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1)
뇌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상실해 ‘이해불가’라는 의학적인 진단을 받았음에도 세상 속에서 씩씩하게 살고 있는 13살 한빛이(복합장애 1급)와, 자칭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인 한빛이 아빠의 때론 웃고, 때론 슬프고, 때론 치고받고 사이좋게(?)지내는 ‘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이야기가 4월부터 연재됩니다. 이들은 묻습니다. “왜 장애는 불행하다고 할까?”
한빛이 이야기를 시작하며- 최석윤(복합장애 1급 한빛이 아빠)
언젠가 『단 하나뿐인 선물』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임신한 상태의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서도 출산을 했고, 그 아이가 짧은 생을 살게 될 것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와 함께 한 부모의 이야기였다.
그런 아이가 내게도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우렁찬 울음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넸던 녀석이지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에서 세균성뇌수막염에 걸려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그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모든 사람들이 포기를 선언하고 등을 돌렸을 때, 기적처럼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녀석이었다.
삶을 선택한 결과는, 그 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무게로 아이의 어깨에 얹혀 있다. 뇌의 기능은 서서히 죽어가고, 몸은 봄날 순이 자라듯이 쑥쑥 자랐다. 벌써 14살이다.
처음 죽음의 판정을 받고서 기계에 의존해 지내던 녀석이 그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 손을 만지던 순간은 지금도 짜릿하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어른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을 사는 녀석에게 우리는 모든 결정권을 준다.
지적장애와 간질이라는 병을 함께 가진 녀석은 언제나 제 뜻대로 한다.
막무가내로 관철을 시켜내고, 문제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러면서 변화라는 것이 조금씩 만들어 지고 우리는 그 변화를 위해 무던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힘든 병원생활을 하면서 의사들의 예상을 비웃듯 생활하는 녀석을 보면, 이놈이 어른들을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간질을 앓게 되면서 일어나는 경기는 의사의 표현대로 ‘경기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정도로 다양한 증상을 한꺼번에 만들어 내는데,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경기를 하고 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음으로 다시 일어나는 녀석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웃음이 더 많아진다.막무가내로 관철을 시켜내고, 문제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러면서 변화라는 것이 조금씩 만들어 지고 우리는 그 변화를 위해 무던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최한빛. 두 세상을 가지고 두 삶을 살아가는 녀석이다. 하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만의 세상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뭐 거창하게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간단히 ‘장애인’이라고 한다.
상당히 위험한 녀석인데, 의사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면 ‘상태 이해불가’판정을 받고서도 비틀거리며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멋진 녀석이다.
‘이해불가’라는 말은 의학적인 진단과 눈에 보이는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뇌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남은 부분도 계속 압박을 받아 마치 호두알이 말라비틀어지는 것처럼 변해간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으며, 지금의 상태로는 지금의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이 의학적인 견해라는 말이다.
뭐 그런 녀석과 함께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슬퍼하며, 때로는 서로 쌈박질을 해대면서 잘 지내고 있다. 한빛이와 지내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늘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의 생활에 놀라기도 하고, 정말 그런지 의심을 하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라 고개를 외로 꼬기도 하지만 우리는 장애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지금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며 언젠가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니 기다릴 뿐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그 말도 여전히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 놓여 있다. 늘 의문이 되는 것은 “왜 장애는 불행하다고 할까?”라는 질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라 여기는 우리는 한숨과 눈물보다는 웃음이 더 많다. 아이의 작은 변화가 늘 우리에게 웃음을 잃지 않게 하고 있으며 목젖이 보이는 환하고 밝은 웃음을 가진 녀석과 지내면서 더불어 그렇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재미가 되니 말이다.
이 녀석과 지내면서 일어나는 일을 정리해 글로 옮겨 보려 하는데, 독특한 사고를 가진 부모와 함께하며 경험하는 일들인지라 장애 아이를 둔 다른 가정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쳐 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달랑 셋이 사는 집에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한빛이.
오스카라 칭한다. 양철북의 주인공처럼 성장을 멈춘 아이는 제 세상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치며 살아가고 있으며 존재감은 최고라 할 수 있겠다. 늘 주인공이어야 하는 녀석은, 자신이 주인공인 줄 모르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하나인 세상은 어지럽지만 한빛이의 세상은 늘 일상의 모든 고민에서 벗어나 있고, 그런 속에서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용감하게 자신의 색을 만들어 내며 지낸다.
아비.
피터팬 증후군의 중증환자다. 여전히 철들지 않은 상태여서 칠순의 노모가 한숨으로 바라보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늘 이상에 갇혀 냉랭한 현실에 치이면서도 웃음으로 세상을 보고, 웃음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언젠가 펼쳐질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헛손질 하면서 지낸다.
어미.
최고의 똑똑이. 현실주의자는 아니지만 세상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유일한 한 사람이다. 기둥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기분파이고, 중심을 잡아주는 최고의 판정관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으면서 늘 아이를 중심에 두고 지내려 애쓰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