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름다운 장애인

내가 만난 아름다운 장애인을 소개하려니 40년 세월 동안 내 머리 속에 입력되었던 인물들이 한꺼번에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나는 늘 컴퓨터의 위력에 주눅이 들곤했는데, 지금은 내 머리가 컴퓨터보다 나은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이청자

서대문장애인복지관장


이제는 가슴에 묻은 내 아들 한울이부터 현재 함께 활동하는 수많은 장애계 인사들까지……. 떠올려보면 정말 모두 모두 아름다운 분들이다. 화려하게 핀 꽃들은 누구에게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듯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장애인들은 봄날의 만발한 꽃들처럼 장애계에서, 학계에서, 정계에서 눈부시게 맹활약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소개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분들이기에 오늘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숲속에 핀 작은 들꽃같은 아름다운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아동복지기관에 종사하다가 자리를 옮긴 곳이 장애아들을 위한 삼육재활원이었다. 이곳은 지체장애아시설로 몸은 불편하지만 목발을 짚고 홱홱 날아다니며 ‘우리는 문어다리 삼총사’ 라고 낄낄거리는 정신이 건강한 아이들이 생활하는 언제나 해맑은 웃음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이 곳 원생 중에 '쎌리'라는 백인 혼혈아가 있었는데 미운오리새끼처럼 여느 아이들과는 약간 다른 외모때문에 유독 눈에 띄었다. 양쪽 목발에 의지하여 늘 조용한 미소를 띄고 있던 그녀는 다른 원생들처럼 활발하지 않았고, 뛰어난 재주도 보이지 않아 시설 내에서도 소외된 여성이었다.


그 당시 삼육재활원은 아동시설이라 만 18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입소자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원생들을 보낼 곳을 찾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그동안 호적 없이 원생으로만 지내던 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었다.


다음해인가? 함께 일하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전갈을 받고 내가 부모 대신으로 너무나 조촐한 결혼식을 올려줬다.‘쎌리’ 의 호적을 눈 덮인 하얀 마을이라는 뜻으로 ‘雪里’ 로 정하고, 모 지방에 있는 장애인작업장으로 이주시켰다. 그곳은 외국인이 견학도 많이 올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시설이었지만 막사 쎌리를 떠나보내니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부터 왜 이 여성이 아름다운지를 말하려 한다. 휠체어 사용자와 양쪽목발 사용자가 한 몸을 이루고 첫아기를 낳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 부부는 단칸방에서 연탄불을 갈며 아기를 씻기고 키웠는데 종종 전화를 해 아기가 돌이 지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니 쫓아다닐 수가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신세타령이 아닌 성숙한 부모의 뿌듯함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둘이 되었을 때는 두 부부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나를 만나러 오기가 도저히 힘들다며 동네 아줌마를 고용하여 택시를 대절해 서울까지 오기도 했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원생 누구하고나 거의 같은 관계를 맺어 왔는데 그녀는 유독 성경에 등장하는 나음을 받는 열 명 중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한 사람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에 몇 가지 물건을 싣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지만 살림은 늘 쪼들렸다. 불경기에는 생활비가 부족했고, 자녀들이 진학할 때에는 목돈이 필요했고, 물건을 다량 구매할 때에는 자금이 딸렸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매달 어떻게 갚겠다고 혼자 약속하고 혼자 계산하곤 했다. 그녀가 원생일 때에는 좀 둔하다고 평가받았지만, 사회인으로서는 이처럼 건강한 사람이었다.


엄마를 닮아 이목구비가 또렷한 딸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우리 기관 이사님이 운영하는 회사의 비서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 아들은 군 제대하고 취업준비에 바쁘다. 장애가 없는 혹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사람과 다르지 않게 현숙한 아내와 엄마로 평범치 않음을 평범하게 요리하며 사는 지혜가 참으로 아름답다.오토바이로 시골을 전전하다보면 고장도 자주 나고 비가 오면 장사를 할 수 없어 오토바이도 실을 수 있는 큰 트럭을 소유하게 되자 그녀는 생활보호대상자에서 탈락하게 됐다. 내가 걱정을 했더니 ‘선생님, 그동안 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가 안 받으면 더 어려운 사람이 받게 되겠지요!’ 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시골에서 좋은 마늘을 구했다고, 맛있는 사과라고 지금 택배를 보낸다며 들뜬 목소리로 내 귀가 멍멍하도록 큰 소리를 말하던 그녀는 분명 베풀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서대문 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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