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마술사, 조성진 씨





5월의 시작. 반짝이는 햇살 조각들이 공원의 나뭇잎 사이로 떨어질 때, 조성진 씨를 만나러 여의도 약속장소로 향했다. 10분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 장소 앞에 와 있다고. 그가 들어오는 걸 보고 악수를 하려고 나도 모르게 오른 손을 내밀었다.  그가 오른손이 불편한 것을 아는데도 말이다.


‘한 손의 마술사’ 조성진. 그의 이름 앞에 늘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조 씨가 처음 마술에 빠지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명절 연휴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외국 마술사들의 공연 장면을 보다 호기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외국 마술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마술사가 그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마술이라는 오묘한 세계가 빠져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려고 했지만 공부보다는 마술이 더 좋아 곧바로 한국의 마술사 1세대인 이흥선 씨가 운영하는 알렉산더매직패밀리의 문을 두드렸다. 문하생으로 들어가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그는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2003년 2월. 선배 마술사의 공연을 돕는 와중에 화약으로 된 마술 소품이 터지면서 오른쪽 손가락 4개와 엄지손가락이 뭉개졌다. 4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조 씨는 절망에 빠졌다. 퇴원을 했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방황을 시작했다.


하루에 담배2갑,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몸은 90kg까지 불어났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입은 중도 장애인은 한동안 현실을 회피하게 된다고 한다. 조씨도 그랬다.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힘든 과정을 겪고 비로소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조씨는 그때부터 남들보다 더 강하게 자신을 담금질 하기 시작했다. 헬스를 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녀서 몸이 불균형 했는데 헬스를 하면서 몸이 균형을 되찾게 되었다. 지금 그의 몸무게는 75kg, 180cm의 훤칠한 키에 알맞은 멋진 모습을 갖고 있다.


그는 2006년 부산국제매직패스티벌(BIMF)을 계기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매년 열리는 이 대회에서 조성진 씨는 일본 선수에게 아쉽게 0.001점 차로 3위를 놓쳤는데 ‘한 손’으로 마술을 하는 마술사가 있다는 소식이 부산일보 1면에 머릿기사로 나온 것이다. 그때부터 그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의형제를 맺고 있는 한 손이 없는 파이터 최재식 씨의 소개로 SBS <놀라운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그는 한 손으로 ‘클로즈업 매직’(관객과 밀접하게 대화하면서 보여주는 마술)을 선보이면서 스타 마술사로 떠올랐다.


방송에 나오면서 그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주위에 생겼고 불러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에도 나오고 해서 우쭐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 그리고 다른 장애인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마술은 마법과 다르다고 한다. 마술은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트릭이지만 마법은 신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술사는 마법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 씨는 지난 해 알렉산더매직패밀리에서 독립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집은 잠만 자는 곳이고 하루 종일 거의 밖에서 생활해요.” 그는 요즘 마술 연습을 할 수 있는 연습실을 구하러 다닌다. 독립을 했기에 이제 체계적인 준비로 자신을 키우려고 한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무작정 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그 길 속을 향해 걸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무엇인가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하는 것이 제 성격이라 힘들어도 가는 것 같아요.”


20대 청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있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


“솔직히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서 마술에 빠졌는데, 요즘은 그때 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마술의 소재가 되고 소품들도 직접 만들고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더 머리가 많이 아프죠.”


그는 ‘한 손의 마술사’라는 타이틀이 고맙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기억해주고 알아주는 것에 오히려 감사를 느낀다.


앞으로 그는 ‘절망과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마술을 통해, 예전의 자신처럼 삶을 비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 포기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이 길을 포기하면 길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죠. 나를 도와주고 나를 믿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제는 결코 포기할 수도 없고 쓰러질 수도 없죠.” 조 씨는 운이 좋다고 스스로 말한다. 마술이라는 ‘재능’을 가졌고 오른 손이 아니지만 ‘왼손’이 있기에 그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그의 명함 뒤에는 ‘ 불가능이란 스스로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만큼 그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믿는, 조성진 씨가 꿈꾸는 미래가 마술처럼 다가오며 내 마음 속에도 불을 밝혀주는 것 같다.


“내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는 마술사 조성진 씨. 다음엔 어떤 멋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벌써부터 즐거운 기대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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