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캐나다 ‘홈셰어’, 다른 가정에서 생활하며 일상 회복하도록 지원
“당신의 장애 자녀, 제가 데리고 살겠습니다”
캐나다 ‘홈셰어’, 다른 가정에서 생활하며 일상 회복하도록 지원
밴쿠버=정태영 푸르메재단 사무국장
6월 15일 일요일 늦은 오후 캐나다 밴쿠버 교외의 어느 큼직한 주택 뒷마당. 초여름 날씨에 어린아이들이 비눗방울을 쫓아 뛰어다닌다. 어른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차양 막을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인 장애인 가정들이 모인 소풍 풍경이다.
홈셰어, 가정을 공유하다
훤칠한 청년 이민석 씨(32·가명)가 환한 표정으로 50대 남성과 함께 나타났다. 이 씨를 친아들처럼 생각하는 김재식 씨다. “민석아!” 건너편에서 이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느 부부가 이 씨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온다. 이 씨의 친부모인 이현 씨 부부다. 이들은 이민석 씨를 교집합으로 삼은 ‘가족’이다. 어떤 사연일까.
자폐성 장애가 있는 이민석 씨는 2023년 4월 1일부터 부모 곁을 떠나 김 씨 집에서 살고 있다. 캐나다에 기반을 둔 한인 장애인 가정 지원기관 ‘히어앤드나우(Here&Now)’를 통해 김 씨를 알게 돼 ‘홈셰어(Home Share)’를 시작한 것이다. 이곳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에서 홈셰어란 ‘가정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다른 가정에 거주하며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도록 장애인을 돕는 제도를 가리킨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생활을 공유한다’는 뜻을 가진 ‘라이프셰어(Life Shar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현 씨 부부는 발달장애인 부모로서 느낀 절박함에 홈셰어를 택했다. 걱정도 많았다. ‘우리도 민석이와 함께 지내면서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다른 집에 가면 얼마나 난관이 많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민석이는 홈셰어를 시작하기 전 분리수거에 꽂혀서 사용한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물건이 보이면 무엇이든 당장 버려야 직성이 풀렸어요. 중요한 물건까지 마구 버리는 바람에 민석이의 누나 둘을 포함해 온 식구가 힘들었죠.”
하지만 이민석 씨는 김 씨와 홈셰어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물건을 마구 버리는 강박증이 줄어들었고 지독했던 편식도 사라졌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하는 활동 프로그램도 잘 다니고 있다. 김 씨 부부가 차분하게 타이르고 가르친 덕분이다. 이민석 씨는 이제 김 씨 집을 ‘자기 집’으로 여긴다. 주말에 부모 집에 와도 저녁이 되면 돌아간다. 가족들이 자고 가라고 권해도 ‘자기 집’이 더 편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김 씨는 이민석 씨에게 홈셰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 씨의 변화를 도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저 ‘진심 어린 마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연히 서먹했죠. 민석이가 ‘짐 싸, 짐 싸’ 하면서 집에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신뢰가 쌓이면서 저희 부부와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2년이 넘도록 이민석 씨의 생활 모습과 건강 상태를 매일 기록해 이 씨 부부에게 공유하고 있다. 때로는 이 씨 부부가 김 씨에게 “우리가 민석이를 맡아줄 테니 휴가를 다녀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김 씨네와 이 씨네는 이렇게 이민석 씨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 가정을 이루고 있다. 조금 특별하지만 또 평범한 삶이다.
이민석 씨가 캐나다 장애인 주거 지원 정책 ‘홈셰어’를 통해 거주하고 있는 집 거실에 앉아 쉬고 있다. 김재식 제공
캐나다 BC주 성인 장애인 4300여 명 이용
자폐성 장애가 있는 최선우 씨(31·가명) 가족도 홈셰어를 통해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았다. 최 씨의 어머니 김수정 씨는 아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자 BC주정부 담당 기관의 긴급 지원을 통해 홈셰어 서비스 제공자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6개월 뒤 한국에서 통합교육을 경험한 초등 교사 출신 장진갑 씨(55)와 연결됐다.
장 씨는 전직 교사답게 최 씨의 일상을 알차게 계획했다. 이른바 ‘개별화 교육계획’을 세운 것이다. 방 정리를 어려워하는 최 씨를 위해 집 안 서랍마다 ‘약 넣는 곳’ ‘필기구 넣는 곳’ 등 표지를 붙였다. ‘해피 체크리스트’도 만들었다. 최 씨가 무엇을 먹었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잠은 잘 잤는지 등을 매일 기록해 최 씨의 어머니 김 씨에게 보내는 것이다. 월요일은 ‘한턱내는 날’, 화요일은 ‘문화 스포츠의 날’로 지정하는 등 주간 활동 계획도 세웠다. 김 씨는 장 씨의 돌봄에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우리 선우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하는 데 필요한 관습의 50~60% 정도는 체득한 것 같아요. 제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선우의 손톱은 누가 깎아주고 옷이나 신발을 누가 챙겨줄지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선우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최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 스스로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오전 6시 30분에 집을 나서 버스를 3번 갈아타고 출근한다. 병원 청소팀 직원으로 일하며 월급으로 1000캐나다달러(약 100만 원)를 받는다. 월급을 관리하는 방법도 배운다. 최 씨는 “내가 선우의 아빠”라고 말하는 든든한 동반자 장 씨와 함께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감동적이면서도 자못 생소한 이야기가 캐나다에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캐나다의 홈셰어 제도는 BC주와 온타리오주를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다. 특히 BC주가 적극적인데, 2025년 기준으로 BC주에 거주하는 성인 발달장애인 4300여 명이 홈셰어를 이용한다. 온타리오주에서도 장애인 1500명이 지역사회 가정에 거주한다. 캐나다에서 홈셰어는 이미 그 이용자 수가 ‘그룹홈’이나 ‘지원주택’을 추월해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 형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룹홈은 소수 장애인이 사회복지기관 직원과 함께 거주하는 거주시설이고, 지원주택은 장애인이 자기 집에 거주하며 개별적으로 사회복지기관 직원들의 지원을 받는 주거 형태를 말한다.
홈셰어가 장애인의 주된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BC주에서는 주정부가 홈셰어 서비스 제공자에게 보상을 준다. 홈셰어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에게 어느 수준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평가해 최경증(Level 1)부터 최중증(Level 5)까지로 나눈다. 등급에 따라 매달 1500~5300캐나다달러(약 150만~530만 원)를 홈셰어 서비스 제공자에게 지급한다. 주정부는 ‘홈셰어 서비스 표준 규정’을 제정해 홈셰어 서비스 제공자를 꼼꼼히 모니터링한다. 홈셰어 제공자는 주정부의 발달장애 성인 담당 기관 ‘커뮤니티 리빙 브리티시 컬럼비아(Community Living British Columbia·CLBC)’의 ‘가정환경 조사(Home study)’를 통과해야 하고, 분기별 방문 조사와 수시 연락, 교육훈련, 비상시 보고 등 관리·감독에 응해야 한다.
2018년 캐나다 상원은 각 주에 “대규모 (장애인) 시설의 시대는 끝났다. 가정 같은 환경을 통한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홈셰어 서비스를 최선의 장애인 주거 지원 사례로 소개했다. BC주정부는 홈셰어를 장애인 삶의 질이 높고 그룹홈에 비해 필요한 지원 예산이 절반에 불과한 효율적인 정책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부모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자기 집에서 장애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주정부가 매달 150만~530만 원 지원
예컨대 2018년 BC주에서는 54세 다운증후군 장애인 플로렌스 지라드 씨가 홈셰어 가정에서 방임을 당해 굶어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적인 가정에서 은밀하게 발생할 수 있는 학대나 방임을 예방하는 것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BC주는 연 1회 진행하던 가정방문을 분기당 1회로 늘리는 등 관리·감독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한국은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홈셰어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까. 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법적 근거도 마련할 수 있을까. 아직은 막막한 느낌이다. 캐나다와 한국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가족 개념, 문화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낯선 대안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장애인 부모가 더는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지 않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 누리도록 돕는 게 푸르메재단 임무”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보통의 삶’을 누리도록 장애인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6년 국내 최초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해 매일 장애어린이 500여 명을 치료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63만 명이 이곳에서 재활의료서비스를 받았다. 푸르메재단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서울시서북·동남보조기기센터’ 등도 운영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재활치료를 마친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돕는 일자리 사업도 추진 중이다. 2022년 첨단 스마트팜 기반의 ‘푸르메소셜팜’을 건립해 장애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대기업과 협력해 장애가 있는 청년에게 ‘베이커리카페 무이숲’ ‘행복한베이커리&카페’ 등 일터도 제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푸르메재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마포푸르메스포츠센터’ ‘마포푸르메어린이도서관’ 등을 설립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이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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