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 아름다운 데이트-김성수 성공회대 주교/ 푸르메재단 이사장
[김승현의 아름다운 데이트](1)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행복을 전하는 하느님의 든든한 심부름꾼”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는 주인공 왕자와 제비의 선행이 눈물날 만큼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동화 속 왕자와 제비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성공회 김성수 주교. 그는 말보다는 실천으로 내리사랑을 보여주며 사람들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예쁜 꽃씨를 심는 행복 전령사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곳, 어린 시절 동구 밖 어귀에 있던 작은 정자. 아버지와 외출할라 치면 돌아서 가도 되는데 꼭 정자에 모여 계신 동네 어르신네를 찾아 뵙던 기억이 떠오른다. 동네에서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도 건네고, 어르신들께 고민도 여쭙던 아버지의 모습이….
늦가을 냄새 짙은 11월 어느 날 방송 녹화를 서둘러 끝내고 서울 정동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마 아버지도 동네 어르신을 찾아 뵈러 갈 때 이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정동 성공회 대성당에 머물고 계실 김성수 주교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아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큰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데 멀리까지 와주니 고맙네”라는 말씀과 함께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김성수 주교. 처음 찾는 성공회 대성당의 역사를 설명하며 안내하시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서울시 지방 문화재 35호로 지정돼 있는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한국의 전통기법과 조화를 이뤄서 참 예뻐. 밖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파이프 오르간도 있고…. 참 저쪽은 수녀님들이 생활하는 곳이야. 여긴 금남구역인데 바쁘신 양반이 왔으니 특별히 구경시켜줄게.”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직 수확하지 못한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와 제철을 잊고 탐스럽게 핀 장미가 반갑게 반긴다. 정겨운 툇마루에 잠시 앉아 어린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맞아! 맞아! 그땐 거지도 많아서 툇마루에서 밥 먹다 거지가 오면 퍼주고, 옆집 어르신 지나시면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먹고 그랬어’라며 맞장구를 치신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김성수 주교님과 옛이야기하며 실컷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김승현(이하 김) 제가 진행하는 칼럼 첫 회에 모시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주시니 좋네요.
김성수 주교(이하 김 주교) 김승현씨 만난다는 생각에 나온 건데 아이고 부담되네~. 김승현씨는 항상 편안한 말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데, 이렇게 찾아주니 좋네요.
김 저는 얼굴이 커서 늘 똑같은 거 같아요. 얼굴 큰 사람의 장점이 잔주름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제 주름 없애는 비법은 ‘라톡스’예요. 밤에 라면을 먹고 자면 저처럼 팽팽해져요(웃음). 주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김 주교 고혈압이 있어서 두서너 달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데, 예약 진료 일주일 전쯤 계단을 오를 때 가슴이 뻐근하고 이상하더군요. 심장 촬영을 했는데, 혈관이 막히는 동맥경화가 진행 중이라며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대요. 난 심장을 들어내서 하는 수술인 줄 알았더니 혈관 시술이라고 하대요. 지난 10월 16일에 수술 받고, 퇴원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어요.
김 젊은 사람들도 혈관이 좁아져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혈관이 막히기 전에 빨리 발견돼 다행이에요.
김 주교 하느님께서 휴식시간을 선물하신 것 같아요. 하나님 다음으로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이 제2의 생명의 은인이지. 병원에 있느라 약속했던 졸업생 두 사람 결혼식 주례를 못 섰어요. 또 서울 평화상 받으러 내한했다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유누스 총재를 못 만난 게 제일 미안하고 아쉬워요. 훌륭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았겠어. 가족들한테도 미안하고….
김 사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김 주교 혼자 되면 어떡해(웃음)? 걱정 많이 했지. 병원에 와서 수발 든다고 해서 못하게 했어요. 아내 후리다가 건강하긴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몸조심을 해야죠. 서양은 면회시간 외에는 가족도 병원에 오지 않는데 우린 가족까지 병원에서 밥해 먹으며 생활하니, 나라도 솔선수범하느라 절대 오지 말라고 했어요. 잠을 자고 간다기에 억지로 쫓아냈더니 섭섭해하더라고. 말로는 표현 안 했지만 아파 보니 아내의 고마움을 더 느낄 수 있었어요.
김 달리 보면 함께 아픔을 나누려는 우리 민족만의 정이 느껴지는 부분인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사고의 전환이 좀 필요할 때이기는 하지요. 시술 후 건강하시죠?
김 주교 많이 좋아졌어요. 얼굴이 허여멀건 했는데, 요즘은 혈색이 좋아졌다고들 해요.
열림·나눔·섬김을 가르치는 총장 할아버지
서울 정동의 성공회 앞마당까지 마중나와 오랜만에 보는 김승현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김성수 주교.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총장실을 개방하고 판공비 3천만원을 장학금에 보태 쓰라고 내놓았다. 또 학생들을 총장실로 초대하거나 교정으로 나가 ‘밥은 먹었어?’ ‘생일 파티 따로 하지 말고 매월 15일에 같이 하자!’ 하고 먼저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처음에는 거리를 두던 학생들도 그 후부터는 ‘총장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른다고.
김 대학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성공회대학은 어떻습니까?
김 주교 우리 학교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로 시끄럽지 않아. 다른 학교보다 가족적이고 훌륭하신 교수님이 많다고 소문이 나서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지요.
김 작은 신학교에서 시작된 성공회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했을 뿐만 아니라 우수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 주교 모든 것이 우리 대학 교수들 덕분이에요. 그분들이 남들보다 봉급을 10배쯤 더 받아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니거든. 오히려 봉급이 적으면 적었지….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제자들을 자식처럼 아껴요. 그리고 졸업생들은 성공회대학교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니 그렇게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김 그래도 주교님께서 앞에서 지휘를 잘해주셔서 그런 것 아닐까요?
김 주교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보고 왕이 이번에는 말을 몇 마리, 대포를 몇 개 어디다 놓으라고 지시한다면 그 전쟁은 이미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왕은 ‘장군을 믿소!’라는 단 한마디만 하면 되거든. 그래서 난 우리 교수님이나 직원들에게 믿는다는 말만 할 뿐인데요.
김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주교님께서 학생들과 식사도 같이하고 축제 때 사진도 같이 찍는 일이 많으시던데요.
김 주교 날 총장이라고 받들고 그러는 거 싫어요. 우리 학교는 대학원이 5백 명, 학부가 2천5백 명 정도야. 그래도 결재를 시작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는데 규모가 큰 대학은 더하겠지. 성공회대학교는 다른 대학보다 규모가 작아서 학생들에게 다가서기가 더 쉬웠던 거지. 또 총장이 높은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학생들의 심부름꾼이고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가서 손을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같이 손잡고 이야기 나누는 예수님을 닮으려고 흉내만 내고 있어! ‘열림·나눔·섬김’이라는 우리 학교 교육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죠.
김 사실 ‘흉내’내려고 마음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학생들을 너무 예뻐하시니 잔소리는 안 하시죠?
김 주교 애정을 갖고 말을 건네면 잔소리가 아니거든. 그래서 난 아이들이 잘못한 거 보면 그냥 이야기 해줘. 요즘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교내에서 담배를 다 피우거든.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여자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소리 하죠. 그러면 얼른 담배를 끄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결혼하면 끊을 거라고 대꾸하는 아이들도 있어.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낙심하지 않아요. 언젠가 알아줄 날이 있을 테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지.
따뜻한 사랑은 흉내내면서 익히는 것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창 밖에서 들리는 은은한 종소리. 도심 속으로 퍼져 나간 종소리가 듣는 이들의 가슴을 한결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 같다.
“음, 종소리 좋지. 대성당에서 치는 종이야. 여기서 이렇게 듣고 있으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매신 예수님이 떠올라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나도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한동안 종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김 연말이 가까우니 종소리가 더 마음에 와 닿네요.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도 언뜻 떠오르고요. 그런데 경기가 나빠서 도움을 주시는 것이 매년 작년 같지않다고 해요.
김 주교 12월만 갑자기 이웃을 둘러보게 되는데, 도움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니 아쉬워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1년 내내 유지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물론 연말연시에라도 선물을 챙기는 건 고맙긴 하지요.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물질적으로만 도와주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독거 노인들 사는 데 가서 따뜻하게 손 내밀며 마음의 정을 나누는 게 더 좋죠. 우리 아이에게 초콜릿 상자 안기는 걸로 다됐다고 생각 말고,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한마디라도 해야 해요.
김 대부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방송에서는 주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 나누기를 먼저 하라고 전하지만 정작 실천은 미미하니까요.
김 주교 이웃과 함께하는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런 거지요. 군고구마 한 개라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이웃에게 건네도록 해봐요. 새벽에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에게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마음이 전해지거든.
금남의 구역인 수녀원 마당에서 어린시절 추억을 나누는 김성수 주교와 김승현씨.
김 어머니가 명절에 양말 한 켤레라도 곱게 싸서 환경미화원 어른이나 주변의 힘들게 지내는 분에게 전해드리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김 주교 맞아요! 그게 나눔의 기본이지. 매스컴과 언론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가족’ 아니면 생각을 안 해요. 물론 가족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는 것도 좋지…. 그러나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마음을 나누자고 가르쳐야 해요. 작년에 독거 노인을 찾아가 연탄 등 겨울용품을 전달해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동네 국회의원이 내의를 선물하면서 ‘김성수 주교님이 주시는 선물이에요’하는 거야. 나야 그냥 손 한번 잡아드리러 간 건데 갑자기 나를 산타할아버지를 만드는 거야. 그래서 한마디했더니, 선거법에 걸려서 이웃돕기를 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법 때문에 제대로 이웃과 나눌 수 없다니 안타깝지요.
김 아마도 사회가 혼탁해서 좋은 마음을 나쁘게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씩 보완돼 좋은 법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어요. 연말에 전하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으세요?
김 주교 내 마음이 참 자주 변해요. 예전엔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주고…’라는 구절이었는데 요즘은 바뀌었어. 어릴 적 교회에 다녔던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주기도문이 마음에 와 닿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처럼 하느님 뜻이 통하는 세상이 땅에서도 이뤄져 우리가 사는 이곳이 천국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김 그 말씀이 이 땅에서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주교 부모의 마음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 특히 엄마가 달라지지 않으면 올바른 세상이 될 수 없어요. 공부 1등도 좋지만, 인간관계 1등이 되도록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야죠. 내가 젊었을 때는 ‘거지’들이 참 많았어. 우리 어머니는 거지들이 찾아오면 문전박대하지 않고 항시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옷가지를 챙겨주셨어요.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으니 자연히 남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몸에 벤거죠. 엄마가 아이들을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데리고 다니며 나누면 그게 교육이죠.
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각종 사연을 접하게 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체험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데 ‘공부’할 시간 빼앗지 않겠다고 엄마가 아이들 대신 현장에 나간대요.
김 주교 아버지도 주일에는 회사 나가서 일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보육원 등으로 봉사활동하러 가면 좋잖아요. 사실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손녀들도 월요일만 빼고 그림, 영어, 음악 등을 배우러 다니느라 시간이 없다니, 이런 말 하는게 창피하지요.
인스턴트 같은 만남과 헤어짐에 경종을 울리는 부부의 모습
만남과 이별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워진 요즘, 주례사에서 빠지지 않는 구절 ‘검은머리 파뿌리까지 살라’처럼 36년을 한결같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김성수 주교와 영국인 아내 후리다 여사. 결혼이 허락되지 않는 천주교와 달리 성공회는 의지에 따라 결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제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지만, 김성수 주교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당시 서른여섯 살이던 후리다를 만나 결혼했다.
“젊은 시절 10년을 폐결핵으로 고생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해서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사제 서품을 받고 봉사활동을 갔던 동경에서 역시 봉사활동 온 영국 여자 후리다를 만났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영국 여인과 참 재미있게 봉사활동을 했고, 둘이서 잘 놀아보자 하다가 시집 장가 갔어요.”
애교를 부리거나 여우짓은 못하지만 깊고 넓은 속마음에 반하셨단다. 36년을 살아온 김성수 주교와 아내 후리다 여사의 부부생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인 듯하다.
김 목사님의 결혼은 낯설지 않은데 주교님 결혼은 왠지 낯선데요.
김 주교 천주교는 절대로 결혼이 안 되지만 우리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여서 개인의 의지에 많이 맡겨요. 수녀님과 수사님을 제외하고는 결혼할 수 있어요. 장가간 사람이 이혼 등 부부 문제를 상담해올 때 장가 안 간 사람이 조언해주는 것이 좀 우습잖아요(웃음). 모든 걸 경험해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을 전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부부 사이의 고민을 상담해오면 내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래도 경험이 있는, 나처럼 결혼한 신부가 조언과 위로를 잘해줄 수 있지, 장가도 안 간 사람이 제대로 된 상담을 하겠느냐고 놀려요(웃음).
김 후리다 여사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김 주교 건강한데, 나이 드니까 살이 자꾸 쪄서 골다공증 위험이 있대요. 후리다도 더 이상 예전처럼 열심히 못하겠다면서 집에서 지내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어요.
김 역시 봉사활동으로는 주교님께 뒤지지 않으시니, 마음이 넉넉하실 것 같아요. 두 분은 부부싸움 한 번 없이 평생을 보내셨을 것 같은데요.
김 주교 우리도 여느 부부처럼 크고 작은 일로 싸워요. 다만 상대의 의견을 존중할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곧 화해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지요. 부부싸움 안 하는 부부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김 특히 디지털 세대는 만나기도 잘하고, 헤어지기도 잘해 이혼율이 자꾸 높아지고 있답니다.
김 주교 사회가 이렇게 변한 데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봐요. 윤리나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지 않으니까 부부생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지요. 첫째는 사람됨의 문제이고, 둘째는 생활 환경인 아파트 문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예전엔 제삿날이나 이사 오면 떡을 돌리며 이웃집과 인사를 나누고 어울려 살았는데 요즘은 자기만 알아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이혼하고 싸움하는 것이 대부분이니 뭘 보고 배우겠어요. 사회 환경이 젊은이들을 나쁘게 만든 것 같아. 아무리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려 해도 ‘바보스럽게’ 돼버리는 사회 풍토잖아요.
김 부모가 자식들에게 ‘착해서, 순해서 나중에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윽박지르잖아요. 또한 예전 광고에 ‘우리 아이는 특별해요’라며 특별한(?) 아이로 기르라고 했으니, 남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됐구요.
김 주교 자식을 둘 셋 낳아 서로 어울리게 하며 길러야 하는데 하나씩만 낳아서 무조건 제 멋대로 하게 놔둬요. 그리곤 “엄마 쟤하고 못살겠어!” 그러면 별로 반대도 안 하잖아요.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보며 뿌듯해하는데, 사실 그 시간에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싸우고, 화해하며 지내게 해야 해요. 이런 걸 안 하니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죠. 받는 것만 알지, 주는 걸 배우지 않아서 결혼을 해도 쭉 받기만 해야지 주지를 않으니 문제가 되는 거야. ‘희생’할 줄을 모르니 두 사람이 사는 게 힘들어지는 거잖아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옆집 아이와 뛰놀면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야 돼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아야 해. 물론 나이 들면 주책을 떨기도 하지만 아이를 사람 만들려면 노인의 힘이 필요해요.
자식의 아픔으로 바라본 세상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도 마찬가지. “요즘 말로 불량 아빠였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였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통행금지가 있을 당시 밤 12시 땡치는 시간에 귀가하면 아이들이 자고 있어요. 어쩌다 함께하는 날은 공부하라는 잔소리하느라 바빴을 뿐, 친구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몰랐지.”
자식의 아픔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줬다. ‘윗집은 베트남 며느리, 한 집 건너 아랫집은 필리핀 며느리’. 요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보면 기우일지 모를 걱정에 사로잡힌다. 이들에게서 태어난 혼혈 2세가 겪을 아픔이 내 아이가 겪었던 일이기에….
김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에게 그렇게 잘하시니, 아드님과 따님에게는 정말 좋은 아버지셨을 것 같아요.
김 주교 그렇지 않아요. 혼혈이라서 보통 아이들보다 우리 용이와 빛나가 예뻤거든. 동네 나가면 사람들이 예쁘다며 아이들을 만져보기도 했으니 후리다도 그렇고 아이들도 스트레스였겠지. 그런데 바깥일에 신경 쓰느라 대수롭게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와 다르게 생겼다는 게 고민이었나 봐요. 용이는 여의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키도 크고, 얼굴도 다르게 생겼고, 주먹 대장으로 말썽도 꽤 피웠거든요.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더니 연세대 체육과에 들어가고, 대학원까지 나와 한국종합예술대학 교수까지 됐어요.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 때 그 대학 총장님이 ‘주교님 아드님이 사표를 냈어요!’그러는 거야. 그리고 한 달 지나서 이 녀석이 도저히 교수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며,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면서 영어도 가르치고, 개인 교습도 하다가 요즘엔 올림픽 컨츄리 골프장에서 매니저를 하잖아. 나중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김용을 찾아 아버지가 돈 내지 말라고 했다고 하세요(웃음).
김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드님은 결혼하셨나요?
김 주교 그럼 했지. 며느리는 발레를 전공하는데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박사 과정 공부중이에요. 금년에 박사학위 받고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딸 빛나는 건축 자영업 하는 남편을 만나 초등학생 쌍둥이 낳고 재미있게 잘살아요.
김 주교님 세대는 국제 결혼이 많지 않았을 때고 한국전쟁 직후여서 혼혈 2세를 보는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농촌에서 결혼할 여성이 없어 동남아시아 여성들과 결혼하고 있잖아요.
김 주교 세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자라는 혼혈 2세 어린이나 외국 부인들이 20년 후에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아요. 우리가 먼저 그들이나 우리가 똑같은 사람이고, 서로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는 유색 인종, 특히 얼굴색이 검은 사람을 얼마나 무시해요. 그 사람들 일등 국민이에요. 미국 국무장관도 흑인 여성이잖아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에게 잘 대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렇게 잘들 못해요.
김 과도기여서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생각이 빨리 바뀌어하겠죠.
김 주교 우리 용이가 잘 자랐잖아요. 나는 절대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 않았어요. 물론 돈도 없었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내 학교에 보냈어요. 신검 후 영장이 나오지 않아 병무청에 찾아가니 동양 사람끼리 결혼한 2세는 얼굴이 한국인과 같아 군대에 갈 수 있는데, 서양 아이는 얼굴이 달라 안 된다는 거예요. 용이가 “한국사람으로 만든다고 그러시더니 아빠 잘났수!” 그러더군요. 덕분에 남들보다 3년이 절약돼 최연소 박사됐죠. 그래도 다른 집 아들처럼 군대 못 간 게 아쉬워요.
김 ‘왕따’ 문제때문에 아마도 병무청에서 배려한다고 그런 것 같아요
김 주교 우리 아들은 기운이 세서 문제없었을 것 같은데…(웃음)
변함없는 모습으로 삶의 지표가 되어주는 사람
젊은 시절 8년이라는 긴 시간을 폐결핵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성공회가 운영하던 성베드로 보육원생들과 놀아주다 신부가 될 결심을 굳힌 김성수 주교. 1964년 서른네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수많은 사회운동·봉사 단체에서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주교의 철학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 전도하시는 분들을 보면 하루에 1백 명을 만난다고 하더군요. 1백 명 만나서 1명만 교회에 나와도 참 복받은 일이라고 하는데, 주교님은 가까운 지인에게도 교회 나오란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셨다면서요.
김 주교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구교와 신교의 역할을 두루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지요. 하느님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쟤들은 왜 잠만 자고 있지?”라고 하실지 몰라(웃음). 성공회는 ‘나눔’을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회 선교 단체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성공회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백 년이 넘었는데도 교인이 10만명이 안 되는 작은 교단이죠. 그래도 주먹밥 콘서트를 한다거나 난치병 돕기 운동, 나눔의 집 운영 등 좀 힘에 겨운 일을 하는 것에 자부를 해요. 교회가 자기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더불어 잘살 수 있는 일을 만들면 그것이 모범이 돼 나라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 ‘나눔’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인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저도 방송에서는 이웃과 나누는 삶을 이야기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거든요.
김 주교 최근 노벨 평화상과 서울 평화상을 받은 인도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도 빈민층에 자금을 빌려줘 창업을 도울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되돌려줄지는 몰랐다고 하더군요. 사람을 믿는 마음,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눔이 꼭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김 내년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김 주교 나는 계획이 없는 사람이죠. ‘내년에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밑에서 계획한 대로 움직이고,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되거든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증손자까지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싶은데, 초등학생인 손녀들이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지. 인터뷰 끝났으면 따끈한 칼국수나 먹으러 갑시다! 내가 쏠게요~.
김성수 주교 프로필
1930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정치학과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수료하고 성공회 성미카엘 신학원을 거쳐 64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영산강 간척사업장에서 막일을 하고 민주화운동에 참가하는 한편 정신지체아 교육기관인 성베드로학교(1973년)을 세우는 등 빈민과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왔다. 대한성공회 대주교(1984년)와 초대 관구장(1993년)으로 지내다 95년 은퇴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총장으로 활동 중. 유산으로 받은 시가 20억원이 넘는 고향의 땅 2천 평을 헌납해 정신지체 장애인 근로 시설 ‘우리마을’을 세웠다. 2004년 장애인 인권과 복지 사업을 위해 건립한 푸르메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한 김성수 주교는 지난 11월 14일 2006 파라다이스 사회복지 부문 상을 받았고, 상금으로 받은 2천만원은 푸르메 재단이 추진 중인 장애인 재활 전문 병원 기금으로 기부했다.
전문 MC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김승현
변함없는 성실함과 겸손한 자세로 방송과 라디오에서 활동하고 각종 무대에서 편안하고도 감각적인 말솜씨로 사랑받는 국민 MC 김승현. 2004년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매일 아침 감동적인 사연과 알뜰 정보로 주부 시청자들과 만나는 ‘김승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은 지난 10월, 1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열 만큼 인기 장수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1991년 MBC-TV ‘유쾌한 스튜디오’의 ‘착각퀴즈’로 데뷔 후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비결은 재치 넘치는 코멘트와 게스트를 배려하는 편안한 진행 때문. 얼마 전 SBS 라디오 ‘손숙 김승현의 편지 쇼’ 종방 이후 아침 SBS-TV의 ‘김승현·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통해 전문 방송인의 지존인 그를 만날 수 있다.
MBC 특채로 전문 MC가 되기 전에는 대학 축제를 비롯한 각종 무대에서 진행자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해군 홍보단에 복무한 군 시절이 MC 인생의 초석이 됐다. 그의 빼어난 진행 솜씨에 매료된 방송 관계자들의 ‘추천’을 통해 ‘특채’로 방송에 진출했다. 대표 출연 프로그램으로는 SBS-TV ‘도전 1000곡’, SBS-TV ‘머리가 좋아지는 TV’, MBC-TV ‘메디컬쇼 인체는 놀라워’, MBC-TV ‘결정 TV 콜로세움’, SBS-TV ‘외국인 대설전’, SBS-TV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 등이 있다.
※ ‘손숙이 만난 사람’에 이어 이달부터 ‘김승현의 아름다운 데이트’가 연재됩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가사처럼 삶은 어떤 화려한 꽃보다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감동을 전합니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저명 인사 부부의 진솔한 이야기로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 ‘손숙이 만난 사람’에 이어 이번 12월 호부터 국민 MC 김승현씨가 꽃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각계 인사들을 만납니다. 구수하고도 감각적인 김승현씨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질 현장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글 / 박현숙 기자 ■ 사진 / 민영주