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아닌 ‘평범한 역장’이 되고 싶다.

 




가산디지털단지역장

 김 행 균


2003년 7월 어느 날, 사람들로 북적이던 영등포역에 열차사고가 났다. 철로에 있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역무원의 다리가 전철에 깔린 것이다. 결국 그 역무원은 왼쪽다리와 오른쪽 발등을 절단하였고 사람들은 그를 ‘아름다운 철도원’ 또는 ‘의인’이라고 불렀다.그로부터 4년 후, 그 의인은 가산디지털단지 역의 역장이 되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행균 씨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행균 역장은 열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고 두 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때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천직은 ‘역무원’



사고 후 김 역장이 입원한 병원에서는 으스러진 그의 다리를 접합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했으나 결국 절단해야 했다. 7번의 대수술과 1년의 재활치료.


이로 인해 1979년부터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직장을 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서야 할 자리는 역사(驛舍)라 믿었다. 비록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움직이는데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퇴원하고 난 후 복직신청을 했다. 그러나 걱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는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복직이 될지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재활치료에 제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그의 노력 덕분에 사고를 당한지 1년 만에 의족을 하고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불편한 몸으로 현장근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열차를 통제하는 관제사로 복직시켰다.


 


현장근무를 원했던 그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의족을 하고도 충분히 현장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다.제 28회 아테네올림픽대회 성화 봉송, 5km마라톤 완주, 2006년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 산행과 같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택에 2006년 6월, 인천 부개역의 역무과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올해 6월에 가산디지털단지 역장으로 승진하였다.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노력


김 역장의 말에 의하면 가산디지털단지역 주변에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이 많이 때문에 다른 역들보다 장애인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때문에 첫 출근 날 장애인 편의시설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꼼꼼히 체크했다.


“현재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죠. 특히 장애인들이 전철 탑승 장소로 가는 것이 상당히 불편한 데 이것부터 바꿀 계획입니다.”


현재 역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4대와 휠체어 리프트 2대 시각장애인용 음성보조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표를 내고 전철탑승 장소까지 갈 때는 낡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따라서 현재 목표는 전철 탑승 장소까지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장애인 편의시설에 신경 쓰는 이유는 자신이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예전부터 장애인 편의시설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은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잘 알기 때문에 행동이 빨라진 것뿐이다.


인터뷰를 하던 날, 역사 밖 엘리베이터 문 앞바닥이 부서져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김 역장은 어제 저녁에 보수신청을 했는데 오늘 오전에 공사를 하는 것이라며 이처럼 역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장애인들은 좀 더 편리하게 전철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2003년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 대처럼 행동할 거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라는 말 한마디로 딱 자른다. 역무원은 전철 이용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자신의 천직은 역무원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아름다운 철도원’이 아닌 ‘평범한 역장’으로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인터뷰 도중에도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보면 먼저 달려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시설공사에 열중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음료수를 돌리던 김행균 역장. 그런 그의 모습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장애인과 일터 200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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