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부립 리하빌리테이션 센터] 퇴원 후의 일상생활까지 책임진다.
뉴스에서 끔찍한 교통사고 소식을 접하거나 거리를 난폭하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우리는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만약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받게 될까?' '퇴원한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대개 이런 상상은 잠시 스쳐가는 기분 나쁜 순간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면 숨막히게 답답한 현실 안에 내가 누워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장애를 입게 되었을 때 우선 시급한 문제는 적절한 치료일 것이다.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보다 효과적인 재활치료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재활치료를 위한 입원 자체가 힘들다. 그래도 좋다는 병원에 병상에 입원하려고 환자가 많고, 어렵게 입원해도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보통 두 달이 넘으면 퇴원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 오사카부립병원 장애인리하빌리테이션센터 정문
괜찮은 병원에 입원해 기본적인 치료만을 끝마쳐도 곧장 퇴원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역사회에 돌아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각 개인에게 적합한 사회적 지원 및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거의 전무하다. 관련 기관이 있다고 해도 연계성 없이 각각 운영되고 있어 환자나 가족들이 모두 이리 저리 좇아다녀야 한다. 시간과 노력이 길 위에서 허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복지 체계가 전반적으로 워낙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인 재활을 비장애인의 관점, 즉 의료적인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체적인 기능만 어느 정도 회복하면 된다는 생각, 장애인은 평생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 장애를 갖게 된 사람에게 의료적인 치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재활치료가 끝나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의 선진국인 일본의 현실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찾은 곳이 일본 오사카부립병원 장애인 리하빌리테이션 센터였다.
친절한 미소가 인상적인 이와미 카즈오 기획과장 보좌의 안내를 받으며 리하빌리테이션 센터 입구에 들어서니 점자가 새겨진 건물 안내도가 보이고 음성안내 서비스가 또박또박 울려 퍼진다. 한 쪽에 가지런히 준비된 방문자용 휠체어를 지나 탁 트인 1층 로비로 향하자 잔잔한 오르골 음악이 울려 퍼지고 각종 화분과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보인다. 장애인 시설이므로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전에 한국에서 경험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형식적인 이유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설치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카즈오 씨에 따르면 2007년 4월 문을 연 총 1만평 규모의 오사카부립병원 리하빌리테이션 센터는 병원 치료에만 관심을 갖는 기존 서비스 체계와 달리 병원의 재활치료, 생활 적응을 위한 재활훈련,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위한 자립상담을 일관된 체계로 묶은 종합 의료재활기관이다.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은 후 환자가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는 일체형 의료체계는 일본에서도 이곳 리하빌리테이션센터가 유일하다고 한다.
▶ 3개 기관이 함께 모여 일관된 체계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환자가 오게 되면 일차적으로 오사카부립급성기종합의료센터로 간다. 이곳은 지방정부인 오사카부(부는 한국의‘도’에 해당)가 설립하고 독립민간법인이 운영하는 급성기종합병원이다. 현재 재활의학과를 포함해 28개 진료과가 설치되어 있으며 환자가 입원하면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아 120일에서 180일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다. 180일이 지나면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의료적인 대응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장애가 고착되어 더 이상 의료적인 치료가 의미가 없게 된 환자는 두 번째로 오사카부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자립센터로 가게 된다. 환자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보통 6개월에서 1년 동안 각종 재활 훈련 서비스를 받는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1955년에 설립된 오사카부립병원은 원래 오사카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립병원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 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재정적자가 만성화되면서 강력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사카부에서 독립된 민간법인을 만들어 위탁,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예산은 오사카부에서 지원된다.
오사카부립병원의 재활훈련 프로그램으로는 물리치료 등 신체적인 재활훈련뿐만 아니라 생활적응 훈련과 취미활동 등이 있다. 생활적응훈련은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도 일상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요리, 세탁 등 다양하게 실시한다. 취미활동에서는 도자기 만들기, 그림 그리기, 붓글씨 쓰기 등 지역사회에서 취미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중도장애를 입은 사람은 정신적인 충격이 크기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되고 정신장애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갔을 때 문화센터 등에 가서 취미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운다.
▶ (좌)환자들이 찰흙으로 만든 것들 (우)편리하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싱크대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일정 정도 가능해지면 마지막으로 환자는 지역사회로 돌아가 국가에서 설립,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상담센터를 이용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장애인 등록 사업과 함께 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상담을 받는 사람이 1년에 1,5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세 기관이 같은 공간에 이웃하고 있다.민간과 정부/지자체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는데 운영상 어려움은 없을까? 이와미 씨는 치료에서 자립까지를 하나로 묶는 체계를 만들기까지 각각의 부문을 통합하고 조직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400억원을 들여서 건립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보다도 세 부문을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정부 영역의 공공성과 민간 영역의 효율성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 공기 압력을 사용하여
▶ 보행 연습을 할 수 있는
▶ 첨단 기기
리하빌리테이션센터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환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물리치료실에 들르니 때마침 재활의학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치료진이 모여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있다. 이것은 치료진이 환자의 동의를 얻어 특별히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한다. 치료가 끝나는 오후 3시 30분 이후 48명의 치료진이 4개 팀으로 나뉘어 1주일에 1시간씩 환자 유형을 달리해 팀별로 사례발표를 하고 실습을 한다고 한다. 환자를 좀 더 이해하고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열기가 대단하다. 이 열기가 환자들에게 전달되는 지 환자의 표정도 밝아보인다.
일반적인 물리치료에서는 물리치료사 한 명이 1일 23단위(1주일 108단위)를 맡는데 1단위가 20분이므로 하루 평균 치료시간은 7.6시간이 된다. 환자 한 명이 하루에 최대 6단위(2시간)의 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200명의 환자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환자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물리치료실을 지나 장애인 전용치과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 접수실 맞은편에 있는 환자 대기실은 좁았지만 햇빛이 잘 들고 라디오와 벽걸이형 텔레비전이 있어서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을 가질 것 같았다. 치과 치료에 두려움을 가지기 쉬운 환자들을 위해 비치된 귀여운 인형들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곳에는 5개 진찰실에서 총 3명의 치과의사가 근무한다고 한다. 한 환자당 보통 30분에서 1시간 동안 치료를 하고 하루 25명 정도가 방문한다. 예약을 필수적이고 예약 대기기간은 2주 정도지만 시급한 치료는 바로 받을 수도 있다. 치료비는 1회에 500엔(약 5000원)이며 1달에 최대 1,000엔(약 1만원)인데 보험가는 높지만 지자체의 보조로 환자들은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는다.
▶ (좌)중증장애 치과환자가 사용하는 연습용 유닛체어
▶ (우)유넷체어에 앉기 위한 훈련을 하는 매트
진찰실에는 환자들이 누운 채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는 최첨단 유닛체어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최첨단 설비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습용 유닛체어 옆에 놓여 있는 두툼한 빨간 매트다. 이것은 중증 장애 환자들이 유닛체어에 앉는 연습을 하는데 쓰는 도구라고 한다. 중증장애인들은 움직이는 게 쉽지 않고 치과 치료에 대해 두려움을 많이 가지기 때문에 치료진은 환자를 이 빨간매트에 몸을 뉘인뒤 유닛체어에 앉는 연습을 하는 것을 치과치료의 시작으로 생각한단다. 실제로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몇 주 동안은 병원에 방문해서 매트 위에서 움직이는 연습만 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 이와미 카즈오 씨가 중증장애인이 화장실을 사용할 때 쓰는 리프트의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천장에 있는 레일을 따라 방에서 화장실까지 혼자서 이동할 수 있다.
리하빌리테이션센터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애인들이 가장 쾌적하게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세심하게 디자인된 건물이다. 넓고 시원한 1층 로비와 전동휠체어 2대가 동시에 이동해도 넉넉한 넓은 복도, 사무실과 치료실 및 엘리베이터에 가장 빨리,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 배치 등이 모두 인상적이다.
엘리베이터는 넓어서 침대차도 무리 없이 옮길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거울이 밑바닥까지 길게 달려 있어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퇴원하기 전 자립생활을 연습하는 원룸맨션에는 중증척수장애인도 혼자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천장의 레일을 따라 화장실로 천천히 이동하는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다.
상담실은 일대일 면접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여럿이 함께 면접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화장실은 의외로 비좁아서 의아스러웠는데 장애인에게는 넓은 화장실이 한두 개 있는 것보다 작은 화장실이 곳곳에 많이 설치된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드웨어는 그냥 하드웨어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 현실 그대로 반영된다. 성별 구분도 없이 남/녀 비장애인 화장실 사이에 있고 비상호출버튼 하나 제대로 없는 한국의 공공 장애인화장실을 떠올려 보면 창피함과 민망함을 넘어 암담해지기까지 한다.
이와미 씨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경험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센터를 이용하시던 뇌종양 후유증 환자 A씨는 신체적으로는 불편하지 않았고 대화도 자유롭게 가능했지만 기억력이 손상되어 조금 전에 했던 자신의 행동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날 재활작업장에서 동료가 A씨에게 그 전날 사용한 부품을 가져다 달라고 요말했는데 A씨가 전혀 다른 것을 가져오자 그 동료는 엉뚱한 것을 가져왔다며 화를 냈다. 이런 경우가 잦아져서 A씨는 작업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웠다. 이와미 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는 모든 부품에 이름과 함께 세세한 설명을 적은 칼라 메모를 붙였다. 그러자 A씨는 ‘어제 가져왔던 부품’을 기억하지 못해서 괴로워하지 않고 아주 쉽게 ‘○○색 ○○번 부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장애를 환경에 무조건 적응시켜서는 안 됩니다. 장애에 맞추어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한 장애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글·사진=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