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리면 목수가 되는 황철호 기장
후원자가 후원자를 인터뷰하다①- 임정진 동화작가가 황철호 기장을 만나다.
하늘에서 멋진 꼬리를 단 혜성을 만나면 기분이 어떨까?
화려한 형형색색의 신비로운 오로라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운명처럼 혜성과 오로라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 그것도 하늘에서!
스카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우주 쇼를 공짜로 관람한다는 황철호(대한항공 기장) 후원자를 또 다른 후원자, 임정진 동화작가가 지난 3월 30일 재단에서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항공대학을 졸업한 뒤 1988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국제노선 조종사로 일하는 황철호 기장은 멋진 우주 쇼를 조종실에 앉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기장은 많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 채로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시차 때문에 몸의 리듬이 깨지는 터라, 결코 낭만적인 직업은 아니다. 비행이 없는 날, 그는 혜성타고 내려온 어린왕자에게 양을 넣은 상자를 만들어줄 수 있는 아마추어 목수가 된다.
목조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는 한옥 짓기 교육을 받았다. 자신의 집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집을 짓는 전문가들과 의사소통을 잘 하여 만족스럽게 집을 지었다. 그 목조주택 단지에서 푸르메 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를 이웃으로 만나게 되어 2005년 9월 부터 지금까지 푸르메의 후원자가 되었으니 그 또한 귀한 인연이다.
그 후 그는 스스로 나무로 무언가 만드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마당에 정자를 혼자 힘으로 지어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친구들에게 중요한 기념일이 있으면 손수 만든 벤치나 흔들의자를 선물로 줄 수 있는 기쁨도 누려보았다. 그리고 그 솜씨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 주는 일로 확대시키기로 하였다.
대한항공에는 은빛날개회 라는 봉사단체가 있다. 회비를 모아서 귀한 일을 하는 사회단체에 후원도 하고 시간과 기술을 투자하여 여러 봉사활동을 한다. 황철호 기장은 그 중 한 팀을 맡아 경제적 문제로 또는 사회적 무관심으로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장애우나 빈곤가정의 집수리를 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기본적인 재료는 은빛날개회 후원금으로 마련하고 기술을 가진 회원들이 시간을 내어 달려가는 기술봉사다.
“연락받고 가보면 주거환경이 정말 열악한 곳이 많아요. 도배를 해드릴 때도 있고 장애가 있는 분에게 알맞은 도구를 만들어 드릴 때도 있습니다.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조금만 신경 써서 만들면 상당히 편하게 살 수 있는 도구들이 많거든요.”
황기장은 특히 장애우들이 쓸 물건은 제일 좋은 나무로 더 튼튼하게 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쓴다. 일반인들은 집에 있는 물건을 하루 10여분 쓰게 된다면 그 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더 많은 시간을 써야하고 더 오래 바라봐야 한다. 작은 계단을 만들기도 하고 휠체어가 문턱을 넘기 쉽게 경사로를 만들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이라는 일본영화가 생각났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조제(쿠미코)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요리를 좋아하는 조제는 부엌 조리대 앞에 벤치 하나 놓고 거기 앉아서 요리를 하는데 내려올 적에는 다이빙 하듯이 뚝 떨어져 내려온다. 그걸 보노라면 저렇게 하루 세 번씩 떨어지다가는 조만간 엉치뼈가 다 부셔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조제네 집은 남자 친구 츠네오의 대리신청으로 복지과에서 집수리를 해준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야하는 조제는 골목 끝까지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갈 수가 없어서 옆집 변태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굴욕을 감수한다. 결국 츠네오도 떠나고 조제는 유모차를 밀어줄 사람도, 업어줄 사람도 없음을 깨닫고, 전동휄체어를 타고 힘차게 세상 속을 누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도구를 마련하는 게 얼마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알 수 있었다. 아마 황기장이 조제를 만난다면 그녀에게 향기가 나는 미끄럼틀 요리용 의자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는 푸르메 재단을 알게 된 후 여러 친구들에게 기회 닿는 대로 푸르메재단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네팔 히말라야 미소원정대에도 직접 참가하여 가부끼 분장이라 놀림까지 받으며, 선블록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채 트레킹을 하고 치과봉사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황기장은 치과진료를 받으러 온 네팔인들과 티벳인들을 줄 세우고 번호표를 나눠주고 안내를 하였다. 그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진료 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고는 멀리서 온 분들은 우선 진료를 해준다고 설명하였다. 멀리서 온 분들은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늦게 가면 어둔 산길에 호랑이와 늑대와 여우와 사자와 코뿔소와 멧돼지가 나올 것이니 일찍 가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유머에 모든 이들이 웃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먼 동네서 온 사람을 찾아서 앞에 세워줘서 놀랐어요. 정말 마음이 온유한 이들이었지요.”
그는 두 딸에게 아빠가 봉사는 모습을 굳이 애써 설명하지도 않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간단히 이런저런 일을 하러 오늘은 아빠가 나간다고 말할 뿐이다. 어느 날, 작은 딸이 아빠가 봉사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해서 적당한 행사에 같이 나가볼 생각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는 모습을 보고, 옳게 사는 법을 배우며 생각이 커간다.
몇 년 후, 푸르메 재단의 병원이 서게 되면 그 앞마당에는 황기장이 만든 정자도 들어설 것이다. 그는 비행이 없는 날이면 푸르메 병원에 달려와 벤치도 만들 테고 휴게실에는 흔들의자도 만들 것이다. 그가 만든 의자와 정자에서는 혜성냄새가 날 것이다. 오로라 빛이 어른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