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으로
다일 공동체는 올해로 꼭 20주년이 됩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저는 ‘밥퍼 목사’로 알려져 제법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다일 공동체라고 하면 “아, 청량리?” 또는 “오, 밥퍼구만!”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의 아름다운 수고와 공동체 가족들의 땀과 눈물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흘러야 했습니다. 감동의 눈물도 있었지만, 고통의 눈물도 함께했던 시간…….
최일도
다일공동체 대표
지금 돌아보면 모든 일이 감사하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암담했고 고통스럽기만 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었으며 다일 공동체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련과 고통이야말로 다일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다일 공동체는 설립 초창기부터 가장 많이 한 일이 바로 ‘이사’였습니다. 변변한공간 하나 없이 어느 사무실을 잠시 사용하기도 하고……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이라 비를 피할 공간만 하나 있으면 감사했던 때였습니다. 588 집창촌에서 시작해서, 이사 가는 곳마다 쫓겨나 결국 들어간 다일 공동체 나눔의 집은 588 사창가 152번지였습니다. 그나마 전셋집이어서 매번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주님께 감사했던지요. 하지만 우리의 감사와는 별개로 동네 주민들의 원성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588 사창가도 옛말이 되어 거의 철거 상태에 놓여 있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한창 성업 중이었기 때문에, 다일 공동체가 자신들의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탐탁히 여길 리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두세 사람 이상 모이기만 하면 기도하며 찬송하는 우리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했을 것입니다. 지나갈 때마다 험한 소리는 물론이고 재수 없다며 소금을 뿌려 대기도 하고, 칼을 들이대는 사람, 각목으로 위협하는 사람……. 실제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두드려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골목 안에 모인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다양한 만큼, 다일 공동체를 향한 그들 나름의 위협 방법도 참 여러 가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기독교 최초의 무료 병원인 다일 천사 병원을 지으려고 부지를 구하고, 그곳에 첫 삽을 뜨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주고 지원해 주어 마련된 귀한 병원이었지만, 천사 병원을 세울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는 모두 인색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거지들을 죄다 불러들인다며, 내려가는 집값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천사 병원을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곳곳에 설치하고 “최일도 물러나라!”를 외쳐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일 공동체를 청량리와 전농동 일대에서 다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와 다일 공동체 가족들은 588 골목에서도 그랬듯이, 더욱 낮은 자세로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골목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쓸며, 만나는 동네 주민들에게 웃는 얼굴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저희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마다, “너희들 당장 여기서 나가지 못해?”, “그런다고 너희를 가만히 둘 줄 알아?” 하며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지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동네 주민들도 밥퍼나눔 운동 본부와 다일 천사 병원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면서, 이제는 어느덧 다일과 한마음이 되었고, 한뜻을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희망 없어 보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의 땀과 눈물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20년 동안의 다일 공동체의 나눔과 섬김의 삶은 어느덧 21세기 한국 교회의 자존심이며, 이 사회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만 드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친히 먹이고 입히고 살리는 구원을 하셨음을 우리는 목격한 것입니다.동네 주민들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고, 이 병원을 찾아올 무의탁 노인들과 행려자들이 자신들의 삶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다일 공동체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삶으로 매일 체험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모인 사람이 장정만 5천 명을 넘었다니 엄청난 사람이 모였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린아이 한 명만 도시락을 싸왔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먹을 것이 있느냐?” 하고 예수님이 물었을 때 다들 감추었습니다. 나누면 못 먹을까 봐 그런 것이지요. 나도 배고픈데 지금은 별로 가진 게 없으니까요. 그 가운데 한 어린아이만 자기 먹을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 작은 포기와 순종이 오직 사랑으로, 지금도 다일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며 생명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다일 공동체 가족들은 일상의 삶이 곧 기적이라고, 날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지켜주신 것도 기적이요, 주민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삶과 함께 다일 공동체가 전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 것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일 공동체는 가장 척박한 땅 청량리 뒷골목에서부터 시작해서, 20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으로 흩어져, 그 나라 안의 가장 열악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사는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던 하나님의 선물은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다일 공동체는 오늘도, 오직 사랑으로 내가 나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며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만납니다. 그리고 매일 저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만 이 생명 불타오르게 하소서.”라고…….
푸르메재단에서 엮은 <네가 있어 다행이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