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다, 첫 마라톤… 달린다, 장애인 위해


2006년 봄. 미국 유학 첫해가 끝나가던 어느 휴일이었다. 늦잠을 자고 짐을 챙겨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환호와 응원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집 뒷길로 보스턴 마라톤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 마지막 지점을 앞둔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소리와 40km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의 노력과 땀과 열정이 느껴져 나는 레이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공부에,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힘들어도 꼭 나의 결승지점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어스름 저녁 때가 되어갈 때는 휠체어를 뒤로 향하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오른쪽 다리로만 밀면서 완주를 향해 가는 모습에 감동되어 또 울었다. 그렇게 3년간 보스턴마라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왔었는데, 이번에 내가 홍보대사로 있는 ‘푸르메재단’에서 뉴욕 시민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소식에 마라톤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맨해튼 제일 남쪽인 월스트리트 근처에서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면 나타나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할렘을 지나 맨해튼 중심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서 42.195km의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올해 40회를 맞는 뉴욕 시민마라톤은 매년 3만5000명이 참가하고 우승자에게는 13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마라톤이다. 2006년부터는 각종 자선단체들이 참여해 지난해까지 5000만 달러의 기부가 이어졌다. 올해는 총참가자 중 6000명이 2100만 달러를 모금한다는 목표로 달린다. 영화 ‘슈퍼맨’으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 매슈 리브가 120만 명의 미국 척추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고, 영화 ‘프라이멀 피어’로 유명한 영화배우 에드워드 노턴은 아프리카 마사이 야생 보호 재단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민간 재활병원 설립을 목표로 하는 푸르메재단과 6명의 장애인 마라토너와와 함께 대한민국의 200만 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 6명의 마라토너는 청각 또는 시각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휠체어마라톤에 참가하시는 분도 있다. 9년 전 나와 중환자실에서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었던 김황태 씨도 있다. 언제나 누워만 있는 상황인지라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 목소리가 작은 나 대신 큰 소리로 간호사를 불러줘 내게는 전우와 같은 분이다.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을 모두 잃었지만 마라톤으로 새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몇 년 전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이제 6일 후면 오랜만에 그분을 만나는 감격과 함께 내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이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4년 전 한발로 휠체어를 밀고 가던 어느 장애인을 떠올리면서 걸어서라도 끝까지 완주를 해보려고 한다. 2009년 11월 1일, 내 발로 밟게 될 42.195km는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을 위한 희망의 응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라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www.purme.org/NYrace/)


<미국 뉴욕에서, 이지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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