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대상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느낀 점들
조심스럽게 단어선택에 주의하면서 KBS <내일은 푸른 하늘>에 고정 출연한 지 1년이 흘렀다. 출연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2005년 여름 인터넷 신문에 쓴 하나의 칼럼 때문에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그 칼럼은 영화 <말아톤>이 거둔 대종상 영화제 7개 부문 수상이 장애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속죄 의식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섭외 배경은 이 같은 내용을 방송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었다.
당시 EBS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 고정 출연하고 있었지만,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조심스럽기도 했다.
단어 선택에 대한 조심스러움은 <내일은 푸른 하늘>에 고정 출연하면서 더욱 실감이 나게 되었다. 평소에 무심코 사용했던 단어들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장애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를 풀어가는 꼭지였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느낀 몇 가지 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언제인가 학교 후배가 씩씩거리면서 들어왔다. 자신이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자신을 개념 없고, 골통으로 여기는 이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했다.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면 마치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대학을 지배하고 있었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 장애우라는 단어와 장애인이라는 단어 중 어느 것을 쓸 것인지 고민 되었다.
그런데 이 장애우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애우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자신의 친구라는 의미로 운동론 관점에서 붙인 말이었다. 즉, 이 말은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하여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장애우다.”라고 쓰기에는 어색했다. 지극히 타자적이고 장애 없는 사람의 시선이 강하게 배어있는 말이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손자가 할머니 장애인에게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어느 날 방송을 마치고 나오니 작가님이 비정상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잠깐 주신 적이 있다. 아차! 싶었다. 그 말을 썼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정상인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올라 무심코 비정상인이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무심코 쓰는 단어에 상처를 받을 분이 있을 법도 했다. 평소에 장애인이라는 말도 잘 안 쓰는데, 여기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무엇이라고 지칭하는지, 입에 쉽게 달라붙는 말이 떠오르지 않기 일쑤다. 흔히 쓰듯이 정상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상의 기준이 장애가 있고, 없음이라는 잣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새삼 각인! 하게 되는 경우였다.
눈이 안 보이는 시각 장애인의 경우, 보통 대개 눈이 멀어 안 보인다는 표현을 쓴다. 어느 날 작가님이 주의(?)를 주셨다. 이때 ‘눈이 멀다’라는 표현을 시각 장애인들이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처음 알았다. 또한 ‘맹인’이라는 단어도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눈뿐만 아니라 귀가 안 들리는 경우에도 귀가 멀었다가 아니라 귀가 안 들리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낫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가 있다. 눈이 잘 보이고 안보이고의 차이, 귀가 잘 들리고 안 들리고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단어뿐만 아니라 새삼 새기는 사실이 생겼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장애인들이 모두 착하게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장애인들이 안 좋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렇게 착하게만 나오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왜곡을 낳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장애인도 사람인지라 화가 날 때 화를 내고 짜증을 나면 짜증도 낸다. 정말 성격이 표독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대중문화 작품에서는 항상 천사표 같이 웃는 얼굴만 그리니 현실의 장애인 모습을 보고 부정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해 못할 법도 아니다장애인은 항상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기에 착하고 선하게만 그려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장애인을 감동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이 역경을 극복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역경을 항상 극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에게는 늘 상 장애가 있기 때문에 불편한 줄 모르고 살고, 그것 자체에 이미 극복의 여지가 없다. 이 역시 장애인이 항상 연민과 시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심리에서 비롯하는 점이다.
상품화도 영원한 문제다, 최근 방송 내용이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에서 문화 소식으로 바뀌었다. 잔뜩 작품을 선별하고 있는 참에 갑작스런 변경이었다. 사실 장애인 관련 문화 소식은 별로 없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또한 소식 전하기는 평론가에게 치명적이다. 자신의 관점을 말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다만, 변경 이유가 타당했다. 10여분 동안 영화 이야기만 하다 보면 그 작품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개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어쨌든 연말이라 장애인을 위한 공연 소식이 많기에 아직은 다룰 내용이 있다, 이 시점이 지나면 어떻게 될 지 고민스럽다.
요컨대, 장애인은 언제나 있는데,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연말연시다. <말아톤> 성공 이후에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장애인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호평을 받은 작품은 적다. 공익적이라는 <사랑의 리퀘스트>같은 프로그램은 여전히 질병, 장애나 고통을 감동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애인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데 반해 현실의 장애인에게서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도 역시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러한 편견을 나 또한 무심코 방송 속에서 퍼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김헌식_문화평론가, 시사만화가, 現 P.E.C.I 연구소 부소장.
KBS 뉴스와이드와 내일은 푸른 하늘, CBS 뉴스야 놀자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여러 인터넷 뉴스에 문화칼럼을 연재하는 등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KBS 「아름다운 통일」에서 만평을 맡고 있으며, 오마이뉴스에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공공심리 현상, 문화의 사회 심리 분석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제5회 호암청년논문상을 비롯하여 여성, 통일, 정보사회, 보훈, 환경 관련 논문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선사들의 공부법』 『촌놈 서동 출세기 연구』『위인전이 숨기는 이순신 이야기』『촛불@광장 사회의 메커니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