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울트라 마라토너 송경태의 남극 도전기
각장애 울트라 마라토너 송경태의 남극 도전기
“안녕하세요, 외교통상부입니다. 남극 활동 승인서가 통과 되었습니다.”
2008년 11월 10일 오전,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남극 마라톤에 참여하려고 남극 방문 서류를 접수한지 2달 만에 허가가 난 것이다. 오래 준비해온 일이지만, 기쁜 마음은 잠시였고 이내 온 몸에 긴장이 밀려왔다. 지구의 끝, 남극. 인간의 생존을 쉽사리 허락해줄 것 같지 않은 동토의 극지 아닌가.
나흘 후 벅찬 가슴을 안고 출국길에 올랐다. 남극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난 심신이 지쳐갔다. 3번에 걸쳐 비행기를 갈아타며 총 40시간 이상을 하늘에 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파김치가 되어 남극 여행의 전초기지격인 남미대륙의 끝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지루한 항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극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와 관계자가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은 후 러시아 국적의 남극 탐험선에 승선했다. 주최 측은 내가 장애인이라고 특별히 레스토랑과 바에서 가장 근접한 4층 특실을 배정해 주었다.
출발 예정시간인 저녁 8시. 난 설레는 마음으로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기다렸지만 무슨 일인지 조용했다. 선장의 말이 엔진실 외부 철판에 작은 구멍이 발견되어 불가피하게 내일 오전으로 출발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뒤에 보이는 탐험선이 러시아 국적의 Professor Molchanov and Professor Multanovskiy호
‘으악~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남극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어!’ 초조함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다음날, 선장이 배에 탑승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오늘 아침 최종 점검에서 탐험선이 운항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수리자가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안내도 했지만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대회 주최 측은 오늘 밤 8시까지 배가 출발하지 못한다면 이번 대회를 취소하다고 통보했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흘러 나왔다.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객실에서 쉬지 않고 갑판에 모두 나와 수중에서 수리하는 전문가들을 응원했다. 오후 5시쯤.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물속에서 수리에 몰두하던 전문가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리가 완벽하게 끝났다는 신호다. 초조함 속에 기다리던 선수들의 입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암울했던 먹구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눈부신 푸른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남극을 가는구나.' 남극 마라톤은 시작 전부터 이렇게 극적인 감동의 드라마였다.
>>전 세계 11개국에서 온 27명 남극 마라톤 선수 단체 사진. 태극기가 매서운 칼바람에 당당히 펄럭이고 있다.
중국 고비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만이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남극 마라톤에 올해 참가 선수는 전 세계 11개국에서 27명뿐이었다. 그 중 나를 포함해서 한국인은 단 3명이며, 장애인은 내가 유일했다.출항한지 2일이 지난 11월 27일 오후, 주최 측은 드디어 내일 아침이면 남극 본토에 상륙하며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코스를 달리게 된다는 브리핑을 했다. 3일 내내 멀미를 해 반 혼수상태였던 내 정신이 번쩍 들어왔다. 이제 시작이구나!
한국을 떠난 지 꼬박 10일 만에 남극 대륙의 끝 부분인 Cuverville에 도착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뱃멀미의 고통에서 벗어나, 흔들림 없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기쁨과 얼음나라의 대자연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다는 설렘으로 아드레날린을 증가시켜 내 심장을 강하게 펌프질하고 있었다. 빨리 달리고 싶었다.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내 몸이 헐크로 변할 것 같았다.
(※2회에 계속됩니다)
글/사진 : 송경태(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
미국 Racing The Planet에서 주관하는 국제적인 사막 마라톤 시리즈 대회로 중국 고비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남극 대회를 완주해야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된다. 처음에는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모여서 시작된 대회가 점차 발전하여 이제는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대회로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2명의 완주자가 있으며 한국인으로 2007년 5명(이무웅, 김성관, 이동욱, 유지성, 안병식), 2008년 2 명(송경태, 김효정)이 있다. 그중 송경태씨는 장애인 세계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