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유리온실서 토마토 키우며 자립의 꿈 가꿔요”
[치유산업] “유리온실서 토마토 키우며 자립의 꿈 가꿔요”
[치유산업, 사람과 지역을 살리다] (1) 원예치유-경기 여주 푸르메소셜팜
장애인 일자리·농업 최초 연결
청년 55명 정규직원으로 채용
주민·노인도 고용 공동체 활기
카페 ‘무이숲’엔 연 17만명 발길
2026-10-01 성지은 기자
대한민국의 지방소멸 시계가 갈수록 빨라진다. 수백조원을 쏟고도 수도권 일극 체제는 굳어졌고, 지방에는 빈집과 버려진 땅이 늘어간다. 한편 지방소멸이 가속화하는 동안 국민이 앓는 마음의 병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다.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는 2020년 83만명에서 2025년 113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비어가는 지방과 지친 사람들, 이 둘을 잇는 자리에 치유산업이 있다. 숲을 걷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흙을 만지며 마음을 되살린다.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농산어촌의 자원을 건강과 돌봄, 나아가 일자리와 자립으로 연결한다. 자연을 소비하고 떠나는 관광과는 결이 다르다. 국내에서도 농업과 산림, 해양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나 아직은 걸음마단계다.
본지는 지역을 살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로 치유산업에 주목한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농장과 숲, 바다가 돌봄과 재활의 공간이자 일터가 된다. 국내외 현장을 나란히 살피며 활성화방안을 모색해본다.

경기 여주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이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경기 여주시 오학동의 한 유리온실. 천장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정보통신기술(ICT)이 조절하는 이 첨단 온실에서 방울토마토가 사람 키를 훌쩍 넘겨 자란다. 직원들은 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리며 웃자란 줄기를 줄에 매어 세우고, 곁가지를 자르고, 빨갛게 익은 것부터 골라 딴다. 여느 스마트팜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일하는 사람에 있다. 푸르메소셜팜에서는 발달장애 청년 55명이 정규직으로 일한다. 발달장애인 일자리와 농업을 연결한 국내 최초 스마트팜이다.
◆왜 스마트팜이었나=발달장애인에게 일터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5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가운데 취업자는 29.8%에 그쳤다. 전체 국민 고용률 62.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일자리는 단순 공정을 되풀이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장애인 재활과 자립을 지원해온 푸르메재단이 일자리 모델로 농업을 떠올린 건 이 지점에서다. 정태영 푸르메재단 사무총장은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체험을 하며 자존감이 자란다”고 했다. 농사 형태로는 스마트팜을 택했다. 뙤약볕과 비바람에 노출되는 노지와 달리 온실은 계절과 날씨를 덜 타 쾌적하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다.
뜻이 모여 농장이 됐다. 발달장애 청년의 부모인 이상훈·장춘순 부부가 농장 부지를 기부했다. 인근에 사업장을 둔 SK하이닉스가 50억원을 기부하고 생산품 구매 협약에 나섰다. 그렇게 총 150억원을 들여 1만3223㎡(4000평) 부지에 스마트팜 유리온실과 가공시설, 교육문화센터,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이 차례로 들어섰다.
◆작물 키우며 성장하는 사람들=업무는 각자의 특성에 맞춰 배정한다. 온실 업무는 꽃가루를 옮기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벌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고 리프트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가공 업무는 선별부터 세척·소분·포장까지 포함해 손의 감각과 시각적 판단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카페에서 일한다. 직원들은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눠 하루 4시간씩 근무한다.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4대 보험 혜택도 받는다.

포장한 방울토마토를 든 조영수 푸르메소셜팜 대표(오른쪽)와 직원 윤아름씨. 여주=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조영수 푸르메소셜팜 대표는 직원들이 일하며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고 했다.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수확하는 사이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치유의 효과가 일자리 안에 있는 것 같다”면서 “다들 여기 와서 밝아지는데, 햇볕을 받으며 일하는 것도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의 농작업 기술도 3∼4년새 눈에 띄게 늘었다. 올해부터는 딸기 시범재배도 시작했다.
5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이수연씨(33)는 토마토를 재배·수확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이씨는 “일이 쉽지 않지만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끼는 회사라 많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같은 5년차 윤아름씨(28)는 포장·분류를 담당한다. 윤씨는 “월급을 받으면 맛있는 걸 사 먹고 여행도 간다”며 “계속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만족해했다.
◆사람을 지역에 붙들다=2021년 처음 방울토마토를 수확할 때 11명이던 장애인 직원은 올해 55명으로 늘었다. 농산물 매출은 2022년 15억원에서 지난해 33억원으로 두배가 넘었다. 유리온실 3개동에서 연간 80t의 토마토를 생산한다. 컵토마토는 SK하이닉스로, 소포장 토마토는 GS리테일 전국 매장에 납품한다. 이밖에 체험학습을 제공하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올린다. 경관이 빼어난 카페에는 연간 17만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일자리로 지역에 사람을 붙들기도 한다. 여주시 인구는 11만명대에 머물러 있고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청년이 빠져나가는 도시에서 푸르메소셜팜과 무이숲이 만든 일자리는 100여개에 이른다. 장애인 직원 55명 외에 비장애인 직원 18명과 장애인 직원의 업무를 돕는 근로지원인 12명이 일한다.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어르신 14명도 함께한다. 이곳에 취업하려고 울산 등지에서 가족과 함께 여주로 이주한 장애인 직원도 있다.
조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농작물을 재배한다면 효율성이나 수익 측면에서는 나을 수 있지만, 결국 일하고 떠날 사람들 아니냐”며 “(푸르메소셜팜은) 장애인 고용으로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주 주민까지 고용해 지역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확산을 기다리며=전국에서 견학이 줄을 잇는다. 경기 안산, 충남 당진 등지에서 비슷한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찾아왔다. 하지만 확산이 어렵다. 먼저 일자리를 일년 내내 유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조 대표는 “휴지기가 있는 농업 특성상 열두달 정규직을 유지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시작단계에서는 법인 설립이란 문턱이 기다린다. 농지를 소유하려면 농민이거나 농업법인이어야 한다. 농업법인의 경우 농업인 출자 비율을 총자본금의 10% 이상으로 올려놔야 하는데, 이 과정을 넘기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 대표는 “농업계와 접점이 없는 복지재단이다보니 농업법인을 구성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라면서 “취약계층 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일자리형 농장에는 농업인 지분 요건에 예외를 둬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그는 ‘형제팜(farm)’의 탄생을 바란다. 서로의 농산물을 같이 유통·가공하며 협력하는 농장이다. 조 대표는 “같은 고민을 하는 취약계층 농장이 여럿 생기면 좋겠다”며 “이런 사회적 가치가 있는 모델에 농업계가 주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직원 가정에도 긍정적 변화
푸르메소셜팜·무이숲 연구
푸르메소셜팜 전경
농장에서 나온 일자리가 장애인 직원과 가족의 삶을 함께 바꿨다.
한양대학교 임팩트리서치랩이 지난해 수행한 ‘푸르메소셜팜·무이숲 임팩트 연구’ 2차 조사에 따르면, 이곳 장애인 직원의 일자리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3점이었다.
항목별로는 복리후생이 4.5점으로 가장 높았고, 근로환경과 장애 이해·수용이 각각 4.4점으로 뒤를 이었다. 소득과 취업 안정성은 각각 4.1점을 기록했다.
일터 밖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가족들은 직원이 입사한 뒤 심리·정서적 건강이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5점 만점에 4.5점이다.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대인관계 형성·유지, 신체 건강 개선도 각각 4.4점으로 높았다.
가정의 공기도 달라졌다. ‘가족간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항목은 5점 만점에 4.6점이었다. ‘보호자 자신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정서적 여유와 안도감이 생겼다’는 문항도 각각 4.3점이었다. ‘경제적 부담이 줄거나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문항에서는 4.1점에 그쳤다. 소득보다 관계와 정서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온 셈이다.
설문은 발달장애 직원 52명, 가족 21명과 근로지원인을 포함한 주변인 1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