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한테 배우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봄이 왔지만 아침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치곤 합니다. 마음은 나비가 되어 봄을 거닐다가 혹한(酷寒)을 만나 움츠리곤 합니다. 산간지방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음을 알리는 일기예보가 유난히 호들갑스럽게 느껴집니다. 호들갑스러운 것은 일기예보뿐이겠습니까. 갑작스런 꽃샘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언 손을 녹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의연하기만 한 자연


조금 추우면 춥다고 난리치고, 더우면 덥다고 떠드는 인간과 대조적으로 자연은 의연하기만 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가지위로 초록색 새 가지가 돋아나고 어느덧 줄기 끝에는 하얀색 꽃망울이 맺혔습니다. 가녀린 줄기와 앙상한 가지에서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야흐로 찬란한 봄을 예고하는 전주곡들입니다.


벌써 꽃의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섬진강가에는 이제 매화와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추운 지방에도 봄의 화신인 산수유를 시작으로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철 내내 벚꽃, 철쭉, 꽃잔디, 수국, 장미의 빛깔이 찬란할 것입니다. 여름에 접어들면 모란, 마로니에, 접시꽃,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분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뽑낼 것이고 이어 귀뚜라미가 울기시작하면 맨드라미, 나팔꽃, 깨꽃, 호박꽃, 해바라기, 과꽃, 국화, 코스모스의 향연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딸애와 꽃씨를 뿌리고 새싹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 어느덧 소중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새싹과 꽃들이 저마다 어떻게 절기를 알고 터져 나오는 지 너무 신기합니다. 꽃들은 제가 나설 때를 알고 때 맞춰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수없이 사람보다 낫다고 되뇌곤 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뒤 저마다 새싹과 꽃을 피워내고 있는데 어떻게 대견하지 않겠습니까.


집을 둘러가며 심은 접시꽃과 해바라기가 올여름도 서로 붉은 색과 노란색 꽃망울을 터뜨릴 것입니다. 탄성이 절로 나겠지요. 이 꽃을 보면 한밤중에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을 것입니다. 꽃들에 대한 탄성이 그치자 경건함이 생겨날 것입니다. 접시꽃과 해바라기의 색감과 자태를 발견하고는 ‘왜 접시꽃을 집안에 심지 않는지, 고흐가 왜 그토록 해바라기를 그리는 데 집착했는지’ 절감을 하면서 말입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못하는 사람들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벚꽃은 벚꽃대로, 목련은 목련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철이 되면 순서대로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서야할 때 나서지 못하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에게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좋은 날만 남았습니다. 찬란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입니다.


때로 삶에 힘들고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때 수줍게 핀 꽃을 찾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요. 꽃을 발견한 순간 마음속에 쌓였던 화가 녹아들고 소박한 기쁨이 가슴을 때립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법정스님은 <홀로 사는 즐거움>을 통해 중국 임제선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도리를 이 꽃한테서 배우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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