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사상] 장애인 아픔 덜어주는 버팀목
장애인의 아픔을 덜어주는 든든한 버팀목 푸르메재단
글․사진 이지영(본지 객원기자) | 사진협조․푸르메재단
‘아프냐? 나도 아프다.’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 표현에는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진심어린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무관심 때문이건, 두려워서이건 요즘의 우리는 상대방의 고통을 알기를 꺼리게 됐다. 삶의 고통이 난무하고 있어서일까. 갈수록 무신경해지는 냉혈인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희망지기가 있다. ‘푸르메재단’이 바로 그곳이다.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 먹고 씹는 구강 내의 활동은 그 자체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너무도 익숙해진 행복이기에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환자들의 고충을 평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듯 누구나 이가 아플 때의 고통을 짐작하면서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의 치아 문제 앞에서는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
치아 문제뿐만 아니라 불의의 사고 혹은 장애로 재활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시급하다. 지금은 환자 중 단 2%만이 재활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재활병원 환경은 열악하다. 병원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데 비해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후천적 장애의 충격에 휩싸이는 환자는 매년 30만 명씩 늘고 있다.
이렇게 전문 재활병원의 필요성은 점차 늘고 있지만 그동안은 이런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던 탓에 국내에서는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푸르메재단은 재단 설립 후 2년 만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장애인 전문병원, ‘푸르메나눔치과’(이하 나눔치과)를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나눔치과는 개원 당시인 지난해 7월부터 환자들의 열띤 환영 속에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새벽 열차를 타고 오는 ‘푸르메’ 환자들
부산에서 첫 차를 타고 나눔치과까지 진료를 받으러 올라오는 김상기 씨(가명). 나눔치과의 선생님들이 간단한 신경치료니 동네의 병원에서 치료해도 된다고 했지만 굳이 새벽 열차를 타고 종로구에 위치한 이곳을 찾는다. 김씨 말고도 서울과 경기 이외의 지방에서 나눔치과를 찾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10%에 가깝다. 환자들이 이렇게 나눔치과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경학 상임이사는 “장애인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혹은 장애인용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해 심적으로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는 상한 이보다 마음의 치료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죠”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백 이사의 설명처럼 나눔치과는 비록 시설은 부족하고 공간은 일반 병원에 비해 좁았지만 따뜻한 온기와 의사 선생님들의 열정만은 충만했다. 현재 나눔치과에는 의사 열두 명 외에 치위생사 세 명, 여러 자원활동가들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재단은 의사들의 참여가 많아지면 ‘풀(pool)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의료진뿐 아니라 활동가들의 도움도 큰 활력소다.
나눔치과가 개원한 후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21일부터는 저소득 가정의 영유아 및 미취학 장애어린이를 위한 ‘한방재활센터’도 문을 열었다. 뇌성마비, 정신지체, 자폐증 어린이를 위해 무상으로 진료를 해주는 이 프로그램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 문제로 진료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어 많은 장애인 아동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한방재활센터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허영진 씨는 400만 원가량 되는 치료약을 개인 돈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재단은 매달 100만 원 가량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부득이하게 환자 쪽에 약값만은 부담하도록 할 계획이다.
푸르메재단에서는 치과, 한방 치료사업을 통해 장애인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지만 원래 재단의 가장 큰 꿈은 국내 최초의 민간 재활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설립 시점은 2009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활병원이 장기적으로 장애 환자들에게 대안이 되지만 당장은 음식물을 먹어야 몸을 추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치과가 먼저 생기게 된 것이다. 재활전문병원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선진국을 비롯한 복지국가에서는 매우 친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의 재활의학은 의료수가의 문제로 병원에서도 특히 꺼리는 분야다. 한 환자가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기까지 길어야 2~3개월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시한부 입원 생활’로 불리기도 한다.
재단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재활병원은 치료는 물론이고 환자가 다시 사회에 돌아가 활동할 수 있도록 자립까지 도울 수 있는 곳이다. 장애의 고통을 이해하고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최초의 민간 재활전문병원인 것이다. 현재는 가족 중 장애를 가진 환자가 있을 경우 온 가족이 생업을 포기하고 환자 간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면 경제적 이유로 금세 극빈층으로 내몰리는 것도 다반사다. 푸르메재단이 꿈꾸는 재활전문병원은 의료진과 자원활동가가 가족처럼 환자를 24시간 돌봐 환자 가족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돕는 곳이다. 백 상임이사는 재활전문병원은 기존의 장애인 환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웃, 내 가족을 위한 공공시설로 봐야 한다며 이해와 참여를 호소했다.
선진국의 장애인 재활시설이 5성 호텔이라면 우리나라는 ‘허름한 여관’ 수준
다년간 독일에서 선진 복지국가의 장애인 재활서비스를 경험한 백경학 상임이사는 국내의 장애인 재활시설의 수준을 ‘허름한 여관’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장애인 재활치료에 나서고 있는 유럽과 일본의 재활시설을 ‘5성(星) 호텔’로 본다면 장애인 재활지원에 인색한 우리나라는 여관처럼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 백 이사는 “외국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민간 재단에서 그런 사업을 왜 하느냐는 물음이 돌아옵니다. 그만큼 장애인 복지에 대한 사고가 많이 다르죠.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제 대국임을 자처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의료․교육서비스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라며 아쉬워했다.
재활시설이 부족한 데는 장애인의 장애를 개인의 문제와 그 가족이 추슬러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도 한몫하고 있다. 때문에 재단이 지자체와 기업이 장애인 재활병원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18일 개원한 이후, 재단이 서울시에 후원을 요청했을 때 2400만 원을 지원받은 것을 제외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이 장애인 환자들의 구강 상태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지원이 더 시급한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치아 손상처럼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것엔 환자 보호자들이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때문에 치료를 미루다가 발육 상태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백 이사가 치아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이 환자를 위한 후원기금 마련을 위해 여러 기업을 찾아 설득했지만 흔쾌히 나서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장애 어린이들이 겪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업들을 찾아가 ‘1천만 원이면 100명의 아이들을 치료해 음식을 씹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기업이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방울 같은 작은 손길… 희망을 놓칠 수 없는 이유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듯,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환자 중심의 아름다운 재활병원을 만들겠습니다.’ 푸르메재단 건립 당시 신영복 선생이 병원에 전한 글이다. 재단은 작은 물방울의 힘을 믿는다. 병원에 항상 온기가 넘치는 이유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자원활동가 한 분 한 분의 도움 덕분이다. 의료 지원을 하고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틀니를 제작하거나 치료 부품을 제공하는 기공소의 지원은 병원의 가장 큰 자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는 늘어나지만 장애인 전문 치료기기, 재료비 등 갈수록 늘어가는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최근 의료장비 기업인 ‘바텍(Vatech)’사에서 4천만 원 상당의 디지털 파노라마를 기부해 숨통이 트인 상태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인 전용 치료장비가 부족하다. 특히 치과 치료에 두려움이 많은 장애인 아동이나 노약자들에게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웃음가스 등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나눔치과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 중 46%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치과 치료의 자기부담금은 일반 진료의 5배가량으로 무척 높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로 관리를 안 하고 방치해둔 환자가 많다. 나눔치과는 치과 치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후원 체계를 통해 장애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설립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푸르메재단의 올 한 해 목표는 뚜렷하다. 치과 환자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한방재활센터의 운영체계를 잡아가는 것이다. 또 2009년에 병원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뜰 예정이다. 백 상임이사는 마지막으로 환자들이 병원을 편한 집처럼 느끼고 의료진을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봉사 인력도 중요하지만 재정적 운영 시스템이 충만해지고 확고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더 많은 물방울이 ‘푸르메’에 스며들어 큰 강으로 뻗어 나가길 바란다.
♥함께해요
푸르메재단(www.purme.org) 전화: 02-720-7002
후원계좌: (예금주 재단법인 푸르메) 국민은행 870301-04-013107 | 제일은행 100-10-023368 | 우리은행 1005-600-989825
푸르메나눔치과(www.purmee.org | 진료예약: 02-735-0075)
한방장애재활센터(진료예약: 02-720-3007)
<인물과 사상> 200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