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장애어린이와 함께한 20년,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대표

[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장애어린이와 함께한 20년,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대표

국내 최초 장애어린이 재활병원, 발달장애 청소년 농장 등 세워
“어려운 사람들 위한 공익적 앵벌이,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면…”

 
2025.11.19 [월간중앙 12월호]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의 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백 대표 뒤에 있는 그림은 청각장애 화가 손영선씨의 ‘꿈피리- 춤추는 행복’이다. 김상선 사진팀장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의 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백 대표 뒤에 있는 그림은 청각장애 화가 손영선씨의 ‘꿈피리- 춤추는 행복’이다. 김상선 사진팀장
 
“사고로 절단됐던 제 다리는 아이들의 말처럼 다시 살아났습니다. 저는 제 다리가 푸르메재단을 통해 장애어린이가 치료받는 재활병원과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하는 농장으로 재생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5월 이화여대 창립 138주년 기념식에서 황혜경씨가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이다. 황씨는 1998년 언론사 기자였던 남편 백경학씨가 독일 연수를 마치고 귀국 한 달 전 떠났던 영국 가족여행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100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세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현지 병원의 정성스러운 치료 덕분에 생명을 건진 그는 영국 보험사와 8년간 소송하며 받은 피해보상금의 절반인 11억원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마중물로 내놓았다.
 
아내의 교통사고 보험금이 종잣돈
 
남편 백씨도 힘을 보탰다. 2002년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재활병원 설립에 남은 시간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내의 재활치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한 경험이 가슴 아팠다. 수개월을 기다려야 겨우 입원할 만큼 국내의 재활의료 시스템이 열악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직접 겪은 이들 부부는 한국에 제대로 된 재활병원을 세우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2005년 푸르메재단이 출범했다. 백씨는 사회 곳곳을 뛰어다니며 동참을 호소했다. 작은 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뤘다. 2012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어린이·성인장애인을 위한 재활기관 ‘푸르메센터’가 문을 열었다. 백씨 부부가 꿈꿔온 국내 첫 어린이재활병원도 2016년 서울 상암동에 들어섰고,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자립을 도모하는 ‘스마트 팜’도 2021년 경기도 여주에 건립됐다.
 
그 푸르메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떠오른다. 푸르메재단은 지난 10월 2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20주년 기념식을 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기부자, 봉사자, 기업 관계자 등 각계 인사 270여 명이 참석했다.
 
푸르메재단은 희망이란 작은 씨앗을 꾸준히 심어왔다. 장애와 비장애의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 푸르메재단 백경학(62) 상임대표를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만났다. 그가 마침 내년도 사업계획 회의를 마치고 온 직후였다.
 
-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재활병원이다.
“하루 500명 정도 찾아온다. 미국·동남아 등에서도 온다. 외국보다 치료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병원도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아 왔다. 지금까지 총 63만여 명의 장애어린이들이 맞춤형 치료를 받았다.”
 
- 어린이 장애에 주목한 계기라면?
"장애인 재활치료 시설을 준비하던 중 성인보다 어린이 장애인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현실과 마주쳤다. 재활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29만 명 중 실제로 치료받는 어린이는 1만9000여 명으로, 전체의 6.7%에 불과했다. 그것도 길게는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도 자립하기가 힘들어진다.”
 
- 재단 창립 20주년, 감회가 각별하겠다.
“40대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저도 60대 중반에 들어섰다. 우리 속담에 ‘도깨비가 무식하면 부적도 소용없다’가 있다. 무식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아마 앞날을 알았더라면 지금까지 오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니까 용감했던 것 같다. 물론 저 혼자 용감했던 게 아니다. ‘불가능한 일을 왜 하느냐’고 말린 분도 있었지만 ‘그래 한번 해봐라. 꼭 필요한 일이다’며 격려해 주신 분들 덕분이다. 여태껏 후원해 주신 분들이 5만여 명이다. 5만 명이면 대한민국 인구 천 명 중의 한 명이다. 가족, 친구까지 합하면 얼추 50만 명이다. 개미군단의 힘이 모여서 오늘의 푸르메재단을 일궜다.”
 
국내 최초의 장애어린이재활병원인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외경. [사진 푸르메재단]
국내 최초의 장애어린이재활병원인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외경. [사진 푸르메재단]

- ‘기적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기자 생활을 할 때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대략 반반 정도였다. 그런데 재단 일을 하면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내 것을 나누고, 자기의 시간과 열정을 바쳤다. 제가 늘 조심하고 겸손해야하는 이유다. 기적이 기적을 낳아왔지만, 박수와 칭찬은 사람을 변질시킨다. 낭떠러지에 추락할 것만 같은 때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 내년 계획은 세웠나, 주요 사업이라면?
“상암동 병원이 10주년을 맞는다. 정체성과 차별성을 잡아가는 게 숙제다. 주변에 가난한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 형편이 어려운 중증장애아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일반 사회의 동참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 앞으로의 20년도 준비해야 한다.
“재단이 20살 청년이 됐다. 40살 중년도 머지않았다. 장기 비전을 세울 때다. 예컨대 재단 출범 당시만 해도 지체장애와 발달장애의 비율의 7대 3 정도였는데,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다. 발달장애 비중이 훨씬 더 높다. 의료기술·장비가 좋아지면서 지체장애는 줄고 있지만 급변하는 사회 탓인지 발달장애는 점점 늘고 있다. 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치료센터가 필요하다. 예컨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이제 남들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최초의 장애어린이재활병원인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 [사진 푸르메재단]
국내 최초의 장애어린이재활병원인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 [사진 푸르메재단]
 
지체장애 줄고, 발달장애 늘고

- 재활을 넘어 자립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재활치료를 마쳤더라도 일자리가 없으면 홀로 설 수 없다. 재활치료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다. 다행히 장애청년 부모로부터 경기도 여주의 땅을 기증받고, 기업의 후원도 받아 2021년 첨단온실을 갖춘 ‘푸르메 소셜팜’을 완공했다. 이곳에서 장애 청년들이 방울토마토를 키우며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재활병원에 이은 두 번째 기적이다. 2022년에는 베이커리 카페와 교육문화센터도 지었다. 현재 월급을 받고 일하는 장애인이 170명쯤 된다. 장애인의 자립은 파급효과가 크다. 그들은 물론 가족까지 행복하지 않겠는가?”
 
경기도 여주에 첨단 스마트 농장인 ‘푸르메 소셜팜’. [사진 푸르메재단]
경기도 여주에 첨단 스마트 농장인 ‘푸르메 소셜팜’. [사진 푸르메재단]
 
- 한번에 끝날 일이 아닐 것 같다.
“여주의 스마트 팜은 농촌형 농장이다. 외딴섬처럼 떨어진 곳에서 장애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어디를 나가려고 해도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스스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도시형 농장이나 카페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비싼 땅값이 걸림돌이다. 뜻있는 지자체의 참여가 절실하다. 더 나아가 부모로부터 자립한 장애 청년들이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는, 이른바 지원 주택을 짓는 것도 과제 중 하나다.”
 
- 장애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지난 20년 동안 달라진 게 있을까.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교통사고로 입은 큰 화상을 딛고 일어선 이화여대 이지선 교수에게서 들은 말인데, 그가 치료 초창기에 음식점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소금을 뿌린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최소한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장애를 보는 불편한 눈빛은 지금도 여전하다. 캐나다로 이민 간 발달장애청년의 부모님 사례가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한다’ ‘응원한다’며 미소를 짓는데 반해 사회에선 아직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했다.”
 
방울토마토를 키우며 자립을 꿈꾸는 발달장애 청소년들. [사진 푸르메재단]
방울토마토를 키우며 자립을 꿈꾸는 발달장애 청소년들. [사진 푸르메재단]
 
‘세상을 바꾸는 힘’ 주인공들


- 국내 어린이 재활병원 스타트를 끊었다. 그간 새로 생긴 곳은 없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 두 달 전에 상암동 병원을 둘러보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이 해서 부끄럽고 고맙다’며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후 대전(2023년)과 목포(2025년)에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이 세워졌고, 창원에도 머잖아 들어설 예정이다. 상암동 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기부했던 넥슨재단이 다른 지역 병원 건립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백경학 대표는 푸르메재단 20주년에 맞춰 그간 소중한 인연을 맺어 온 각계 인사 20명의 이야기를 담은 단행본 <세상을 바꾸는 힘>을 발간했다. 재단 운영과 발전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사연을 곡진하게 풀어냈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아름답고 웅숭깊다. 소설가 박완서, 시인 정호승,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강지원 변호사, 김정주 전 넥슨 대표, 이해인 수녀,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 기업인 이철재 대표,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조무제 전 대법관,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금희 아나운서, 원택 스님, 민정기 화백 등등, 우리 사회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 온 사람들의 사연 사연이 뭉클하다. 백 대표와 함께 기존에 ‘없던 길’을 새로 닦아온 사람들이다. 
물론 크게 작게 재단을 뒷받침해 온 5만 명의 손길이 가장 큰 힘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과 함께해 온 주요 후원자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성수 성공회 주교, 강지원 변호사, 박완서 작가,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 [중앙포토]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과 함께해 온 주요 후원자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성수 성공회 주교, 강지원 변호사, 박완서 작가,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 [중앙포토]
 
- 후원자들을 설득하는 일을 ‘앵벌이’에 비유한 김성수 주교의 한마디가 인상 깊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남의 돈을 받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2024년 기준으로 그간 쌓인 모금액이 총 1124억원에 이른다. 장애인들이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이 모이고 모여 이룬 기적이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을 합쳐 총 815만 명을 지원했다. 이런 수치 뒤에 숨어 있는 정성이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한번은 기대했던 한 기업체의 후원이 물거품으로 끝나자 화가 난 저에게 김 주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앵벌이예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위한 공익적 앵벌이지요.’ 그다음 주교님의 말씀에 더 큰 위로를 받았다.”
 
- 어떤 말씀이었나?
“앵벌이란 단어에 어리둥절해하는 저에게 하신 말이다. ‘절대로 부자가 앞장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겨우 살 만하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이 베푸는 법이에요. 한 번 거절당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열 번 전화해야 한 번 만날 수 있고, 열 번 만나야 겨우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잘 설명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에요’라고 하셨다. 앵벌이 앞의 ‘공익적’에 힘을 얻었다. 숱한 문전박대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가 생각난다. 예수는 작은 액수지만 하루 생활비 전부를 낸 과부를 보고 ‘이 과부가 다른 부자들보다 많은 헌금을 냈다’고 깨우쳤다.
“진주에서 작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 나눔을 실천해 온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다. 푸르메재단을 통해 알게 된 모든 분이 저에게는 김장하 선생 같은 분이다. 용돈을 절약하고 자기 장난감을 팔아서 마련한 돈을 아픈 아이를 위해 써달라고 한 초등학생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기부하려는 80대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예전보다 사정이 나아졌지만, 국내 재활병원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많은데 병원이 적으니 ‘재활난민’이란 말까지 있다. 이곳저곳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낮은 의료수가가 가장 큰 원인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푸르메병원이 마주한 장벽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아가 있으면 가족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절반 정도가 갈라선다. 가정 붕괴를 넘어 사회 전반의 불안 요인이 된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역시 코로나19 역병 시절이었다. 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정말 병원 문을 닫아야 하나’를 고민할 직전까지 갔다. 코로나 3년 동안 적자액이 매해 50억원을 넘었다. 넥슨재단에 SOS를 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어려운 시기도 이겨냈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 1층 로비의 기부자 명단 동판 앞에 선 백경학 대표. 김상선 사진팀장
넥슨어린이재활병원 1층 로비의 기부자 명단 동판 앞에 선 백경학 대표. 김상선 사진팀장
 
“인생은 출구가 보이는 터널”

- 박완서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인 별명이 ‘박완서 동생’이라고 소개한 대목에 눈길이 갔다.
“2005년 재단 출범 당시 첫 사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에서 박완서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앞니가 조금 크고, 아래로 처진 눈매 때문에 박완서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썼다. 덕분에 선생님과 고마운 인연을 맺게 됐다. 매달 25일이 되면 재단 통장에 ‘박완서’라는 이름이 찍혔다. 적지 않은 인세를 따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한번은 장애아 가족들과 함께 거제도로 소풍을 갔는데, 그때 선생님이 아이들 어머니들에게 전한 당부를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만, 우리의 의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을 안아주세요’라고 하셨다.”
 
- 20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이주언군의 사연도 남달랐다.
“태어날 때 뇌손상으로 13세까지 휠체어에 의지했던 주언군은 푸르메병원에서 4년간 재활 끝에 스스로 걷게 되었고, 지난 3월 경인교대에 입학했다. ‘왜 교대에 진학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초등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집에는 낳아준 어머니가 있지만 학교에선 선생님이 어머니라고 하셨는데, 그때부터 나중에 걷게 되면 꼭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대답했다.”
 
- 좋은 인연이 좋은 인연을 낳았다.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계속, 그리고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이화여대 이지선 교수의 한마디를 인용해 본다. 그는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면 출구가 보이는 터널’이라고 했다. 우리 재단의 존립 이유를 대변하는 것 같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런 행복한 사회를 모두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
 
푸르메재단을 상징하는 CI(Corporate Identity)는 어린 새싹이 나무로 자라 푸른 숲을 이루는 모습이다. ‘더불어 숲’의 가치를 전했던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와 이미지가 겹친다. 백 대표도 신 교수가 생전에 써주었던 글씨 ‘처음처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0년 전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기사 맨 처음에 인용한 백 대표의 아내 황혜경씨의 수상소감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란 씨앗은 언제나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의 오늘이 기적인 것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발달장애인과 함께 한평생, 김성수 주교의 마지막 꿈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로비 1층 한쪽 벽에는 수많은 기부자의 이름이 깨알처럼 적힌 동판이 있다. 동판 왼쪽 끝에 ‘愛人(애인)’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푸르메재단 명예 이사장인 성공회 김성수(95) 주교가 쓴 글자다. ‘사람을 사랑하다’는 뜻이다.
 

그 옆에는 성경 구절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나오는 기독교 신앙의 고갱이다. ‘심온(心溫)’이라는 김 주교의 호(號)가 재미있다. 김 주교의 세례명이 시몬인데, 이를 한자로 음역해 ‘따듯한 마음’이라 지었다. 푸르메재단의 오늘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진다.

김 주교는 평생을 발달장애인을 위해 헌신해 왔다. 1974년 우리나라 최초의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당시 그가 재직 중인 성공회대 안에 만들었다. 이곳 아이들이 초등 과정을 마치게 되자 이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도 개설했다. 그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강화도 온수리에 발달장애인 작업장인 ‘우리마을’도 건립했다.

김 주교의 남은 꿈은 발달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소규모 요양원을 짓는 일이다. 성베드로학교를 졸업하고 김 주교를 따라서 ‘우리마을’에 사는 제자 중에는 현재 60대 초반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장애인 탈(脫)시설 정책에 따라 요양원 건립이 난항에 빠진 상태다.

백경학 대표는 “인내와 겸손으로 살아온 김 주교님을 뵐 때마다 저도 그분에게 전염돼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숙여진다”며 “지난 10월 말에 일단 요양원 착공식부터 시작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m-joong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0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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