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다행이야
김성재
푸르메재단 사무국장
꼭 10년 전이고 딱 이맘때다. 지금 대학생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부도난 대한민국의 초겨울은 몹시 추웠다.
이름하여 ‘IMF사태’였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줄도산으로 쓰러졌고 거리엔 실직자가 넘쳐났다.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하철역이 없었다면 굶주린 노숙자들은 배고파 죽기 전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취직할 곳이 없어 휴학을 하고 학교에 머물거나, 경제가 조금이라도 되살아 나 일자리가 생기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당시 한 신문사의 사회부 경찰출입기자였던 나는 가게에서 쌀이나 생필품을 훔치다 붙잡힌 ‘생계형 범죄자’들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가난 때문에 아내는 집을 나가고, 막노동판에 나가느라 돌봐줄 수 없는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겨놓고 돌아서서 흐느껴 우는 남자들을 봤다. 절망을 이기지 못해 숫제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엄마가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는, 슬프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비참한 소식도 간혹 뉴스에 났다.
1998년의 이런 풍경이 지금 재현될까 걱정이다. 불행히도, 이미 전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감원 등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파산 예상기업 리스트가 돈다. 금융시장은 하루 건너 패닉에 빠지고 있다. 가계 실질소득이 98년 이후 처음으로 0%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발표가 났다. 무리하게 빚내 집을 산 중산층과 서민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 시작하면 가계경제도 끝장이다. 정부의 관료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보다 더 정확한 경기 예측으로 유명해진 논객 미네르바의 예상대로라면, 이번 위기는 10년 전보다 더 심각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생각해 본다. 10년 전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은 그 절망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올 겨울, 그 때보다 더 심한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이번에는 또 어떻게 살아남을까? 내 주변에 절망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어떤 희망의 말을 줄 수 있을까?
희망의 말을 찾아보다 <네가 있어 다행이야>를 펼쳤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결국 절망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이 마흔에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걸려 온 몸이 마비되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며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문학박사가 됐고 지금도 연구작업을 한다. 추위에 썩은 손가락-발가락을 잘라내고 죽음의 위기에 무수히 직면하면서도 히말라야를 오른 등반가는 그 이름 석자만으로 희망의 상징이다. 꽃다운 나이에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여성이 있다. 11번의 대수술 뒤에 화상으로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보며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던 그녀는, 지금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포기란 자기 안의 무수한 가능성을 폐기하는 것이며, 자기 삶이 서서히 녹슬어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가장 지독한 나태와 무례함이다.’
안성기, 박원순, 고도원, 홍세화, 김창완, 엄홍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필자들에게도 좌절과 실패가 있었다. 여러 필자들은 장애와 가난과 질병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이들이다. 하지만 절망과 고통을 이겨낸 뒤 그들은 오히려 자신과 남들에게 희망을 전파한다.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장애와 가난, 불안과 위기, 실패와 좌절 그 자체가 아니라 ‘포기’일지 모른다.
겨울이 시작됐다. 경제한파로 이번 겨울엔 많은 국민들이 힘든 삶을 살아야 될 것 같다.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봄이 올 것이란 희망이 있어서다. 고통과 좌절로 힘들어 하는 친구와 이웃과 연인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보자. “네가 있어 다행이야”라고.
김성재 푸르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