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장애인·非장애인 소통 ‘리빙랩’… 서로 처지 이해하는 기회로
장애인·非장애인 소통 ‘리빙랩’… 서로 처지 이해하는 기회로
문화일보, 2026-04-28
- 예비 의사들과 복지관 장애인들의 소통

최미영(왼쪽)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과 복지관 카페에서 일하는 박혜민아 씨. 푸르메재단 제공
“한 번도 장애인들과 지내본 적이 없는데 혹시 상처를 주면 어쩌지?” 서울대 의대 학생인 노연우 씨의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처음 만나는 파트너 박혜민아 씨 역시 부담스럽고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푸르메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친구 맺기로 만났습니다. 혜민아 씨가 근무하고 있는 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만들고, 매주 가족과 취미를 이야기하며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는 혜민아 씨의 버킷리스트인 홍대 앞을 함께 걸으며 예쁜 반바지도 사고, 사진을 찍으며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친구가 됐습니다. 마지막 소감을 나눌 때 연우 씨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고 눈물을 보이자 혜민아 씨는 말없이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특별한 관계가 됐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2023년부터 진행한 ‘사회와 의료현장에서의 리빙랩’ 수업을 통해 만났습니다. 이 수업은 의과대학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과 1대 1로 만나 삶을 함께 경험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공감과 소통 능력을 기르고, 예비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감과 시민성을 배우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그동안 병원은 아주 먼 곳이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도 무섭고 의사의 설명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의료진을 보면서 장애인과 가족들은 점점 더 병원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의료 현장에서의 차가운 시선은 그들에게 장애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수업은 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안 하는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할지 몰랐고, 계속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여학생은 장애인으로부터 1대 1 친구 맺기를 거절당하자 “자신이 거부당한 것은 처음”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장애인을 만나 소통하고 교감 능력을 키우면서 경쟁사회에 갇혀 있던 스스로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만남이 이어지고 해가 거듭되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함께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친구가 됐습니다. 장애인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만남이 이어지면서 나와 다른 취향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갖지 못한 강점과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돕는 태도 대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게 됐습니다.
장애인도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단순한 수업의 대상자가 아니라, 예비 의사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가르치는 주체로 변했습니다. 한 장애인 바리스타는 “내가 의대 학생에게 커피 내리는 법을 가르치며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리빙랩 수업은 4년 차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지원자도 늘고 푸르메재단의 다른 산하시설인 과천시장애인복지관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복지관은 더 이상 학생들이 잠시 다녀가는 실습 장소가 아니라, 의료가 놓치기 쉬운 삶의 현장을 배우는 또 하나의 교실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곳을 통해 장애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친절한 의료인으로 성장하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예비 의사와의 만남을 통해 의료와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고,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표현하는 소중한 경험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시작된 이러한 작은 만남과 변화들이 의료 현장을 더욱 따뜻하고 사람중심적으로 바꾸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미영(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munhwa.com/article/11585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