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같이 걷는 세상을 꿈꾸며 "푸르메 어린이들과 함께 한 화요일"
안녕하세요,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화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하러 재단의 한방 재활센터을 방문해 온 오한나라고 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그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재활 센터에서 제가 맡은 일은 진료 차트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진료 차트 정리 일이란 도착한 아이 순서대로 이름과 나이를 적고, 아이들이 진료를 받으면 침을 몇 개 맞았는지, 주사의 투여량은 어느 정도인지 차트에 기록된 진료 내용을 기록지에 기록하는 일입니다. 또 아이들이 주사를 맞을 때 아픈 것을 벌써 눈치 채고 맞지 않으려고 마구 움직이는 몸을 곁에서 꾹 잡아주는 일도 합니다.
어린이재활센터
자원봉사자 오한나
(서강대학교 4학년 영미어문 전공)
잘 참고 맞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빠져 나오려고 울면서 아픔을 호소하는데 그저 꾹 잡아주고만 있어야 했던 전 마음이 늘 아팠답니다. 주사를 하나하나 맞을 때마다 그만큼 더 건강해질 거라고, 조금만 잘 견뎌주고 힘을 내 달라고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기록을 하고 주사 맞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것 외에 남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로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마다 장애의 정도가 달라서 반응도 조금씩 달리 보이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을 한데 데리고 놀 수는 없었지만 제 힘이 닿는 데까진 아이들마다 맞는 방법으로 고루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했습니다.
푸르메의 웃음꽃으로 통하는 경민이는 아이들 중에 가장 활발하고 웃음이 많아 경민이를 볼 때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저를 볼 때마다 '누나'라고 불러주면서 제가 다른 아이들과 놀러 다른 자리로 갈 때 못 가게 하던 모습, 초반에 두 팔 벌려 안아주었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경민이와 동갑인 태정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자주 방긋방긋 예쁘게 웃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요. 남자 아이라 그런지 자동차 종류의 장난감을 좋아해서 태정이에게 자동차 장난감을 붕붕 하고 움직이면서 보여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활짝 웃는 모습에 계속 자동차만 보여주게 돼요. 같이 그림책을 볼 때에도 자동차나 텔레비전 등 기계류가 나오는 페이지가 아니면 고개를 돌려 버린답니다.
수진이는 모든 사람들이 참 이국적이라고 입 모아 예쁘다고 한 번씩 말할 만큼 쌍꺼풀이 짙은 눈을 가진 호기심이 많은 아이에요. 수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도 특별히 더 주사 맞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주사를 맞으러 갈 때마다 온 얼굴이 울음 범벅이 되곤 하는 바람에 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맞아도 아프지 않은 주사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울지 않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수정이는 푸르메 아이들 중에서 제일 큰언니에요. 애교가 많은 수정이는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도톰한 볼에 두 번째 손가락을 갖다 대는 포즈를 자주 취하곤 해요. 그건 바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포즈입니다. 어머니께서 수정이가 너무 카메라를 좋아해서 문제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도 귀여워서 그만 핸드폰이든 디지털 카메라든 뭐든 꺼내서 사진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어요.
지우는 요즘 거의 늘 1등으로 와서 앉아서 기다립니다. 얼마 전엔 우뚝 서서 걷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지우가 그렇게 잘 걸어 다니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조금 숨이 찬 듯 보였지만 엄마 손 없이도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이 대견했어요. 지우도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데 자주 보지 못해서 아쉬워요. 시간을 더 많이 함께 보내면 볼 수 있을 텐데.
찬웅이는 힘이 장사에요. 찬웅이가 주사를 맞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긴장이 되는 이유는 몸이 움직일 때 힘이 엄청 세서 저의 모든 힘을 내어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른 아이들보다 아직 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못했지만 찬웅이도 언젠가는 밝게 웃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늘 엄마 곁에 있어 거의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소정이는 제 사촌동생의 어렸을 적 얼굴을 닮아 특별히 마음이 더 갔는데 눈이 참 예쁘고 고운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어린 만큼 몸집이 작고 힘이 별로 없어서 주사 맞을 때도 꽉 잡지 않아도 별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아팠어요. 잡아줄 때 힘이 많이 들어도 괜찮으니까 소정이가 언젠간 힘도 세져서 힘차게 몸을 움직이고 걸어 다닐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푸르메 재단의 한방 장애 재활 센터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하면서 그 아이들을 통해서 제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은 안됐다고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은 아이들은 동정이나 연민을 받아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저 도움을 주는 입장, 봉사를 베푸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네 언니나 누나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을 땐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 힘내라고, 다독여 주는 가족의 마음이 되었고 아이들과 놀면서는 유치원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저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앞으로 긴 세월 동안 푸르메의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살아가게 될 지는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건강해져서 다리에 힘이 없어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걸을 수 있기를, 잔병치레가 심한 아이들은 보다 덜 할 수 있게 되기를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을 매주 만났던 화요일의 아침 시간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화요일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일이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의 예쁜 눈망울과 웃는 모습, 옹알거림일 지라도 귀여운 말소리와 웃음소리들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아이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 아쉬워서 마음이 아려 옵니다. 그만큼 어느덧 너무도 정이 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제 마음에 사랑을 심어준 것에 대해, 그리고 이런 만남을 이어준 어떤 인연 혹은 운명에 참 많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시간과 여건만 허락한다면 계속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다른 공간에서도 제가 받은 사랑과 감사를 베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미래에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더라도 푸르메 재단에서 만난 아이들과 좋은 사람들 모두 기억하면서 소리 없이 후원도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재활병원이 탄생하기를 설레는 푸른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