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타 료, 너도 함께 가자!-일본의 통합교육 사례

오리타 료(折田凉)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다. 눈알과 눈꺼풀의 움직임으로만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힘든 상황인데도 공립 고등학교에 다닌다. 학교 친구들은 소풍이든 수학여행이든 오리타 군과 함께 했고, 체육대회 릴레이 경기 때는 오리타가 누워 있는 침대를 밀며 함께 달렸다고 했다.


극적인 투병 의지와 헌신적으로 그를 돕는 친구들, 감동 스토리를 예상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기대는 교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외로운 섬처럼 놓여 있는


우리가 이케다북고(立池田北高)의 3학년 1반 교실을 방문했을 때, 오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그 교실의 한 구석에 오리타 료는 외로운 섬처럼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의 존재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리타의 인공호흡기에서 나는 ‘꾸륵꾸륵’ 소리가 그들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실의 액자처럼, 청소도구함의 빗자루처럼, 분명히 거기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그런 존재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은 뒤 대부분의 학생들이 놀러 나가고 텅 빈 교실에 오리타 혼자 있다


“료, 오늘은 점심을 양호실에서 먹어야겠네.”

간호사가 상냥하게 속삭이며 오리타의 침상을 양호실로 밀고 갔다. 오리타 한 명을 위해 배정된 간호사로 예산은 학교가 아니라 교육위원회가 부담한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리타는 대개 교실에서 점심을 먹지만 배설물 처리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경우엔 양호실에서 점심까지 먹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오리타의 식사 준비는 간단했다. 유동식을 매달아 튜브에 연결하는 것이 전부였다. 누워서만 지낸 탓일까, 팔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가늘고 뒤통수가 납작해지면서 얼굴이 펑퍼짐하게 퍼졌다. 우리를 만나 반가워 한다고 간호사가 통역(?)을 해주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그가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오리타의 점심식사. 배변 처리를 위해 양호실에서 온 김에 식사까지 마치고 교실로 돌아갔다


감동 스토리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 정도로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은 오리타와 함께 공부한다는 것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통합 교육’의 양 주체가 현실적으로 그 속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전담 간호사가 기록하는 오리타의 의무일지


수업참관과 오리타의 하교길 동행, 집에 가서 그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며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몇 가지 의문에 대해서는 잠정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료의 학급 친구에게서 나왔다.




첫 번째 답 : 시스템으로 움직이다


오리타가 양호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교실로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학년 때부터 료와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는 고바야시 마사야는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가방을 들어 준다든지, 화장실에 함께 간다든지, 필기를 대신해준다든지 (물론 오리타는 그런 배려를 받을 수도 없을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다) 하는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통합교육의 결과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고바야시가 말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은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오리타는 혼자였다. 하교할 때도 오리타는 혼자였다. 헤어질 때 오리타에게 “안녕, 내일 봐”하고 인사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비인간적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지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심함을 두고 통합교육의 실패 또는 무의미를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리타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가 지금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깜짝 놀란 그 시점에서는 고바야시의 생활 반경에 오리타 료와 같은 중증 장애인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교실에서 매일 그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수업시간. 보조교사가 따로 옆에 앉아서 필기 등을 도와준다. 보조교사는 일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맡는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는 다른 배경도 담겨 있다. 팔이 떨려서 수저로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오리타 료와 비교한다면 한참이나 경증이지만, 만약 학급 친구들의 선의에만 그를 맡겨 둔다면 친구들은 그에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 헌신적인 한 친구가 점심시간마다 붙어 앉아서 밥을 떠먹이거나 학급에서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그 일을 맡아야 한다. 그 속에서 비장애 학생들은 무엇을 느낄까. ‘내가 이 정도의 도움만 줘도 충분히 장애인 친구와 함께 생활할 수 있구나’ 하는 감동과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부담으로 변질되기 쉽다. 장애 학생 입장에서도 누군가의 선의에 항상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없어도 ‘가방 못 드는 아이’가 아무 문제 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가 통합교육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


아무도 오리타 료에게 신경 쓰지 않는 일이 가능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통합교육 토대는 우리보다 한결 튼튼한 것 같았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전담 간호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누워만 있는 오리타를 대신해 보조교사가 노트필기 등을 도와준다. 오리타는 교사가 필기한 내용을 침대에 연결된 모니터로 보게 된다. 등하교는 활동보조인의 몫이다. 개호인 두 사람이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타며 오리타를 집에서 학교까지 데려갔다가 데려온다. 개호인은 하교한 뒤 저녁식사 때까지 그의 집에서 목욕 등을 돕는다. 가족의 손이 필요한 것은 밤 시간뿐이다



 보조교사가 필기한 내용이 모니터를 통해 보여진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중증장애인 오리타 료와 그의 친구들이 엮어내는 감동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오리타와 한 반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고바야시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아,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었다. 과민반응도 과잉친절도 없다. 학부모 역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두 번째 답 :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다


수업을 끝낸 오리타의 하교길을 따라갔다. 마침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두 명의 활동보조인이 비옷을 입고 오리타의 침대를 교실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밀고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오리타가 먼저 탈 수 있게 기다렸고, 운전기사는 오리타가 버스에 오를 때 운전석에서 내려와 활동보조인을 거들었다. 한 두 번 해온 일이 아닌지라 호흡이 척척 맞았다. 같은 광경을 전철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접이식 경사로를 들고 기다리던 역무원은 전철이 멈추자 재빨리 간이 경사로를 설치했다. 오리타의 하교 시간에 맞춰 준비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하교길. 버스 기사가 개호인과 함께 오리타의 승차를 도와준다



 오리타의 하교 시간에 맞춰 역무원이 접이식 경사로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전철에서 내려 오리타의 집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제법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활동보조인이 오리타를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어떨까? 내가 오리타의 부모라면 침대에 누워만 있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을까? 등하교에 한 시간씩 걸리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머니 오리타 미도리(折田 みどり) 씨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중증 장애학생도 다른 학생들과 똑 같은 조건에서 등교하고 공부하고 소풍을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현실 속에서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오리타가 학교에 가 있을 동안 다른 어머니들처럼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본다고 했다.


미도리 씨는 바꾸바꾸(バクバク)’라는 모임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활동가다. 인공호흡기를 낀 아이의 부모회의 명칭인 바꾸바꾸는 인공호흡기에서 나는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모임의 출발점은 오사카의 한 병원에 입원한 일곱 아이의 가족 모임으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활하는 아이들의 산책이나 외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언론에 보도됐다. 가능한 병원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소박한 모임이 신문기사화 되면서 전국적인 모임으로 확산됐고 지금은 회원 가정의 수가 약 300개라고 한다.


미도리 씨는 “료는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다는 점 이외엔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학교에 다니고, 소풍을 가는 여느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오리타가 못하는 상황일 때 미도리 씨는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싸웠다. ‘바꾸바꾸’ 모임이 그런 활동의 핵심 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리타 료 군의 부모가 학교에서 보살피는 것을 없애기 위한 모임’이 인상적이었다. 이름 그대로,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시스템을 확립해 오리타의 학교 생활을 가능하게 하려는 모임이었다.



 어머니 미도리 씨가 오리타의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미도리 씨는 얘기하는 내내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리타는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냈다. 인공호흡기를 단 오리타를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이 키우리라 결심한 부모는 퇴원한 오리타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린이집에 3년을 보내는 동안 미도리 씨는 어린이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오리타가 어린이집을 나오기 6개월 쯤 전에야 자주 가지 않아도 되게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오리타 료 군의 부모가...’라는 모임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 결성됐다. 초등학교 때는 어린이집 시절의 일이 다시 되풀이됐다. 부모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오리타가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싸움이 계속됐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지역축제 때 가게를 내서 홍보하고, 학습회를 만들고, 문턱이 닳도록 교육위원회를 드나들었다. 처음엔 오리타의 부모 두 사람만 뛰어 다녔지만 차츰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오리타 료 군의 부모가...’ 모임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케다 시에서는 ‘중증장애아 개호인 학교파견사업’이 시작됐다. 오리타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의 일이다.


미도리 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쉬는 날에 밤을 새며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아주 편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개호인이 학교에 파견돼 중증장애아를 돌보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자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건 오리타라고 한다. 미도리 씨는 “그전까지는 엄마 없이는 학교에 갈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랬는지 선생님이 인사해도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혼자 등교한 때부터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하루 사이에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 못알아 볼 뻔 했다”고 농담을 했다.


미도리 씨의 성격이 워낙 쾌활해서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의 표현대로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지만 그것 이외엔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름 없는” 오리타도 침대에 누운 채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중간 중간 참견을 하기도 했다. DVD 감상이 취미라면서 “대장금과 웰컴 투 동막골을 재밌게 봤다”고 답했다. 미도리 씨에 대해서는 “옷이 너무 튄다. 검은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데...” 하고 사춘기 소년의 묘한 질투심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오리타는 한국에서 찾아간 우리를 만나 기쁘다며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오른쪽 세 번째가 어머니 미도리 씨이고, 그의 왼쪽 옆 두 사람이 개호인이다


오리타와 같은 중증 장애학생도 부모의 개입 없이 학교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미도리 씨의 신념이 어린이집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오리타는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가능할까? 미도리 씨는 “지금까지도 길을 열고 방법을 만들어 왔으니까 아마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전미영 사무국장, 사진/ 백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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