졌다. 활자에 얽매여 시각적으로 이해하던 내용을 청각적으로 음미하는 경험이 또 다른 감동을 줘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유명한 배우나, 성우, 작가들이 낭독을 해서 좋게 느껴졌을 것이다.
시나 소설 뿐 아니라 동화책도 좀 읽어주면 좋을텐데 하는 것이다 . 그림책 중에는 인생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읽는데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 감동도 더 큰 잇점이 있다. 심지어 어떤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림책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얘기다. 그런 영향력있는 행사에서 동화책(그림책 포함)을 자주 읽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여러 곳에서 다양한 계층을 위해 위해 행사가 열리고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TV만 본고, 게임만 좋아한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자면 어린이가 읽는 책의 절반만 읽는 어른이라면 자기 동네 독서왕이 될 수 있다. 어른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걱정이다. 책을 안 읽는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좋은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해 책에 대한 친밀성을 키우지 못한 게 아닐까.
좋은 동화에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슬프거나 웃기거나 모험적이거나 결국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동화를 읽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미움,고집, 다툼, 경쟁, 긴장, 슬픔에 허덕이던 우리 영혼은 동화를 통해 조금 위안받고 우리의 누추한 인생은 살짝 격려받을 수 있다. 이런 좋은 약효를 어린이만 누리라는 법조항은 없으니 어른들도 동화를 가끔 읽으면 영혼이 건강해진다고 외치고 싶다.
귀 막고 눈 감고 싶은 끔찍한 사건들이 너무 자주 터진다. 아마 예전에는 정보망이 충분치 않아서 널리 알려지지 않고 동네에서 쉬쉬하다가 잊혀지는 일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더 그렇다고 믿고 싶어진다. 요즘은 언론사에서 포착하지 못한 뉴스를 개인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널리 알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엽기적이고 끔찍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특히 가족간에 끔찍하게 생명을 해친 경우, 더욱 사람의 본성에 대해 좌절하게 된다.
종교적, 정치적, 민족적, 경제적인 이유로 벌어지는 전쟁들은 또 어떤가. 왜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잔인해지는 걸까.
그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끔찍한 일을 한 사람들은 어릴 때 좋은 동화를 못 듣고 못 읽고 자랐을 거라고 추측한다. 무슨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조사한 일도 없을테지만 어릴 때 좋은 동화를 읽고 아름다운 생각을 해 본 아이라면 커서 그런 끔찍한 일은 하지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동화를 읽은 아이는 그날 내내 행복할 것이고 그런 행복이 이어지면 그 아이는 행복한 아이가 된다. 어린 시절이 행복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행복한 어른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행복한 어른들은 누구를 미워하는 일보다는 주위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는 일로 바빠, 전쟁 같은 건 할 겨를이 없어진다. 그러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 아닌가. 세상의 평화는 동화에서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나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동화를 써왔다. 다른 일은 잘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지만 이 일은 나 나름대로 세계평화를 위한 일이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쟁하느라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읽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면 그 어린이들이 커서 또 총을 들 것이다. 자꾸 싸움을 거는 미운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 어린이들에게 마구마구 아름다운 그림책과 재미난 동화책을 비오듯 뿌리면 어떨까.
다리미야
세상을 주름잡아라
글/ 임정진
< 작가소개 >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 어린이 잡지 주간, MBC 뽀뽀뽀 구성작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등 계속 글 쓰는 일을 해 왔습니다. 1988년 계몽아동문학상 동극 부문 상을 받았고,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청소년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서울 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동화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을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해금과 민요, 민속을 배우러 바쁘게 뛰어다니고, 주말농장에 상추가 잘 크는지 보러 가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책으로는 ≪나보다 작은 형≫, ≪강아지 배씨의 일기≫, ≪상어를 사랑한 인어 공주≫, ≪내 친구 까까머리≫, ≪하양이와 까망이, 부릉신에게 묻다≫, ≪지붕 낮은 집≫, ≪발끝으로 서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