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스티븐 호킹이 나오려면

'한국판 스티븐 호킹'이 나오려면

진정한 재활병원 나올수 있게 의료제도 근본 개혁 있어야


2년 반 전 미국에서의 교통사고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강단에 서게 된 내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의 하나가 미국과 한국의 재활(再活) 제도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사실 나도 사고로 목의 네 번째 경추가 완전히 손상되기 전에는 이것이 어떤 장애인지 전혀 몰랐다.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하는데 그는 온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루게릭 환자라는 점에서 나와는 다르다. 반면 수퍼맨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나와 같은 척추손상 장애인이었다.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나는 미국에서 다친 것이 그나마 큰 행운이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얼핏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말인데, 이는 결코 미국의 의료기술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낫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어림짐작에 미국의 의료비는 우리나라에 비해 열 배 이상 비싸다. 그러니 당연히 시설이 좋을 수밖에 없다. 나는 농담으로 비싼 병원비 덕분에 병원이 나를 빨리 퇴원시켜 사회로 돌려보내려고 했기에 빨리 일어나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서 쓰러진 나를 50분 만에 헬리콥터가 날아와 싣고 인근 병원옥상에 내려놓는 바람에 나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한번 죽은 척추 신경세포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이후 나는 LA의 랜초 로스아미고스라는 재활병원에 가서 훈련을 받았다. 그 병원에서의 삶 자체가 재활이었다. 재활의학 전문의, 전문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전문가팀이 구성되어 환자가 다시 사회에 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활이고 운동치료와 작업치료는 그냥 도구일 따름이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를 전동휠체어에 앉혀 몸에 남은 기능을 이용해 스스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소개해주며 이를 잘 활용할 경우 비장애인처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때 비로소 대학에 돌아가 다른 교수들처럼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밖에 병원에서는 모델 홈을 지어놓고 환자들에게 퇴원 후 공간을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또 매일 척추손상 환자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통해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가르쳤고 움츠러들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극장, 수영장, 쇼핑몰 등에 외출을 시켰다.


3개월 뒤 한국에 돌아와 꽤 큰 대학병원에 들어간 나는 커다란 문화차이를 경험했다. 먼저 단순골절치료를 비롯해 전혀 다른 병을 가진 환자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재활치료를 하는 것에 놀랐다. 재활은 단순한 물리치료였으며 환자들은 상태호전에 상관없이 보험에서 일률적으로 규정한 기간 동안 반복적인 운동치료를 받는 듯했다. 나는 담당의사 선생님께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고 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복지법상 재활병원이 있으나 법률적으로만 존재할 뿐 의료제도 내에서 실질적으로 재활병원이 수행하여야 하는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는 병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기능상태 호전과 가정과 사회로의 복귀를 잣대로 치료하는 미국의 경우와는 접근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의료보험상에 재활로 책정된 많은 예산이 나누어 먹기 식으로 단순한 운동치료 등에 사용되다 보니 정작 보조공학기기 보급과 같이 중증 장애인의 사회, 직장 복귀에 꼭 필요한 예산이 크게 모자란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재활은 장애가 발생한 후 새 삶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준비 과정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의료제도의 개선 없이는 제2의 또는 제3의 한국판 스티븐 호킹이나 수퍼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2009.01.21 조선일보 사설·칼럼 면에 실린 글입니다.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