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희망찾기

"피카소 잘 알죠? 이건 피카소 아저씨가 빛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에요. 우리도 해 볼 겁니다."


작가의 설명과 함께 빔프로젝트에서는 아름다운 조명의 이미지들이 비춰지고 원탁에 둘러앉은 12명의 장애청소년들은 연신 탄성을 자아냅니다. 멋있어요. 좋아요. 밖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들의 얼굴에도 뿌듯한 미소가 번집니다.


<민웅이와 어머니 최미화님>

"지적장애 3급인 민웅이는 일주일에 두 번 일반 미술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습도움반 선생님께서 장애청소년을 위한 좋은 미술프로그램이 있다며 이번 행사를 추천해주셨어요. 덕분에 푸르매재단을 알게 되었지요. "푸르메재단과 아르코미술관이 주최하고 장애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내가 꿈꾸는 대학로' 프로젝트가 지난 5일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장애청소년과 미술 작가가 함께 조를 이뤄 대학로 공간을 답사하고 내가 꿈꾸는 대학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입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이민웅군(중1)과 어머니 최미화님을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났습니다.


최미화님은 경복궁역에 내려 재단사무실을 찾아가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민웅이가 대학로 프로젝트를 소화해낼 수 있는지 간단한 면접을 보아야했는데 가는 길 내내 전투경찰들이 많아 움찔해야했던 것이지요. (아마 재단을 처음 방문한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일입니다.) 인적 없이 조용한 청와대 주변길.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1층에 자리한 푸르매나눔치과입니다.


"제가 재단에 대해 워낙 모르고 있던 터라 놀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다른 과목도 아닌 치과 진료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푸르메재단측에서 준 안내책자를 보니 이 외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시더군요. 특히 엄홍길 대장과 장애아동이 함께한 올레길 걷기, 한라산 등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애교쟁이 민웅이. 처음 만난 형, 누나 틈에 섞여 자기소개하는 모습을 보니 이래저래 귀여운 막내 티가 납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못된다고 어머니는 거듭 강조했지만 최미화님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민웅이에게 적합한 학습 프로그램을 찾는 일입니다.


<장애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내가 꿈꾸는 대학로’>

후원자님들이 푸르메재단에 걸고 있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그 무게를 깨닫고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어머니는 앞으로 펼쳐질 푸르매재단의 사업에 적극적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10월 10일 열리는 청와대 걷기 행사에도 가족 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답니다."지금 민웅이에게 필요한 건 초등학교 때 진행한 언어치료나 놀이가 아니에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제 정보력 부족인지 적당한 것을 찾아주지 못하고 있었어요. 우리 민웅이도 비슷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제주도에도 가고 거제도에도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진작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재능기부자 김진미님과 인터뷰중인 최미화님>

"저희 집이 동대문이어서 대학로 오는 교통편도 편리하고 여러모로 좋습니다. 오늘 민웅이에게 길을 알려주었으니 다음 번에는 혼자 오도록 할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엔 아이들이 완성한 예술 작품을 보러 꼭 와야겠네요."짧은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아르코미술관 2층 통유리로 가을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0회에 걸친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장애 청소년들은 각자가 만들어 낸 조명으로 대학로와 세상 곳곳을 비추어낸다고 합니다. 그전에 먼저 아름다운 햇빛이 학생을 찾아와 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원 동기에 대해 묻자 어머니가 소박하게 답합니다.


"민웅이가 푸르메재단을 통해서 이런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저도 도와야지요. 처음부터 큰  돈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부담이 되면 안 되잖아요. 만원이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민웅이 이름으로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


80년대 후반부터 조성된 젊음과 문화의 거리 대학로. 통칭하기엔 대학로이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어도 이 거리에 풋풋한 기억 하나쯤 묻어두었을 것입니다. 12명의 아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로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까요?


마지막 날, 모두 한번 가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김진미님(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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