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청와대 앞 농성 접은 세월호 가족 “청와대의 무심함과 이웃의 정을 느꼈습니다”

청와대 앞 농성 접은 세월호 가족
“청와대의 무심함과 이웃의 정을 느꼈습니다”

2014-11-05

박근혜 대퉁령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했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76일째인 5일 천막을 접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5일 오후 농성장 철수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일 여야의 세월호3법 합의 이후 열린 총회에서 결정한 사안”이라며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안산의 가족들과 늘 함께 해 주겠다고 약속한 국민들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국 박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근본적·지속적 대책을 마련해 안전한 사회·책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월호 가족들은 농성 기간 동안 “청와대의 무심함과 이웃과 국민의 정을 함께 느꼈다”고 말했다. 가족대책위는 “정말 대통령님을 뵙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을 믿고 청와대로 향했지만, 동네 주민들이 뭐라 그러는 건 아닐까, 괜히 민폐 끼치는 유가족이라는 말을 듣는 건 아닐까 참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76일 동안 많은 청운동·효자동 주민들과 시민들께서 찾아와 격려와 응원을 해주셨고, 때만 되면 여기저기서 식사를 준비해 주고 명절음식도 나눠먹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빨래와 식사준비를 돕고 응원해 준 인근 주민들과, 식당·카페 주인, 화장실 사용을 허가하고 편의를 도와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김오현 동장과 임찬흥 청운파출소장 등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감사를 전했다. 천막에는 ‘기꺼이 이웃이 되어주신 주민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는 노란색 천막을 걸어놓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76일간의 청와대 앞 농성을 마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가족대책위는 청와대에는 “동내 개가 사납게 짖어도 생선대가리라도 던져주는데 하물며 당신의 국민들이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한 번만 닦아달라고 코앞에서 울고 있는데 설마 이토록 철저히 모른 척 외면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다시는 대통령께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왔는데 그보다 더욱 더 크고 위대한 주민들과 국민들의 위로와 응원만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광화문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국민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며 “앞으로 가야 할 진상규명의 길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험난하겠지만 힘나게 나아가겠다”고 마무리했다.

박성호군 어머니 정혜숙씨는 “주민들이 많이 불편했을 텐데 민원도 넣지 않고, 오히려 주말에 천막을 지켜주기도 하고 출퇴근길에 몰래 과일을 놓고 간 사람들도 있었다”며 “앞으로는 청와대에 호소하기보다 이분들과 함께 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오영석군 어머니 권미화씨는 “계절이 바뀌었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4월 16일”이라며 “우리는 부모로서 기쁨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다음세대로부터는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특별법 서명운동과 1인시위를 함께 한 시민 모임인 리멤버0416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기자회견을 찾아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농성장을 떠다는 가족들을 응원했다.

국회 농성장은 특별법 처리가 예정된 7일 이후 철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광화문 농성장은 당분간 그대로 둘 예정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광화문농성장은 이제 가족들 뜻만으로 철수할 수 없다”며 “진상조사위 구성과 시행 추이 등을 지켜보며 함께 해주시는 시민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지난 8월 22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세월호 특별법 이슈가 재점화됐지만 여야의 대립으로 법안 처리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김영오씨가 한 달 넘게 단식을 지속해 건강이 위태로워진 상태였다. 지난달 2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시민 150만 명(250만명 기전달)의 서명을 모아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3보1배로 행진해 전달할 계획이었으나 광화문 광장을 경찰이 에워싸 4시간 동안 절만 하다 물러섰다.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 유가족이 도움을 준 청운동 주민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

응답 없는 청와대, 가족을 외면한 대통령!!! 하지만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신 국민!!!

- 76일간의 박근혜 대통령 기다림을 마치며 -

이곳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76일을 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만을 기다리면서.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면담신청서를 숱하게 제출하면서 그래도 비서관을 통해 무어라 한 마디 전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수많은 청운동, 효자동 주민과 시민들께서 명절음식을 싸들고 찾아오시던 추석에 한마디 덕담이라도 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엊그제 국회에서 오가시던 걸음 잠시 멈춰 눈길이라도 마주쳐 주실 줄 알았습니다. 따스한 눈길 한 번에도, 잊지 않고 있다는 짧은 말 한마디에도 서러움과 외로움을 잊곤 하는 저희들에게는 화려한 수식어도, 거창한 모양새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동네 똥개가 집 앞에서 요란하게 짖으면 나가서 쫓아버리거나 하다못해 생선 대가리라도 하나 던져 줍니다. 하물며 당신의 국민들이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한 번만 닦아달라고 코앞에서 울고 있는데 설마 이토록 철저히 모른 척 외면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떠납니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안산, 우리 가족들에게 돌아갑니다. 잡은 손 놓지 않고 언제나 늘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신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광화문과 전국 곳곳으로 더 많은 국민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대통령님께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님과 현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근본적/지속적 대책을 마련해 안전한 사회, 단 한 명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 주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공을 세우시는 대통령, 정부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처음 농성을 시작하던 날이 기억납니다. 저희는 정말 대통령님을 뵙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든 찾아오라며 흘리시던 대통령님의 눈물을 믿고 무작정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청와대 앞까지 갈 수는 있을까, 가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동네 주민들이 뭐라 그러는 건 아닐까, 괜히 민폐 끼치는 유가족이라는 말을 듣는 건 아닐까 참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희 마음을 아셨는지 지난 76일 동안 정말 많은 청운동, 효자동 주민들과 시민들께서 찾아와 함께 눈물 흘리며 격려와 응원을 해주셨고, 때만 되면 여기저기서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추석에는 전국에서 명절음식과 선물을 너무 많이 보내주셔서 청운·효자동의 어르신들은 물론 각종 시설에 계신 분들과 푸짐하게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퇴근길에 붕어빵 한 봉지, 빵 몇 개를 슬쩍 넣어주고 가시는 주민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빨래를 해주신 배안용 목사님과 사모님. 집밥이 그리울 거라며 수시로 정성 어린 식사를 준비해주신 원불교 교우님들, 성미산 마을 주민분들, 한살림 회원분들. 매일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시고 샤워장을 열어주시는 등 온갖 편의를 제공해주신 푸르메 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님과 재단 직원분들. 직접적인 불편함과 민원을 감수하면서도 전기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청운·효자동 김오현 동장님과 주민센터 직원분들. 혹시라도 불편한 것이 없는지 주야로 들여다봐 주시고 챙겨주신 임찬흥 파출소장님과 경찰관님들. 여름엔 냉커피로, 싸늘해진 요즘엔 뜨거운 차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신 커피공방 사장님. 따뜻한 국물과 고구마로 이웃의 정을 느끼게 해주신 블루베리 식당 사장님과 아드님. 수시로 찾아와서 필요한 것 먼저 챙겨주시고 함께 진상규명을 외쳐주신 리멤버0416, 82쿡,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님들. 엄마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며 두런두런 얘기 나눠주신 젤 뜨루다 님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 침으로, 물리치료로, 혈압관리 등 건강진단으로 쇠약해진 건강을 챙겨주신 경희솔한의원, 제중한의원, 성수의원의 의사선생님들과 도희 한의사님. 먼 강화에서 매번 음식을 날라주신 마리스타 수녀원, 매일 저녁 기도회로 서러운 마음을 위로해주신 신부님, 목사님, 수사님, 수녀님 그리고 신학생들. 비닐 한 장 치고 노숙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움에 천막을 준비해주신 명스님. 감기 걸리지 말라고 겨점퍼를 준비해 주신 정봉주님, 동대문 아디다스 김득경 사장님, 뉴욕의 교민분들.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수많은 청운동, 효자동 주민 여러분과 전국 각지의 국민들, 해외 교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상주하며 따뜻한 손발이 되어준 이윤상 목사님, 기현, 영록, 득렬, 해리 등 자원봉사자와 안산시민대책위, 국민대책회의 여러분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법적 근거 없는 경찰의 통제로 찾아오기 힘들었던 이곳 농성장까지 오셔서 세월호 참사의 실상과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가족들의 현실을 알고는 함께 눈물 흘리고 분노해주신 모든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희 가족들은 청와대의 무심함과 이웃과 국민의 정을 함께 느꼈던 이곳을 떠납니다. 대통령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왔는데 그보다 더욱 더 크고 위대한 주민들과 국민들의 위로와 응원만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광화문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국민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나섭니다.

국회는 내일모레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많이 미흡한 법안이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법안이라도 만들어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청운동, 효자동 주민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입니다. 앞으로 가야 할 진상규명의 길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이곳 청운·효자동에서 가슴 가득 채워가는 주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들의 뜨거운 눈물의 힘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청운동, 효자동 주민 여러분과 국민, 해외 교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위로와 응원을 새로운 희망으로 삼아 영원히 저희 심장에 새기겠습니다.

2014년 11월 5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