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이 없으면 아는 것
몇 년을 미루다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치과 병원을 찾았다. 다짐을 단단히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입안의 풍경은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 깊이 파인 잇몸은 해토머리 논두렁처럼 푸석해졌고, 잇몸뼈는 봄눈처럼 녹아버려 이식이 시급했다. 어금니들은 부러진 채 밑동만 남았고, 그냥 두면 절로 빠질 아래윗니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의사가 한심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이 꼴이 되도록 방치했으니 쓴소린들 달게 들어야 할 처지다. 겪은 사람이 안다는 치통의 예감에 이미 몸서리가 나는데, 앞으로 남은 치료 과정이 험난할 거라며 의사가 혼을 뺀다.
손철주
학고재 주간
뺄 곳은 빼고, 때울 곳은 때우고, 심을 곳은 심었다. 여러 달에 걸친 지루하고 끔찍한 공사였다. 마취 바늘이 구강 속 여린 살을 찌르고 회전기기가 돌아가며 소름 돋는 소리를 내는 순간은 긴장이 엄습했고, 턱뼈를 향해 내리찍는 망치질에다 워터 스프레이에서 분사된 물과 고인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공포감은 형용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야박했다. 위로는커녕 “앞으로 술 마시고 담배 피려거든 오지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생각해도 원흉은 술 담배였다. 삼십년 넘게 퍼마시고 피워댔다. 성한 이빨이 여남은 개라도 있는 게 그나마 장할 정도다. 금주와 단연은 내게 참기 힘든 형벌이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꾹 참으리라, 빼고 남은 이빨을 지그시 깨물었다. 입안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로 송곳과 칼을 든 의사의 심기를 잡칠 까닭이 있겠는가. 그 덕분에 일찍 귀가하는 날은 늘었다. 아내는 “어디 숨겨놓은 이빨 더 없수?” 하며 반색한다.
수술 후 가장 큰 고역은 먹는 일이다. 접착제로 붙여놓은 가짜 앞니가 자꾸 빠진다. 딱딱한 음식을 깨무는 순간 앞니가 툭 떨어지니 남들 앞에서 민망한 꼴이다. 도리 없이 연두부, 순두부, 죽 따위를 찾아 먹었다. 잇몸의 상처가 쓰라려 간이 많이 들어간 식단도 피했다. 그러구러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것은 씹을 게 없고 심심한 것은 맛이 없다. 저작의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조미의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뒤늦게 깨단한다. 입맛이 우울하면 교유까지 줄어든다. 동병상련해줄 지인을 마침 만났는데, 맞장구 칠 줄 알았던 그가 도리어 타박을 한다. 그는 중국통인 학자다. 중국에 관한 한 살아 있는 설문해자요, 걸어다니는 박물지다. 기인다운 풍모에 시원시원한 언행으로 통쾌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는 나의 소심함을 나무라며 중국인이 즐기는 농담 한 가지를 들려줬다. “술 담배를 멀리한 임표는 63세를 살았고, 술 즐기고 담배 멀리한 주은래는 73세를 살았다. 술 멀리하고 담배 즐긴 모택동은 83세를 살았고, 술 담배를 즐긴 등소평은 93세를 살았다. 술 담배에 여색까지 가까이 한 장학량은 103세를 살았다.” 그는 농담을 할 만한 사람이다. 이빨 수술을 받는 도중에 잠깐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의사를 경악하게 만든 그다.
며칠 뒤에 그가 소포를 보내왔다. 열어본 뒤 그의 짓궂음에 웃음이 터졌다. 형형색색 깜찍한 디자인의 대만산 담배 여러 갑이 들어 있었다. 상표가 ‘신락원’이다. 한 대를 피우고 낙원에 가고픈 생각이 굴뚝같다. 겨우 참는다. 군것질 거리도 함께 보냈다. 겨자가 잔뜩 발린 콩과자가 있고, 시큼하고 짭짤한 매염사탕도 있다. 맵고 짜고 시큼한 맛은 내게 얼마나 강력한 유혹인가. 몰래 지켜보기나 한 듯 그가 전화했다. “옛날에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이란 당호가 있었지. 맵고 짠 맛 앞에 두고 심심하고 덤덤한 맛 새겨봐.” 이빨을 잃고서야 음미를 알 것 같다.
이 글은 2009.03.27 한겨레 컬럼 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