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미소원정대 이야기 ①-‘인술(仁術)의 나눔’
3,450m 네팔 고지에 꽃피운 ‘인술(仁術)의 나눔’
- 2009 푸르메재단 네팔 미소원정대 이야기 ① -
▲ 푸르메재단 네팔 미소원정대가 치과 의료봉사를 펼친 네팔의 고산마을 남체 바자르(해발 3450m)의 전경. 이곳에서 200여m를 더 오르면 8,848m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여명을 뒤로 하고 네팔로
푸르메재단은 지난 1월 22일부터 29일까지 7박8일 동안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현지에서 치과진료 봉사를 펼치고 돌아왔습니다. 네팔은 세계 10대 빈국에 속할 만큼 가난한 나라인데다 국토의 대부분인 산악지대의 주민들이 치과의료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사는 오지(奧地)입니다. 이번 치과 자원봉사는 재단이 운영중인 푸르메나눔치과의 봉사영역을 국내에서 국외로 넓혀보자는 취지로 이뤄졌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세계최초로 히말라야의 8천미터급 16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 씨를 대장으로 하고 푸르메나눔치과 이동준 자원봉사의사(안양 수치과 원장) 등 치과의사 4명과 일반 참가자 20명, 재단 직원 3명 등이 참여하는‘네팔 미소원정대’를 꾸려 네팔로 출발했습니다. 미소원정대가 인술(仁術)을 펼친 곳은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현지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남체 바자르(Namche Bazaar). 해발 3450m에 위치한 이 마을은 카트만두에서 다시 경비행기를 30분 이상 타고 가 산중턱에 내린 뒤 1박2일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으로, 산악인들조차 고산(高山)증세를 느끼는 고지대입니다. 국경 넘어 티벳지역을 포함해 인근 고산부족들이 주말에 모여 시장을 여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치과 의료봉사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그야말로‘오복(五福)의 기쁨’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험준한 환경과 고산병,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열정으로 똘똘 뭉친 미소원정대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을지 기대해주십시오. 4차례에 걸쳐 그들의 힘겹고 뜨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직은 서로 낯설어 서먹한 분위기 탓에 어떤 이는 무리의 주변을 말없이 맴돌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깨고 힘차고 환한 미소로 인사하는 한 사람, 바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가 넘는 16 봉우리를 오른 바로 그 사내, 한국의 국보(國寶) 엄홍길 대장이 나타나자 공항 대합실 한 켠에 깃발이 올랐다. 엄홍길과 함께 하는 푸르메재단 네팔 미소원정대! 푸르메재단이 주최하고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30명의 치과의료봉사 원정대가 다 모였다.
▲ 기대와 흥분, 불안감이 뒤섞인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 푸르메 미소원정대원들.
이번 자원봉사는 푸르메재단이 주최한 첫 번째 해외 치과진료봉사였다. 엄 대장이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네팔의 고산 주민들을 위해 치과진료를 하겠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적이었다.1월 22일 아침 6시 차가운 아침 공기와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인천공항. 푸른 모자를 눌러 쓰고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커다란 짐을 메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고, 60대 신사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이층도 다양했다.
‘우리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아침 9시께 인천공항을 떠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서른 명의 미소원정대원들과 함께 수백kg의 치과용 의약품, 네팔 주민들에게 전해질 수십 개 상자분의 학용품, 의류들이 실렸다. 기내에는 기대와 흥분, 그리고 불안이 뒤섞였다. 자원봉사대원 모두가 계획했던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주일 뒤에는 무사히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하는 7시간 30분간의 비행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현지 상황…‘우리가 할 수 있을까’
▲ 네팔로 가져갈 의약품과 학용품, 의류 등 각종 지원물품들.(사진=전한/대학생·네팔미소원정대원)
걱정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엄 대장을 빼고 아무도 고산병의 기준선격인 3,000m이상을 오른 경험이 없다. 네팔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는 엄 대장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정도의 고산지역에 치과의료 봉사를 나온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4명의 의사 외에는 치과진료 경험이 있는 대원도 전혀 없었다. 목적지에 당도한다고 해도 치과의사가 4명이 모두 심각한 고산증세를 겪는다면 봉사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 참가자들 역시 전문적인 진료활동을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여기에 카트만두에서 우리가 타게 될 경비행기가 제 시각에 뜨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조금만 기상이 나빠도 결항되기 일쑤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이 우리를 찾아와 줄까. 한 달 전부터 홍보를 해두었다고는 하지만, 몇 명이나 환자를 받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걱정거리가 쌓여 있었고, 자꾸만 새로운 걱정거리가 늘어갔다. 4개월 넘게 꼼꼼하게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자칫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이번 일정 전체가 어그러지고 말 것만 같았다. 비행을 마치고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흙먼지로 뒤덮인 매캐한 대기를 들이마시자 불안은 더해갔다.
‘가난의 벽’ 앞에서 불안을 느끼다
▲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거리. 혼잡한 도로 주변에 어린 노숙자들이 뒤엉켜 있다.
카트만두 시내는 듣던 대로 혼잡했다. 중앙선 없는 도로에 오토바이와 택시, 버스가 행인들과 뒤엉켰고 인도에는 걸인들이 바싹 마른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가난과 무질서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의 도움이 진정 필요한 것일까. 대도시보다 더 열악한 고산부족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도착 첫날 대원들은 여장을 풀자마자 트래킹 장비를 보충하러 시내 중심가로 나섰다. 혼잡한 거리, 쉴 새 없이 사람을 긴장시키는 경적과 짙은 매연, 그리고 너무도 빈한한 네팔 사람들의 모습에 대원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가는 것 처럼 보였다. 이윽고 밤이 닥치고, 저녁 8시부터 정전이 되자 시내는 암흑천지로 바뀌었다. 모든 대원들은 촛불 앞에서 무겁고 긴장된 마음으로 해발 3,450m의 남체 바자르를 향해 출발할 내일을 기다렸다. (계속)
▲ 미소원정대는 정전된 카트만두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네팔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글/사진 = 정태영 푸르메재단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