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3)

뇌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상실해 ‘이해불가’라는 의학적인 진단을 받았음에도 세상 속에서 씩씩하게 살고 있는 13살 한빛이(복합장애 1급)와, 자칭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인 한빛이 아빠의 때론 웃고, 때론 슬프고, 때론 치고받고 사이좋게(?)지내는 ‘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이야기가 4월부터 연재됩니다. 이들은 묻습니다. “왜 장애는 불행하다고 할까?”


(3) 한빛이 에피소드들- 최석윤(복합장애 1급 한빛이 아빠)



Episode1. 택시 안에서


아침에 택시를 탔다. 어지간하면 잘 안타는데 오늘은 일정이 너무 빠듯해 택시를 타고 말았다. 생일케이크도 사야하고, 병원에도 가야하고, 정해진 약속도 있는 분주한 오전이다.


백발이 성성한 기사분이 반긴다. 한빛이는 휴대폰으로 음악 감상 하느라 정신없다. 기사분이 돌아보더니 "음악 좋아하냐?"고 묻는데 한빛이는 아는 체도 안한다.


그런데 택시 안 가득히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오자마자 휴대폰은 바로 뒷전이다. 엉덩이는 들썩들썩, 웃음이 환하다. 마치 기운이 솟구쳐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경지에 이른 듯하다.


"몇 살이냐?", "좋으냐?" 물어 와도 대꾸가 없다. 장애가 있어 말을 못한다고 설명하니 한빛이의 손을 잡아 쓰다듬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음에 또 만나면 노래 틀어 줄게" 하며 인사를 대신한다.


한빛이 손에 요금을 쥐어주자 알아서 돈을 내민다. 이제 택시타고 내리면 돈 내야 하는 걸 아는 모양이다. 비좁은 택시 안에서 그렇게 신이 나는 것을 보면 트로트가 취향인가 보다. 트로트 가수로 키워야 할까?


Episode2. 정말 웃기는 상황



한빛이와 다니면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는 웃어 넘기곤 한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아이와 다니다보니 그런 시선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은 기가 막힌 일이 생겼다. 집에서 좀 떨어진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들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중에 한빛이가 나를 보고 "형"이라 부른 것이다. 운전기사 아저씨 깜짝 놀라면서 옆자리에 앉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 뒷자리도 한번 돌아보며 의아해 한다.


뭐라 말은 못하고 자꾸 쳐다봐서 한빛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이제 막 ‘형’이란 말을 배웠다"고 하니 허허 웃는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겠는데 신이 난 한빛이는 계속 장난질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형-동생의 관계를 만들어 보니 재미있다. 아무리 그랬기로서니 형제로 보다니…. 자꾸 웃음만 나온다.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보고 들었으면 박장대소 하실 일이다.


Episode3. 수영장에서 생긴 일



학교 행사는 다 빠지고, 집에서만 뒹굴었더니 마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결국 한겨울에 수영장을 찾아 간다. 물을 별로 안 좋아 하는 아비를 만난 덕에 물놀이를 하러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코는 맹맹, 목소리는 그릉그릉 심상찮은 녀석을 데리고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섰다. 남자 둘, 여자 하나 표를 끊었는데, 입장하는 곳에서 일이 생긴다.


“표가 잘못 됐는데요?”


“왜요?”


한빛이는 남자 표를 끊었는데 직원이 막아 세운다.


“어머니가 데리고 들어가셔야 하는데요.”


“아이가 너무 커서 제가 데리고 갈 수 없어요.”


무전기로 매표소와 연락을 하면서 잘못을 정정해 주려고 애를 쓴다.


친절하게 화도 안내면서 나서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해 해명을 하지 못했다.


“제가 데리고 들어가도 되나요?”


마님이 나서서 다시 물어본다. ‘나야 그렇게 해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한빛이와 목욕탕가서 싸운 일을 생각하면 안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선뜻 나서서 엄마와 가야 한다고 해주니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큰 아인데 남자 탈의실에 가도 되나요?”


다시 한 번 물어오는데 그제서야 이유를 알겠다.


“이 아인 남자인데요.”


직원이 조금 당황스런 얼굴을 한다.


“남자예요?”


“네!”


그제야 팔목에 띠를 묶어주며 들어가라 한다. 한빛이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기도 하고, 고무줄로 질끈 묶어 놓기도 하고, 생긴 것도 뽀얀 하니 영락없이 여자로 본 모양이다. 개찰구에서 뒷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벌인 소동이 그렇게 끝이 났다. 집에 와서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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