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씹고 뜯고 즐기게~’… 장애인 1만4000명에 ‘건강 치아’ 선물

<사랑 그리고 희망 - 2010 대한민국 리포트>

'씹고 뜯고 즐기게∼’… 장애인 1만4000명에 ‘건강 치아’선물

사랑·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장애인 의료지원 푸르메재단

2010-12-29 13:51

▲ 28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신교빌딩 1층 ‘푸르메나눔치과’에서 푸르메재단 임직원들이 2012년 9월 건립예정 장애인 전용 종합 재활센터’의 축소 모델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의사 양반, 아프게 치료하면 정말 안 돼!”,

“‘아~’ 하고 입 크게 벌리시고요.
자꾸 움직이시면 정말 아프게 할지도 몰라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신교빌딩 1층 푸르메 나눔치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치과 특유의 냄새와 함께 ‘윙~’하는 기계음이 진동했다. 이날 구강 검사를 받기 위해 침대식 휠체어에 누운 3명의 장애인들은 치석 치료를 위해 빠르게 돌아가는 스크루 드라이버의 기계음에 놀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프지 않게 치료해 달라”며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3급 지체장애인 김모(56)씨는 “일반 치과에서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치료하기도 힘들고 돈도 안 된다며 싫은 내색부터 한다”며 “하지만 이곳은 장애인들을 위한 전용 치과라서 그런지 말 한 마디도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시설과 인력을 제대로 갖춘 재활전문병원을 만들어보자며 동분서주하는 이들이 있다. 비영리 의료복지 법인인 푸르메재단에서 일하는 50여명의 임직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2004년 4월에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전문 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는 동시에 신교동의 4층짜리 건물에 장애인 전용 치과인 ‘나눔치과’와 장애 아동을 위한 ‘한방재활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 치과에서는 10여명의 치과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비싼 진료비 때문에 치아치료를 엄두도 내지 못하던 저소득층 중증 장애인들에게 일반 구강치료와 임플란트(인공치아)시술 등을 저렴하게 해주고 있다.

이날 틀니 보철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를 찾은 2급 지체장애인 이모(55)씨는 “매일같이 잇몸에서 피가 나도 치료비가 부담이 돼 진통제를 먹으며 참아 왔다”며 “재단을 통해 치료비의 절반가량을 아낄 수 있어 지금은 큰 부담 없이 치료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생 수술비를 댄 아내에게 미안해서 치과 치료는 말도 못 꺼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 7월로 개원 3년째를 맞은 ‘나눔치과’는 그동안 1만4000명의 장애인들을 치료했다.

이 재단은 지난 24일 이 건물 2층에 자리한 ‘한방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인 저소득 장애 어린이 20여명과 가족을 대상으로 ‘기부자가 만드는 작은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를 준비한 푸르메재단 정태영 팀장은 ‘한방재활병원은 양약이 아닌 우리 전통 한방으로 장애 아동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라며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기부자들과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20여명의 장애 아동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해 희망의 캐럴을 부르는 뜻깊은 행사도 열었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은 단순히 기부금을 걷는 모금회 차원의 활동을 넘어 직접 장애인 및 독거노인 등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 재단은 지난 18일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장애인과 홀몸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해 경기 고양시 식사동 거주 소외계층 5가구에 연탄 4600장을 전달하는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이가 아파 치과에 가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미소원정대’를 조직해 매월 한 번씩 장애인 거주 지역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정 팀장은 “치료 시설 등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이 서울에만 집중돼 치료에 제약이 많다”며 “매달 한 차례 무거운 치과 시술장비를 들고 전국의 쪽방촌과 복지관으로 찾아가는 ‘미소원정대’가 장애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푸르메재단은 장애인만을 위한 종합병원을 신설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단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장애인 종합재활센터는 종로구와 함께 종로구 효자동에 순수 민간 기부로 만들어지며 이곳에는 장애인 전용 치과를 비롯한 어린이 재활센터, 복지관 시설이 결합돼 지상 4층, 3748.5㎡ 규모로 2012년 9월 개원할 예정이다.

기부로 짓는 만큼 재단은 기존 병원과는 다른 운영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우선 경제적인 사정으로 재활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환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정 팀장은 “재활치료가 꼭 필요해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 비율이 전체의 60% 가까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독일, 스위스 등 선진국처럼 장애인이 혼자 입원해도 재활을 비롯한 치료를 받는 데 지장이 없는 병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의학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치료도 환자들이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가족 중 한명이 장애인 된뒤엔 모두 불행해지는 현실 바꿔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가족이 믿을 수 있는 환자 중심의 재활전문병원을 설립하고 환자들의 홀로서기와 사회복귀를 위한 선진국형 재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재단의 사명입니다.”

백경학(사진)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2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 활동과 관련, “우리 재단은 오로지 장애인만을 위한 재활전문병원을 설립해 각종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의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재단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약 470만명의 장애인이 있으며 이 가운데 65%는 교통사고와 뇌졸중, 지체장애 등으로 인해 입원 치료와 지속적인 재활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중 2%인 10만명 정도만이 입원 치료를 받는 등 장애인 의료 서비스 상황은 열악하다.

백 이사는 “재활의학과 의사 1인당 장애인 수가 6000명이고 장애인구 1000명당 재활 병상 수가 3개 미만으로 장애환자 재활의 첫 관문인 재활치료 여건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고 설명했다.

백 이사가 재단일에 뛰어든 것은 아내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아내는 지난 1998년 해외연수 도중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수개월의 혼수상태 끝에 왼쪽 다리를 잃은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가족 중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순간 그 가족들이 가진 재산을 팔아 치료를 위해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며 “장애 가족에게 온종일 매달려야 하는 국내 재활치료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장애인 치료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불행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장애를 가지게 되면 가족 모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 등으로 후천성 장애를 갖는 사람들의 재활치료와 훈련을 개인과 가정의 일로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 이사는 장애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사회 전체가 나눠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현일훈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