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섣달 그믐날의 남체 풍경
25일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진료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우리는 환자들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하였다. 이동준 진료팀장 (푸르메 치과 자원봉사 치과의사) 전형복, 석도준 부부 치과의사, 이금숙 전남대 치대 교수 4명이 검진과 진료를 맡았다. 나는 이동준 원장님 팀이 되어 소독된 기본 장비를 챙겨서 건네주고 알코올 솜, 거즈 등을 보충하는 일을 하였다. 초등학생까지 모든 봉사자들이 안내, 약 나눠주기, 위생교육, 소독 등을 맡아서 치과진료가 원활히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맡은 일을 하였다.
25일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진료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우리는 환자들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하였다. 이동준 진료팀장 (푸르메 치과 자원봉사 치과의사) 전형복, 석도준 부부 치과의사, 이금숙 전남대 치대 교수 4명이 검진과 진료를 맡았다. 나는 이동준 원장님 팀이 되어 소독된 기본 장비를 챙겨서 건네주고 알코올 솜, 거즈 등을 보충하는 일을 하였다. 초등학생까지 모든 봉사자들이 안내, 약 나눠주기, 위생교육, 소독 등을 맡아서 치과진료가 원활히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맡은 일을 하였다.
▲ 의료봉사모습 (사진=푸르메재단)
여러 날, 몇 단계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 등 시간적, 장비부족 등의 이유로 진료할 수 없는 환자도 있었지만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180명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방문자들에게 치약과 칫솔을 나누어주고 이 닦는 방법을 교육하였다. 현지 가이드들도 네팔어, 티벳어 등을 통역하느라 함께 애썼다. 티벳어- 네팔어-영어- 한국어 순으로 3명이 달라붙어 통역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푸르메재단은 엄홍길 대장이 건립 중인 팡보체 초등학교에 (주)유경과 (주)바른손의 후원으로 아동의류 200여점과 스케치북, 노트, 연필 등의 학용품을 전달하였다.
5시가 되자 기다리던 환자들이 다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 무사히 치과진료봉사를 끝내고 나서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일반 봉사자들은 치과의사들의 친절하고 다정한 진료모습에 감동하였고 치과의사들은 우리가 너무도 놀랍게 빨리 적응하여 보조 역할을 잘 해준 것에 놀랐다고 서로를 칭찬하였다.
▲ 맨 오른쪽이 필자인 임정진 동화작가 (사진=푸르메재단)
내가 세상에서 가 본 가장 높은 곳, 남체바자르.
나는 그곳까지 내 다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돕는 작은 역할을 하였다.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이었다. 한 해 마감하는 행사로 더 이상 좋은 게 없을 것이다.
자유시간이 되어 나와 계희씨는 롯지를 빠져 나와 별을 보았다.
페인팅레이디 동화달력으로 꾸준히 자기 스타일의 작업을 해온 그녀와 난, 안 지는 여러 해 되었지만 모임에서 만나면 잠깐씩 이야기했을 뿐이고, 이렇게 여행을 같이 해보긴 처음이었다. 희미한 은하수를 보고 오리온자리도 보았다. "정말 오길 잘 했다." 우리는 그 말을 여러 번 하였다.
▲ 푸르메미소원정대 학생 대원들과 함께 (사진=푸르메재단)
설날이 되었다. 아침메뉴로 떡국이 나왔다. 우리는 각자 가족을 위해 간단히 침묵 속의 기도를 하고 서로를 축복하였다. 이틀간 올라간 산을 하루 만에 내려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우리 일행들은 이제 너무도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어려운 과정을 함께 견뎌냈고 소중한 경험도 같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귀한 인연이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27일 오후에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신들의 영역에서 다시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 남체에서 만난 네팔 아이들 (사진=푸르메재단)
함께 히말라야에 갔던 일행들은 모두 남체 폐인이 되었다. 아직도 난 조금 멍하다. 히말라야 고산마을을 올랐었지만 지금도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헉헉거린다. 내 친구들은 내가 위험한 크레바스를 건너며 눈 덮인 히말라야를 다녀온 지 안다. 그냥 그렇게 알게 두어야겠다. 초록 푸성귀가 있고 꽃이 피기도 하는 먼지 바람 나는 히말라야를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그런 줄 몰랐었으니까.
닭과 개들이 자유롭게 동네를 누비고 다니다가 편하게 잠을 자기도 하는 산동네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린 아이들이 무거운 짐을 이마에 걸친 끈으로 메고 다니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다. 아들이 때려서 다쳤다고 서럽게 우시던 네팔 할머니는 정말 아들을 신고하러 루크라 파출소에 가셨을까. 이를 뽑은 이들은 3일치 약을 다 잘 먹고 잘 아물었을까?
▲ 의료봉사가 끝나고 다 함께 모여서 찰칵! (사진=푸르메재단)
엄홍길대장은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히말라야에 가본 사람, 아직 안 간 사람. 그러면서 히말라야에 다녀온 사람은 표정이 다르다고 장담하였다. 나의 표정에 작은 평화가 깃들었다면 다행이겠다. 다리 아프다고 인상 쓰던 자국이 남으면 큰일이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일은 내게 두고두고 어떤 의미일까?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도 아름다웠던 순간도 다 지나고 나면 먼지바람처럼, 안개처럼 헛헛해진다. 그러나 이번 히말라야 여행은 조금 다를 것 같다. 반짝이는 작은 별 부스러기를 마음에 박은 기분이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 운도 지지리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마음 속의 그 반짝이는 히말라야 추억을 꺼내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기운을 얻을 것이다. 신들의 영역을 경배하고 왔으니 나는 앞으로 자연에게 겸손해지려나. 차차 철이 들려나.
글=임정진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