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다는 것
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오랜 군생활로 무뚝뚝함이 몸에 배었던 우리 아버지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외동딸이 여대생이 된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한 채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평소 돌부처마냥 말이 없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셨습니다. 그 날도 아버지는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으며 방바닥에 턱 앉으시더니, 두 눈에 힘들 주고 저를 노려보는 듯하면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도대체 철학이 뭐냐?"
아마 제가 천석고황의 깊은 병 같은 멋이 들어 철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버지가 가졌던 의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건성으로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쑥스럽게스리… 그걸 모르니까 철학과에 갔지… 뭐,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날 물론 아버지는 늘 그러셨던 것처럼 어머니가 붙잡아 끌 때까지 텅 빈 거실에 고개를 푹 꺾고 앉아 한참을 조는 듯, 생각하는 듯 앉아 계셨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때 아버지하고 '도대체 철학이 뭐냐' 하고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평생 일상적인 말만 주고받았지 그런 속 깊은 대화를 못해본 것이니까요. 마치 가족들과는 기초반만 뗀 회화실력으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꿈을 키웠습니다. 내 아이를 낳으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심각한 주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자, 하고요. 그런 오랜 꿈을 꾸었더랬습니다.
임신 우울증과 함께 아이를 가졌고, 길고 심했던 입덧이 끝나면서 잘 생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보채지도 않고 아픈 데도 없고 잘 자고 잘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아이는 날 편하게 해주려고 태어난 거 같아."
아이를 안아줄 때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느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분명히 제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시선이 너무 깊어서 오히려 제 눈 너머를 관통해서 더 까마득히 먼 곳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친구들에게 또 이렇게 자랑했지요.
"철학자의 눈을 갖고 태어났어. 이렇게 철학적인 아기 눈을 본 적 있니?"
저는 이 아이하고 일찌감치부터 삶이 무엇인지,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시간이 무엇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주제들에 관해 깊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인류 최초의 모자지간이 되리라 하는 기대를 키웠습니다.
열 달쯤 지난 뒤 저는 친구들에게 이런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내면이 깊은지, 옹알이도 안하고, 항상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 벌써부터 자아만을 탐색하고 있는 것 같아. 호호호…"
24개월이 되어서 자폐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자아가 너무 커서 늦게 깨어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자폐였고, 그 예쁜 입술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몇 마디만 트이면 말문이 저절로 열릴 것만 같아 애태우던 시간이 많이 지나고, 아이는 여섯 살이 되어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 제가 대답하지 않았던 것처럼, 제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아이를 위해 아주 많은 말을 준비하고 기다렸는데도요. 물론 우리 아버지도 술기운을 빌어 크게 한마디 해볼 수 있을 때까지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말을 저에게 걸어 오셨겠습니까. 아이가 일곱 살이 지날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인생을 안주 삼아 아버지와 술 대작 할 기회를 영영 잃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아이가 베란다에 그냥 놓아둔 죽은 화분을 가리켰습니다.
"이거 죽었어요."
"저런. 엄마가 게을러서 죽였네…"
제가 혀를 차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잠시 멍했습니다. 우선은 눈물을 감추려고 두 눈을 꿈벅이며 아이를 안아주었지만,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기도 하고, 아이가 기억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아이의 생각이 이쁘기도 하고, 제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저와 대화하지 않아도 자기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이미 삶을 생각하는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비록 내가 살고 있고 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좀 다른 구조를 갖고 있긴 해도 말이지요. 저는 그걸 모르고 내가 갖고 있는 언어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지레 짐작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편한 식대로 만들어 놓은 이 맞춤세계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삽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 맞춤세계의 구조와 다른 생각, 다른 느낌, 다른 감각,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아주 아기일 때부터 억지로 맞춰져야 했을 테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이제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 맞추어야 한다고 아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학습'을 시키고 '치료를 합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폭력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너 자신은 어색해서 얼마나 힘들겠냐고 위로하면서, 그냥 푸른 채로 살라고 고개 끄덕여 주면서, 자리 좀 내주고 여럿이 물도 좀 나눠주고, 짐승들 발길에 채이지 않게 서로 가시 세워 도와주면서 그렇게 사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이 어색해서 얼마나 힘들지, 그 고통에 우리 모두는 과연 얼마나 겸손한지, 자꾸만 되묻게 됩니다. 익숙한 내 세계에 대고.
김종옥_
주의산만한 천성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살다가 뒤늦게 글쓰는 작업을 하고 있는 40대 아줌마. '공자,지하철을 타다(공저)' , '논리 줄게 논술 다오' 같은 책을 펴냈습니다.
(파라다이스 재단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