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콜택시 바우처 도입하자

비가 오던 어느 날, 사무실을 나서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재활센터에서 치료받고 나오는 꼬마를 만났다. 몇 달 동안 침도 맞고 마사지도 받더니 걸음걸이가 좋아지고 표정도 한결 또렷해졌다.

이 꼬마는 경기도 오산에서 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 신교동까지 매주 두 번씩 치료를 받으러 온다. 어머니는 처음에 아이와 함께 버스와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아이와 씨름하며 오는 것이 힘겨워 최근엔 아예 장애인 콜택시를 대절한다고 했다. 서울에 한 번 오는 콜택시비만 3만5000원. 일반 택시비에 비하면 싼 값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왕복 교통비 7만원은 너무 큰 부담이다.


잠시 뒤 이번에는 재단 1층에 있는 장애인전용 치과 앞에서 몇 달 전부터 잇몸 치료를 받고 계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오스트리아 잘스부르크 장애인통합학교의 스쿨버 스. 학교를 후원하는 회사들의 로고가 버스 앞뒤에 붙어있다.

진료가 끝난 지 한참 됐는데 왜 빗속에 서 계신지 물어보았다. 역시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장애인 콜택시는 약속 시간보다 한두 시간 늦는 게 예사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장애인 콜택시는 요금이 저렴하지만 운행 대수가 적어 예약이 어렵다. 서둘러 예약해도 한 시간 이상 기다리기 일쑤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교통바우처’를 만들면 어떨까.


교통비 지원은 장애인에게 의료비만큼 절실한 문제다. 의수화가로 올해 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한 석창우 화백은 감전사고로 양 팔이 절단된 장애인이다. 의수가 있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혼자 외출은 엄두도 못 낸다. 표 사는 것은 물론이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장애 어린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는 어떤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아이를 통제하기도 힘들고 승객들 따가운 눈길을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버스나 전철이 불편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신체적·정신적 조건 때문에 아예 탈 수가 없는 장애인이 적지 않다.

장애인이 장애의 한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가능한 한 자주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버스나 지하철은 이용하기 어렵고 택시는 요금이 두려워 못 탄다면 이들에게 사회적인 장벽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제도를 도입하자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나라 바우처제도는 대개 서비스 공급자가 지정돼 있다. 문화바우처만 하더라도 지정된 공연이나 영화 이외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교통과 같은 일상생활은 한정된 공급으로는 지원이 어렵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것과 같이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택시 회사와 협약을 하고 모든 장애인이 필요할 때 쉽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장애인에게는 쿠폰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에서 예산 지원을 하기 어렵다면 기업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 외국에서는 장애인 이동 수단을 후원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로 선진국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 등 우리나라 복지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지도자가 며칠만이라도 장애인 경험을 해본다면, 아마 우리 사회의 장애인정책은 20년을 앞서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81호(08.11.1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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